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상현과 김종필의 무궁화장은 다르다
[칼럼] 김상현과 김종필의 무궁화장은 다르다
  • 전대열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7.0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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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칼럼리스트
전대열 칼럼리스트

[중앙뉴스=전대열]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말을 무수히 듣고 살아오지만 누군가 세상을 뜨고 나면 숱하게 많은 인연과 함께 살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고뇌다.

공동묘지에 가면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느냐 하는 말도 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가족이 아니더라도 평생을 살아오면서 우정을 나누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 앞에 떳떳해야만 죽어서도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가를 위해서 한 몸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수많은 애국선열들을 현충원에 모시고 그분들의 뜻을 기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현충원이나 기타 국립묘지에 매장될 수 있는 자격자에 대한 심사는 매우 엄격하다.

국가유사시 전쟁터에 나가 총을 들고 나라를 수호한 전사자나 순직자는 가장 우선순위에 들어갈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일제하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애국선열들이다.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서 모두 포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친일행위로 돌아선 분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아예 건국훈장 수여를 하지 않거나 먼저 줬다가도 다시 서훈을 박탈하는 수도 있다.

실제로 현충원에 안장되었던 유명 독립운동가 중에 한 분은 서훈박탈로 인하여 오랜 시비 끝에 묘소를 이장해야만 했던 일도 있다.

인촌 김성수선생은 동아일보, 경성방직, 중앙학원을 설립하고 독립운동가에게 자금을 제공한 공로로 건국훈장을 수상했다가 친일행적으로 취소된 경우다.

그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지만 송진우 백관수 장덕수 등을 후원하며 조국의 독립 이후까지도 걱정했던 진정한 애국의 면모를 되새겨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우리나라는 4.19혁명을 겪으며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한다. 일제 강점에 저항했던 자랑스러운 역사는 새로운 민주국가를 세우면서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집권자는 과거 왕조시대의 전제군주를 연상할 만큼 모진 독재정치를 자행한다. 이를 때려 엎은 것이 학생들에 의한 4.19혁명이다.

이승만은 12년의 1인 체제를 강행하다가 쫓겨났다. 그 과정에서 186명의 희생자가 생겼고 부상자만 6500여명이다.

이처럼 장엄한 희생을 치르고 민주혁명의 대문을 활짝 열었으나 겨우 1년 후에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군사독재 18년의 모진 세월에 파묻히고 만다.

박정희를 정점으로 한 거사에서 최고 핵심이 김종필이다. 그는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를 창설하여 민주화세력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필자는 전북대 4학년에 재학 중 5.16으로 인하여 감옥 구경을 하게 되었고 그 뒤 한일협정, 삼선개헌, 10월유신 등 독재정권을 강화하는 정부조치가 터져 나올 때마다 모진 고통을 당해야 했다.

긴급조치가 10.26으로 끝나자 전두환 신군부가 날쌔게 끼어들면서 계엄포고령에 의한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될 수밖에 없었던 엄혹한 당시의 분위기는 지금 되돌아봐도 아찔하기만 하다.

5.18민주의거는 비록 광주에서 시작되었지만 전국 어디에서나 희생자는 속출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정경이었다. 이 모든 민주세력에 대한 탄압과 희생강요는 중앙정보부의 작품이다.

지금은 안기부를 거쳐 국가정보원으로 개명했다고 하지만 ‘남산’의 악명은 민주화운동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김종필은 이를 창설한 공로가 다대하다. 독재자 박정희 18년을 유지하고 전두환 7년을 보장해주는 밑거름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무궁화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이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장 큰 공로를 세운 분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서 받은 분에게는 영광이요 후손에게는 자랑스러운 국가의 보훈이 된다.

김종필에게 이 훈장이 추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 사이에서는 난리기 났다. 민주주의를 압살한 장본인에게 어떻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할 수 있느냐 하는 반대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정부가 제이피에게 훈장을 준 것은 그가 국무총리를 두 번이나 역임하고 국회의원을 아홉 번 당선했다는 겉면만 본 것이지 그의 내면에 숨어있는 민주탄압의 실체는 애써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종필보다 한 달 앞서 유명을 달리한 김상현선생도 무궁화장을 받았다. 훈장 전달식은 국회 접견실에서 김성곤 사무총장이 유족인 김영호 국회의원에게 전달했다.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하여 많은 생각을 했다. 20대에 국회에 입성한 이후 10월유신과 신군부 치하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며 칠전팔기 의지를 세웠던 고인의 역사는 독재와의 투쟁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가장 엄혹했던 전두환 치하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정치활동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조직하고 신한민주당을 창설하여 일약 제일야당으로 부상하게 만드는 등 그는 철저하게 자기희생을 전제로 민주화에 매진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는 그 흔한 장관이나 총리 한번 임명된 적이 없다. 아들 김영호는 훈장 전달이 끝난 후 사무총장실에서 차를 나누며 그 얘기를 꺼냈다.

반면 민주역사를 뒤집었던 김종필은 훈장을 다섯 번이나 받고 일인지하만인지상이라는 총리를 두 번씩 했다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김상현은 민주수호에 온 몸을 던졌다는 공로로 무궁화장을 받았지만 김종필은 벼슬 많이 한 것뿐이니 똑같은 훈장이라도 똑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 민주동지들의 생각이다.

전 대 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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