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청와대 책임론 불거지자 대대적 사찰, 성향 분류, 정권 보위 역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군기무사령부의 중대한 범죄 의혹이 또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직후 기무사는 TF(기동부대)를 6개월 동안 운영했다. TF는 유가족들을 조직적으로 사찰하고 인물마다 성향을 분류해서 관리했다.

국방부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TF(이하 조사 TF)는 2일 “기무사가 온라인상의 여론조작을 넘어 세월호 사건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수동 신임 국방부 검찰단장 취임
이수동 조사 TF 단장(국방부 검찰단장)이 세월호 사찰 조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조사 TF는 기무사의 조직적 여론조작 댓글활동을 조사하다가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미흡한 대응으로 국민적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기무사는 2014년 4월28일 TF를 결성했다. 5월13일 육군 소장인 기무사 참모장이 TF의 우두머리로 결정됐고 조직은 커졌다. TF는 10월12일까지 운영됐고 ‘세월호 180일간의 기록’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TF는 군인 60명으로 이뤄졌고 ‘유가족 지원·탐색구조·인양·불순세력 관리’ 등 업무를 분담했다. 위와 관련된 동정을 파악해 문건을 작성해서 상부에 보고했다. 이렇게 생성된 문건은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동향’,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유가족 요구사항 무분별 수용 분위기 근절’, ‘국회 동정’ 등이 있다. 

더 나아가 TF는 유가족 면면의 개인정보와 성향을 분석해 강경/중도로 나눴다. 이를 통해 당시 미수습자 가족들이 탐색구조 종결에 동의할 수 있도록 논리를 개발하고 그 방안을 짰다. 심지어 전남 진도 팽목항은 물론이고 경기 안산 단원고 주변에도 기무사 소속 군인이 배치됐고 이들은 사찰 결과를 보고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떠넘기고 이를 언론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기무사는 ‘유병언 체포조’를 운영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유 전 회장의 밀항을 막으려고 해군과 육군 부대를 동원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기무사 개입은 이번에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TF가 만든 세월호 보고서. (자료=조사 TF)

기무사의 참모장은 보통 외부 인사가 임명되는 기무사령관보다 실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이 막강하고 당시 김대열 참모장은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도 있었다. 즉 기무사의 독자적인 판단이 아닌 정권 차원의 여론전으로 이번 일이 자행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군 기무사는 원래 뭘 하는 곳일까. 상대편의 정보나 형편을 몰래 알아내서 우리 편을 이롭게 하는 것을 ‘첩보’라고 하고 반대로 적의 첩보 활동을 막고 자국의 정보가 적에게 새나가지 못 하게 하는 것을 ‘방첩’이라고 한다. 첩보와 방첩을 하는 곳이 기무사지만 보수정권 9년 간 국정원과 더불어 정권의 보위 역할을 해왔던 게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이번에 조사 TF는, 기무사가 시민단체의 집회들 중 좌파로 판명된 것을 분류하고 이들에 대응하는 맞불 집회 개최를 도왔다는 사실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기무사의 전신은 보안사령부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12.12 쿠데타를 주도하고 이후 민간인 사찰과 고문을 자행했었다. 특히 ‘6월 항쟁’ 이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 추궁과 청문회 논의가 처음으로 불거지던 80년대 후반 보안사는 ‘511 연구회’를 조직해서 온갖 왜곡과 조작을 일삼아 아직도 북한군 개입설이 가시지 않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무사는 이러한 문제제기가 불거지자 91년 보안사로 명칭이 바뀌었고 환골탈태를 약속했지만 전혀 그러지 못 했고 최근까지 정권 보위 활동과 여론전을 일삼았다.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했던 시기 당시 재임했던 이재수 기무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와 육군사관학교 37기 동기로 매우 친밀한 관계다. 

실제 TF가 작성한 세월호 관련 문건. (자료=조사 TF) 

세월호 참사라는 전국민적 슬픔에 기무사가 동원된 배경을 살펴보면. 

참사 2주가 지났을 때 민간 잠수사와 해양경찰이 수색을 하다가 민간쪽이 빠지고 해군이 투입되던 시점이었다. 특히 청와대 책임론과 컨트롤타워(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역할에 대해 비판이 거세지기 시작했었다. 즉 2014년 5월13일 TF가 확대 개편됐을 때는 진도 VTS(해상교통관제센터)에서 세월호와 교신을 얼마나 잘 했고 적절히 대응했느냐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최초로 사고 해역에 도착한 해경의 123 경비정이 부실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기존에 알려진 기무사의 댓글부대 ‘스파르타’는 660명 수준으로 운용됐었는데 이 스파르타가 세월호 사찰 작전에 동원됐는지도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유경근씨(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온라인 활동까지 사찰한 문건이 이번에 공개됐는데 그런 이유로 스파르타가 연관됐을 정황이 농후하다. 

한편, 조사 TF는 이번에 확보한 조사 결과들을 국방부 검찰단에 수사 의뢰했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2기)에 자료를 제공하고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