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 야당과 소통, 정치권이 손떼는 방송법이 통과되기 위한 정치적 함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김성태 원내대표(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를 만나서 우리가 원하는 방송법을 설명해봤는데 그쪽도 공감은 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방송독립시민행동(방송의정치적독립과국민참여방송법쟁취시민행동)이 28일 오후 국회에서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를 만났다.

김 위원장은 장 원내대표를 만나 시민사회의 방송법 요구안을 전달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 위원장은 장 원내대표를 만나 시민사회의 방송법 요구안을 전달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 위원장은 장 원내대표에게 “우리가 바라는 건 이제는 방송사 사장 문제에 정치권이 손을 좀 떼달라는 것”이라며 “정권 바뀔 때마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이렇게 발언하는 것의 행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어떤 정치세력이라도 집권하게 되면 방송을 장악하고 싶어한다. 여론 형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공영방송(KBS·MBC·EBS·YTN)의 경우 국가의 공적 통제 장치 하에 있기 때문에 이를 악용할 여지가 생긴다. 소위 말해 정권의 끄나풀이 낙하산으로 공영방송 사장이 되고 기자들의 권력 비판 기능을 무력화시킨다.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에서 대변인·홍보수석·언론특별보좌관을 맡은 바 있는 이동관씨는 19일 방송된 채널A <외부자들>에서 “우호적 언론환경을 조성하려고 했다”고 밝혔지만 당시 MBC와 KBS는 쑥대밭이 됐었다. 파업은 일상적으로 일어났고 방송 독립을 지키려고 싸웠던 수많은 언론인들은 징계당하거나 해고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송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방송계, 언론계, 시민사회, 정치권 가릴 것 없이 개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국회 내부의 현실적인 함수를 풀어야만 가능하다.

현재 방송 등 언론 문제를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구성은 위원장 1명(이효성), 부위원장 겸 상임위원 1명(허욱), 상임위원 3명(김석진·표철수·고삼석)이고 이들은 대통령과 국회 교섭단체의 추천으로 선임된다. 방통위원장을 비롯 5명 중 3명은 정부여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방송법에 따라 방통위원장과 위원들이 ‘KBS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회)’의 이사진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기도 하고, 그나마 야권의 견제를 받도록 여야 이사 추천 방식의 관례를 봐도 △KBS 이사회는 여권 추천 7명 대 야권 추천 4명 △방문진은 여권 추천 6명 대 야권 추천 3명으로 구성된다. 

결국 이런 구조에 따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이 선임되는 것이고 이게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김연국 전국언론노조 MBC (사진=박효영 기자)
김연국 언론노조 MBC 본부 위원장도 이날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MBC 방송 투쟁의 산증인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공영방송 사장 선임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안은 크게 3가지 단계가 있다.

1단계는 정부여당이 사실상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이고, 2단계는 야당이 반대하면 사장 임명이 불가능한 구조(특별다수제)이고, 3단계는 독립적인 사장 추천 기구를 만들어 정치권의 입김을 아예 배제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 이명박·박근혜 9년의 보수정권 기간에는 시민사회와 언론계 역시 고육지책으로 2단계도 현실적인 방안으로 고려하긴 했었다. 물론 제일 좋은 3단계를 지향하지만 그 당시 현실이 너무 암울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재 시민행동은 3단계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이미 발의된 방송법은 크게 추혜선 정의당 의원, 강효상 한국당 의원, 이재정 민주당 의원, 박홍근 민주당 의원의 여러 안들이 있다. 

박홍근 안은 2016년 7월에 발의됐고 전형적인 2단계로 볼 수 있다. KBS 이사회 13인 중 정부여당 추천 7명 야권 추천 6명으로 이사진을 구성하도록 했고 사장 임면을 위해서는 3분의 2 이상(9명)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했다. 결국 야권이 반대하면 사장 임면은 불가능한 구조다. 

추혜선, 이재정, 강효상 안은 모두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발의됐고 각기 다양한 사장 선임구조를 제시하고 있는 3단계로 볼 수 있다.

시민행동의 마음은 무척 간절하다. (사진=박효영 기자)

추혜선 안은 KBS·MBC·EBS의 이사진을 ‘이사추천국민위원회’라는 독립 기구의 추천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그렇게 꾸려진 공영방송 이사회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사장을 임면할 수 있다.

이재정 안은 KBS 이사진을 9명으로 하고 KBS 소속 구성원 또는 방송학계가 추천하는 인사들이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도록 했다. 이렇게 꾸려진 이사회가 국민 대표성을 고려해 100명 이상의 홀수 위원으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사장을 물색하는 것이다.

강효상 안은 공영방송 이사회를 방통위가 아닌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언론단체, 학계, 법조계 등에서 추천받은 인사로 구성하도록 했다. 이사회가 사장추천위원회를 따로 만들고 여기서 사장을 물색하되 3분의 2 이상 이사들의 찬성으로 사장 임면을 의결할 수 있다.

시민행동은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당의 개입은 배제하되 시민 참여를 확대하도록 제도 개선을 권고해야 한다”며 “각 정당은 차기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있어 어떠한 형태로든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방통위가 이사들에 대한 시민검증단을 포함한 시민참여 및 공개검증 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정당이 요구하라”고 압박했다.

민주당도 방송장악이 만연했던 보수정권 9년을 거치고 탄핵과 촛불혁명을 지나왔다면 1단계에서 3단계로 가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입장은 이미 민주당의 박홍근 의원이 2단계 법안을 발의해놨고 이걸 바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원식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4월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이 아예 방송에서 손을 떼자”고 야당에 제안했다. 우 전 원내대표는 그날 아침에 전화를 걸어 야권의 입장을 어느정도 체크했다고 밝혔다.

전화를 해봤더니 “(김 비대위원장은) 본인이 요구한 것이라서 알아듣는 눈치”였고 “(김 원내대표는)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고 설명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는 말”을 했고 “(장 원내대표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내용을 잘 알겠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서 매우 강경하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국회 농성까지 해가면서 2단계 법안 통과를 주장했던 만큼 이제 와서 시간을 끄는 것은 내로남불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4월 초 교섭단체 협상 전선에서 김 위원장의 이러한 문제제기에 김성태 원내대표가 동조하면서 국회 운영이 스톱된 바 있다. 

최근 선출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역시 “방송법과 특별감찰관법에 대해서는 당론이 바뀔 가능성이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위에서 거론했듯이 김환균 위원장은 분명 김 원내대표도 3단계에 공감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즉 시민사회가 원하는 3단계를 위해서는 한국당보다 바른미래당의 2단계 고수 입장을 더 설득할 필요가 있다. 

본지 기자는 김 위원장에게 바른미래당의 강고한 입장을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차차 만나려고 한다”고 답했다.

5월7일 국회 앞에서 열린 방송법 개정안 야합 반대 기자회견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5월7일 국회 앞에서 열린 방송법 개정안 야합 반대 기자회견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 당시 박홍근 의원은 우 전 원내대표와 함께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 때는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서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에 그나마 국회에라도 가져오자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그걸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선임권과 추천권 등 이런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입장의 차이가 생긴 거다. 박근혜 정부 때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이제 사장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명료한 입장이 있기 때문에 (3단계를 위한) 환경이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실 한국당도 큰 변수다. 그나마 바른미래당은 내로남불 차원으로 민주당에 강경하고 2단계를 고수하고 있어서 정치적 협상을 통해 해소될 수도 있지만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방송은 물론 신문과 인터넷까지 장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그렇게 주장하고 있고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 길환영 전 KBS 사장을 영입했고 이들과 함께 김세의 MBC 기자, 박상후 전 MBC 부국장을 초대해 <좌파정권 방송장악 피해자 지원 특별위원회>까지 결성했다.
 
박 의원의 말대로 이런 한국당의 판단이 견고한 이상 2단계를 주장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바른미래당까지 강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방송법 변수가 어떻게 풀릴지 난국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박 의원은 “(야당의 2단계 안은 더 이상 민주당이 받지 않을 예정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국민께 돌려주는 안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해 여야의 타협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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