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의 ‘서오남’ 오명,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인권변호사 출신 김선수 변호사 임명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3심제의 최종 판결을 내리는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에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 기존의 판례를 바꿔야할 만큼 중대한 사건일 경우 대법관 13인이 고민하고 합의해서 결정을 내리고 이것을 ‘전원합의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법원 판례는 전국 모든 법원의 재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대법관은 대한민국 판사들 중 유일하게 판결문에 견해를 표시할 권한이 있다(법원조직법 15조). 

김명수 대법원장은 2일 대법관 후보 3인(김선수·이동원·노정희)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이들은 6년의 임기를 마치고 8월2일 퇴임하는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의 후임이다. 

대법관 후보 3인(김선수·이동원·노정희)이 임명 제청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실 법원조직법 42조에 따르면 대법관의 자격은 판사·검사·변호사 출신으로 경력 25년을 충족하고 45세 이상이면 된다. 그러나 역대 대법관 132명 중 2명(홍순엽·양병호)을 제외하고는 절대 다수가 판사 출신으로 요직을 두루 거쳐 임명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만약 김선수 변호사(사법연수원 17기)가 대법관으로 임명되면 양병호 전 대법관이 퇴임한 1980년 이후로 38년 만이다.

‘사’자가 들어가는 대표 직업군으로 판검사는 문과 분야에서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의 직종이다. 대부분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만 해왔던 사람들이 판검사가 되기 마련인데.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 이전에는 별다른 사회 경험없이 사법연수원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판검사 자격을 얻었다. 이후 무난하게 판사 경력을 쌓아 30여년 정도 되면 대법관이 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서오남(서울대 오십대 남성)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러다보니 판사들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하고 특권 의식에 젖어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을 한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았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이와 비슷한 논점으로 법무부의 ‘탈 검찰화’도 진행 중인데 대법관의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된 시민사회의 요구였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를 각별히 염두에 두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존중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대한 인식, 국민의 기본권 보장 의지 등 대법관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공정한 판단 능력과 법률지식 등을 갖춘 인물을 선별했다”고 밝혔다.

그런 인물인지 면면을 들여다보면. 

김명수 대법원장 역시 대법관 출신이 아니고 임명될 때 대법관들보다 기수가 낮은 경우가 있어서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만큼 대법원의 변화를 주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의중이 반영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먼저 이번 임명 제청에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김 변호사는 전북 진안 출신으로 1988년부터 활동했고 헌법과 노동법에 대한 조예가 깊다. 특히 법조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고 그런 소신으로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을 창립했고 2010년~2012년까지 직접 회장을 역임했다. 

출세의 통로로 법조인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김 변호사는 스스로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 사건을 보고 사법시험을 보기로 맘을 먹었다. 판검사를 거부하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것도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해서였는데, 김 변호사는 1985년 발행된 잡지 <고시계>에서 “사회질서 자체가 불공평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일까? 사법시험 공부가 해석에만 치중해 법 제정 동기와 배경 그리고 사회적 기능을 도외시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며 소신을 드러낸 적도 있다.

이동원 제주지법원장(17기)은 1991년 판사로 임용된 뒤 27년간 전국 법원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고 적극적인 법리 적용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CJ의 CGV가 계열사에 스크린광고 영업대행 업무 전체를 위탁한 것은 공정 거래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소신껏 판결한 적도 있었다. 

노정희 법원도서관장(19기)은 1990년 판사로 임용된 뒤 5년 만에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지만 2001년 판사로 재임용됐다. 노 관장은 여성과 아동 인권 문제에 천착해왔고 학교폭력 예방 활동에 직접 나서는 등 책상에 앉아 판결만 하는 판사가 아닌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법관이다.

앞으로 기존 10인의 대법관(김소영·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김재형·조재연·박정화·안철상·민유숙)과 3인 그리고 김 대법원장이 어떤 대법원의 모습과 판결을 보여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편, 3인에 대한 제청에 문 대통령이 승인하고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인사 청문회가 실시되고 본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임명 절차가 완료된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