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대규모 노동자대회, 전국 8만여명 노동자 집결, 최저임금법 강력 규탄, 비정규직 철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주최측 추산 8만명, 경찰 추산 4만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였다(2018 비정규직철폐 전국노동자대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가 아니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서다. 

6월30일 토요일 태풍 쁘라삐룬이 예고됐고 날씨는 흐렸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 따르면 전국 조합원들이 서울로 총 집결하기 위해 사용된 버스만 900대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2개월 만에 노동자들이 화를 낸 이유는 뭘까. 

광화문을 가득 메운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집회 참석 시민들. (사진=민주노총 제공)
건물 위에서 광화문을 가득 메운 집회 대오를 바라본 모습. (사진=민주노총 제공)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집회 현장에서 “학교 노동자를 비롯 공공 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 제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크다. 정규직으로 전환됐음에도 자회사나 무기계약직 형태로 고용돼 실질적 처우 개선은 거의 없는 것에 대한 실망도 있다. 여기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이 불을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것은 5월28일 통과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고 이외에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간 주 52시간 유예기간 6개월 △IT 업종 특별연장근로 허용 △탄력근로제 기간 6개월로 확대 △호봉제 폐지와 직무급제 도입 △비정규직과 무기계약직 노동자에 대한 표준임금체계모델 적용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취소 불가 등이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의 기본권 확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정부를 규탄한다”며 노동적폐 청산, 노동 기본권 확대,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법 폐기를 촉구하기 위해 하반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할 수 있는 행정조치는 회피하고 국회 탓만 하는 정부가 어찌 노동존중 정부인가”라며 “표류하고 후퇴하는 문재인표 노동 정책을 넘어 촛불항쟁으로 시작한 한국사회 대개혁을 스스로 완성시켜 갈 것”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많이 했지만 실망이 크다며 투쟁 강도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사진=민주노총)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많이 했지만 실망이 크다며 투쟁 강도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민주노총의 비판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먼저 최저임금법과 관련 박금자 위원장(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500만원 미만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법 개악의 피해가 없다고 했다. 피해가 생기면 원내대표 사퇴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피해자다. 17만 학교비정규직노동자가 피해자다. 당장 우리들 통장에 들어올 월급이 매월 19만원씩 줄게 됐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은 최저임금액을 월 단위로 환산한 금액의 25%를 초과하는 상여금(임금 이외에 특별히 지급되는 현금 급여로 일종의 보너스), 7%를 초과하는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시키고 매년 그 비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2024년부터는 모든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8년 기준(7530원 x 주 52시간 x 4주)으로 매월 기본급 157만원을 받고 여기에서 상여금 50만원과 복리후생비 20만원을 받는 노동자 A씨가 있다고 했을 때 A씨는 월급이 합계 227만원이다. 하지만 상여금은 최저임금의 25%(39만2500원), 복리후생비는 최저임금의 7%(10만9900원) 이상은 못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여금 10만7500원(50만-39만2500)과 복리후생비 9만100원(20만-10만9900원) 즉 20만7600원이 깍이게 되어 206만2400원의 월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되려 월 실수령액이 깎인 A씨는 내년에 최저임금이 올라도 받는 돈은 같다. 그래서 정의당은 줬다 뺏는 것이 최저임금법 개정안이라고 비판했다. 최저임금을 올린지 반 년도 안 돼 산입범위를 확장해 실질 임금을 낮췄다는 것이다. 고로 최저임금도 올리고 일반 수당(상여금과 복리후생비)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임금 구조에서의 기본급 비중을 높여가는 근본 개혁이 중요한데 그런 정부여당의 고민이 없다는 것이 정의당의 주장이다.

(사진=민주노총)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이번 노동자 투쟁의 강력한 촉발기제로 작용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노동시간 주 52시간은 여야가 대타협을 본 사안이고 7월1일부터 시행된 따끈따끈한 정책 변화다. 일 중독 사회로 악명이 높은 대한민국은 연간 평균 2069시간을 일하는데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763시간에 비해 306시간(13일)을 더 노동하는 수준으로 매우 심각하다. 하지만 정부는 법률 개정안을 바로 시행해서 기업을 단속하고 처벌하기 보다는 올해 말까지 6개월 계도 기간을 설정해 제도 정착에 힘쓰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크런치 모드(게임이나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마감을 앞두고 수면·영양 섭취·위생 등을 희생해 장시간 업무 지속)로 유명한 IT 업계의 경우 특별 연장근로를 허용해 현실을 고려하기로 했다. 

탄력근로제의 기간을 연장하는 문제도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탄력근로제는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기간이 있다면 근무량이 적은 기간에 일을 덜 하도록 해서 균형을 맞추도록 허용한 제도다. 운수·통신·의료서비스업과 같이 연속 근무가 필요한 업종이나 빙과류 제조 등 계절별 집중 노동이 필요한 업종에 흔히 자주 활용된다. 

근로기준법은 탄력근로제의 기간을 노사 합의에 따라 최대 3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이걸 6개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이 홍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 제도 자체가 사실상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사용자의 꼼수인데. 무엇보다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특례업종(주로 운송과 보건업)의 범위를 대폭 축소해놓고 특례 제외업종에서 탄력근로제를 허용하고 기간을 6개월로 늘리면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주장이다.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특례업종과 특례업종 제외 분야. (자료=고용노동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특례업종과 특례 제외업종 분야. (자료=고용노동부 제공)

김 위원장은 “자본의 요청만 온전히 수용하는 정부는 노동존중 정부가 아니”라며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의 요구로 노동시간 단축 시행안을 유예한 정부의 조치를 꼬집었다.

직무급제는 기존의 공공기관 호봉제에 대한 비판에서 제안된 것인데. 호봉제(14~30단계)는 연차가 높아짐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것이고 직무급제는 직무의 성격과 난이도에 따라 가치를 매긴 뒤 6단계로 나눠 기본급에 차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19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직무급 중심 보수체계 개편 등 공공기관 관리체계를 전면 개편해 공공기관의 혁신을 뒷받침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직무급제(자료=고용노동부)
직무급제가 시행됐을 경우 적용될 기준표. (자료=한국노동연구원 제공)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연구용역을 맡겨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데 김성환 위원장(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명목 하에 최저임금 기준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등급을 매기고 있다. 그게 직무급제다. 평생가도 정규직 임금의 38% 수준이다. 20년~3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맴돌게 된다. 직무급제는 현대판 노예제이고 신분제”라며 반발했다

직무급제 자체가 어려운 일을 하는 하위 노동자의 업무를 낮게 등급화해서 저임금에 묶어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작년 기준으로 공공기관 종사 노동자는 217만명이다. 이중 20만5000명이 비정규직이고 21만1000명이 무기계약직으로 합하면 전체 19.2% 규모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제각각이라 임금체계를 표준화시켜야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는 5개 직종(청소·경비·시설관리·조리·사무보조)에 적용할 표준임금체계 모델을 발표했고 노동계는 그 기준이 최저임금이라 최고 등급으로 올라가도 1.4배 수준이라며 저임금을 고착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사진=민주노총)
직무급제가 모든 노동자를 등급화하는 노예제라고 비판하는 노동계. (사진=민주노총 제공)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2013년 10월24일 전교조에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포함시켰다며 교원노조법상 법외 노조를 통보했다. 전교조의 취소 소송은 1심과 2심에서 패했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정권교체 이후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은 6월19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대법원 판단 결과를 지켜본다는 기존의 정부 입장에서 진일보한 답변을 내놨다. 고용노동부의 직권 취소 여부가 합당한지 검토한 뒤 청와대와 상의해서 결정하겠다는 것. 

하지만 바로 다음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정부가 직권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그것을 바꾸려면 대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기존 판결을 번복하는 방법과 관련 노동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해 전날 김 장관의 말을 뒤집어버렸다. 

조 위원장은 이에 대해 이날 무대에 올라 “행정 조치에는 행정 취소의 권한도 포함돼 있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선례도 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계승하겠다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조 위원장은 현재 정부의 결단으로 충분히 법외노조 결정 취소 처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이날 민주노총과 참석자들은 17시반 즈음 광화문 광장에서 본대회를 끝내고 내자동 사거리를 지나 청와대 주변 청운동 사무소까지 행진했다. 개별적으로 건설산업연맹과 공무원노조는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금속노조는 헌법재판소로 행진했다.  

문재인 정부가 여러 분야에서 적폐청산 작업을 추진하고 있고 그런만큼 기득권 보수 진영에서의 저항이 만만치 않지만 그걸 높은 지지율과 대북 정책으로 압도했고 그 결과 지방선거에서도 압승했다. 하지만 연일 경제 지표는 나쁘고, 더구나 이번 집회를 보면 다른 의미로 촛불 혁명에 동참했던 노동계의 반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의 중후반기 국정 운영에 노동계의 비토는 무척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대타협을 이룰 것인지가 향후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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