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혁신 비대위 준비위원장의 옛것 지키기와 보수이념 강조
재건비상행동의 급진적인 요구가 김성태 대행의 표현과 더 부합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현재 자유한국당은 납작 엎드려서 읍소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온고지신(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안다)이 어울리는 말일까.

안상수 의원은 24일 한국당의 혁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준비위원은 박덕흠(재선 의원)·김성원(초선 의원)·배현진(송파을 당협위원장)·허남진(한라대 교수)·장영수(고려대 교수)·장호준(지방선거 낙선자)으로 선임됐다.

25일 자유한국당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오른쪽)과 안상수 혁신 비대위 준비위원장이 25일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이 한국당에 부여한 마지막 기회로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한국당을 재건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6.13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받들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혁신해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안 의원은 2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한국당이 어려운 가운데도 30%(광역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 27.76%) 가까운 국민들이 지지를 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래도 우리가 보수의 바탕에서 또 우파적 정서를 계속 확신시켜 달라 이런 명령으로 보고 완전히 바꾸게 되면 그건 안 되는 것이고 소위 온고이지신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우리가 과거의 추억은 취하면서 변화시킬 건 변화시키고 이래야 되는 것이지 이것을 그냥 하나부터 끝까지 다 바꾼다. 이것은 특히 정치 현실에서는 잘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보수의 텃밭인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의 광역단체장이 다 넘어갔을 만큼 한국당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 있었고 홍준표 전 대표는 “참패했다”고 인정했는데 안 의원은 27%의 득표율을 근거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밝혀 그런 현실 인식이 반영된 혁신 비대위(온건한 개혁)가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 의원은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실행할 때는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굉장히 변화하고 개혁하는 노력을 하고 이제 그런 것도 국민 눈높이에서 돌아가도록 해야 되겠지만 또한 현실은 현실과 같이 접목이 돼야되는 부분도 인정을 해달라 이런 주문을 할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성태 대행이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 의원의 이런 판단은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과도 동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15임 김 대행은 비상 의원총회에서 “뒤에서 딴생각만 하고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구태 보수 청산하고 노욕에 찌든 수구 기득권 다 버려서 보수 이념의 해체와 한국당의 해체를 통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보다 더 적나라한 표현들이 난무했다.

“금이 간 담장과 주저앉은 처마를 다 헐어내고 튼튼한 기반 위에 다시 새집을 지어야 한다” “썩어빠진 집구석 페인트칠 몇 번 한다고 새 집 되지 않는다” “보다 못한 성난 국민들이 썩은내 나는 집구석 이제 헐어내라고 우리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우리당이 처해있는 정치생태계도 바꿔야 한다” “우리당의 구조·체제·관행·관습 그 모든 것을 바꿔야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이 가능해진다” “곪아 터진 우리의 아픈 상처를 두려움에 외면하지 말고 후벼 파고 썩은 고름을 짜내야 한다”

김 대행은 이런 인식에 따라 혁신 비대위 구성에 총력을 기울인다고 재차 밝혔고 준비위는 이런 비대위를 완성하기 위한 조직인데 그 수장이 임명 취지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당 전현직 당협위원장으로 결성된 ‘재건비상행동’의 과감한 행보가 김 대행이 구사한 표현의 수위와 어울려 보인다. 비상행동의 구본철 대변인은 24일 한국당 당사에서 삭발식을 감행하고 살생부 1차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의 4가지 기준은 △홍준표 전 대표 체제의 당권 농단 공동 책임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후로 탈당한 보수 분열 책임자 △친박으로 권력에 기대서 전횡한 책임자 △실패한 박근혜 정부의 공동 책임자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홍 전 대표, 김무성·최경환·홍문종·안상수·홍문표 의원에게는 정계은퇴를, 김 대행과 이주영·정진석·윤상현·김용태·이종구·장제원·곽상도 의원에게는 불출마 선언과 당협위원장 사퇴를, 권성동·김재원 의원 등에게는 출당을 이렇게 16명에 대해서 인적 쇄신을 촉구했다.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재건비상행동의 구본철 대변인이 당 및 인적 쇄신을 위한 정풍운동에 솔선수범하기 위해 삭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구 대변인도 25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사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112명(한국당 의석수)이 전부 탄핵당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당이 재건하고 부활하기 위해서는 희생자가 필요하다”며 2차 살생부 명단에 대해 “김 권한대행 체제가 어떻게 당을 혁신하고 스스로 내려놓는 그런 자세를 보이는지 (상황을 보고 발표하겠다)”라고 밝혔다.

특히 “안상수 준비위원장이 준비하는 분보다 훨씬 더 국민적이고 당원들이 지지하는 재건 드림팀을 구성해서 발표하겠다. 당원들이 지지하는 분이 당대표로 선출되도록 애쓰겠다”며 향후 지도부 인선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안 의원은 이런 비상행동의 행보에 대해 “결국 이런 것들이 다 분파 작용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뭔가 어떤 방향을 중심적으로 추진하는 추진체가 있고 거기에 의견을 제시해서 변화와 혁신이 되도록 해야지 어떤 개인적인 목적을 담아서 상대방에 대해 비판을 한다든지 이런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특히 비상행동의 인물 면면에 대해 “그 양반들 누구인지도 모르겠는데 과거 당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을 했거나 그런 적이 있는 사람들 같지 않고 또 그동안 일괄적으로 무슨 당과 함께 하지도 않았고 그랬을텐데 그냥 어떻게 돌출적으로 나와서 그런 것을 하는지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김 대행을 비롯 한국당 의원들이 15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치고 국민에게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대행을 비롯 한국당 의원들이 15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치고 국민에게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급진적인 표현을 써서 당의 혁신을 외치는 주체가 김 대행이고, 그런 급진적인 요구를 가장 도드라지게 하는 곳이 비상행동인데. 안 의원은 그러한 요구에 저항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기득권을 내려놔야 하는 주체들의 반발감을 준비위원장이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도 읽혀진다.

물론 비상행동은 한국당 내에 친박의 세력화 보다는 김 대행을 비롯한 비박계의 세력화를 더 우려했다.

구 대변인은 “(당에 친박은) 없다. 왜냐하면 그 구심점(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 감옥에 가 있고. 아시다시피 친박의 그동안 구심점이라고 했던 최경환 의원(구속)이나 김재원 의원 등을 이번에 퇴출 대상에 올려놨다. 그 외에 초선과 재선 정도가 있는데 그분들이 계파를 구성할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비박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분들은 주로 탈당했다가 복당한 사람들이고 이런 분들이 위기의식을 느껴서인지 결속력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국당 내에 치열한 백가쟁명과 세력 다툼이 상존하는 모습인데 어떤 혁신 비대위가 구성되고 또 어떻게 쇄신 작업이 이뤄질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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