3차 북중 정상회담, 북중의 연대로 미국과의 협상력, 중국이 미국에 원하는 것, 북한이 중국에 할 말이 있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3차 북중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베이징→다롄→베이징으로 이어진 세 번의 북중 정상회담은 일정한 한반도 역학관계에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위치이고 중국은 그런 북한의 뒷배 역할을 해왔던 전통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일주일 밖에 안 된 19일 오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시 주석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명분으로 읽혀지는데 중국 외교부는 “이번 방문이 북중 관계를 한층 심화하고 중대한 문제에 대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관용적으로 표현했다.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부가 1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리설주 여사, 김정은 위원장, 시진핑 주석, 펑리위안 여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문가들은 당연히 북미 비핵화 후속 협상에서 속도 조절을 도모하거나 제재 완화를 선제적으로 논의하는 자리라고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반복된 패턴이 있는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임박할 때 김 위원장이 방중하는 것이다. 

△(3월25일~28일)1차 북중 정상회담 △(3월31일)폼페이오 장관의 1차 방북 △(5월7일~8일)2차 북중 정상회담 △(5월9일)폼페이오 장관의 2차 방북 △(6월19일~20일)3차 북중 정상회담 △(6월 후순)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예정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기 전 북중 간 작전 회의의 성격으로 보이는데 중국 정부의 요구를 미국 측에 전달해달라는 요청이 있을 수도 있다. 중국에게는 현안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 무역주의 정책에 가장 큰 피해자로 관세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한미군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그리고 미군 전략 무기들의 한반도 주변 배치 등이 있다. 이는 6.25 전쟁 이후 북한과의 충돌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2000년대로 접어든 뒤 미국과 중국의 동북아 주도권 경쟁 구도로 해석되고 있다. 

즉 연합 훈련 중단과 축소 등은 북한의 체제보장 이익 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외교안보적 이해관계와도 맞물려 있다. 

중국이 그동안 요구해왔던 쌍중단(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을 병행 추진)이 그런 맥락이다.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최근 <CNN>에 출연해 “중국은 오랜 목표였던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합의한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고 이번 3차 북중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이런 중대한 양보를 얻어낸 것에 대해 중국이 김 위원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위원장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건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물론 김 위원장이 중국의 제재 완화를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위한 차원도 있다. 중국은 현재 UN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에게만 체제보장과 제재 완화라는 요구사항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중국에게도 기대할 것이 있다. 특히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대북 제재 완화를 국제사회에 설득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

제재 완화는 곧 경제적 번영의 시작점으로 직결될 수 있는데 이와 관련 김계동 건국대 초빙교수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은 개방을 준비하고 있고 협조를 받기 위해 김정은이 중국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북한이) 1984년, 1990년, 2001년, 2010년에 개방 시도할 때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결국 북한은 중국에 의존하고 중국식 개방을 추구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개방에 협조를 구할만큼 국력과 경제력이 성장했다. 김정은은 2000년에 김정일이 시도했던 전방위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당시 김정일은 신의주 개방을 목표로 상해와 베이징을 방문했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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