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독수리

서문기

 

창고 구석에 박힌 재봉틀

먼지 닦고 숨구멍마다 기름 넣고 바퀴를 돌리자

푸드덕 날개를 친다

이내 굶주린 허기를 채우려는 듯

드르륵, 드르륵 날개를 켜 비상한다

겨울들판을 가로질러

빙빙 맴돌다 먹이를 발견하는 순간, 돌격

내리꽂은 곳, 아지랑이 피어오른 시냇물 속

부리를 힘껏 조여 파닥거리는 밑실을 올려 챈다

줄줄이 끌려오는 겨우내 얼었다 풀린 풍경소리

팥배나무 뿌리 돌아 바위틈 낮은 이끼를 깨우며 졸졸졸

박음질되어 오른다

돌개바람으로 흔들리는 삶의 자락 노루발톱으로 움켜쥐고

바람을 맞닥트려 바람을 탄다

늘였다 줄였다 해진 난간 굳은살 오른 부리로

한 땀 한 땀 살아온 날들, 바늘에도 호수가 있다

얇은 꽃 살도 살다보면 두꺼운 청지 같아

두꺼워진 절망의 시접에 바늘을 바꾸지 못해

뜯어낸 실밥 같은 눈이 내린다

낡은 부리 바위에 쳐서 부러뜨린 독수리처럼

툭 부러진 미싱 바늘 날을 세운다

얼어서 깨진 밤하늘, 보름달에 덧단을 대고 콕콕콕

늦도록 기워나가는 옷 수선집 아저씨

창고 안에 달빛이 환하다

---------------

오래된 미싱과 수선집 아저씨를 관찰하며 노을 지는 인생을 관조한 친절한 詩다. 인생의 생노병사를 잠시 생각해보노라니 기계나 사람이나 삶의 흐름이 어쩌면 이토록 비슷할까!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가는 것. 삐걱삐걱 녹슨 부위 수선해가며 사는 길다면 긴 여로에서 부러진 미싱바늘 같은 삶일지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자부심을 가질 일이다. 예전 같지만은 않은 내 몸이 신호를 보내 올 때마다 삶의 자세를 가다듬고 건강을 정비 점검한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당신 그리고 나, 늙은 독수리의 절망을 뛰어넘는 지혜를 배워보자. [최한나]

----------------

서문기 시인 /

2018 <좋은 시조> 등단

2015 <미래시학> 등단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