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와 에버랜드 땅값 부풀리기 보고서 조작, 다시 보는 국민연금 무리한 작업의 배경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해 보고서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SBS의 ‘끝까지 판다’ 탐사보도팀은 3일 국민연금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이뤄지면 2조1000억원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는 가짜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SBS는 탐사보도팀 '끝까지 판다'를 꾸려 삼성 문제를 집중 보도하고 있다. (캡처사진=SBS)

삼성물산의 지분 11.61%, 제일모직의 지분 5.04%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은 굳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해줄 동기가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삼성물산이 제일모직보다 기업 가치가 더 큰데 둘의 합병 비율을 3주 대 1주로 하면 3161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의 추계). 그런데 합병이 성사됐고 국민연금은 그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조작된 근거를 만들었다.

즉 제일모직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삼성물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작업이 필요한데 제일 먼저 제일모직 소유의 용인 에버랜드 땅값을 뻥튀기 했다. 에버랜드 주변의 토지 가격은 평당 154만원인데 국민연금 리서치팀은 에버랜드의 땅값을 30% 높은 평당 200만원으로 평가했다. 개발도 안 된 에버랜드 토지만 비현실적으로 높게 책정했고 리조트 및 골프장과 같은 시설이 있는 40만평의 토지를 중복 계산하는 수법이었다. 

두 번째로는 제일모직이 최대 주주로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뻥튀기하는 작전이다. 실무 평가진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를 4조8000억원으로 산정했지만 리서치팀이 더욱 높게 책정하라고 평가진을 압박했다. 결과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는 3배 가까이 부풀려진 11조6000억원으로 평가됐다. 

삼성물산 3주 대 제일모직 1주로 합병되면 국민연금이 손실을 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리서치팀은 4시간만에 2조1000억원의 합병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보고서를 추가 급조했다.

국민연금은 조작된 보고서를 만들었다. (캡처사진=SBS)

합병이 이뤄진 후 뒤탈이 날까봐 걱정했던 국민연금의 직원들은 엉터리 보고서를 없애려고 하거나 국정농단 수사에 협조한 일부 직원을 ‘조직의 배신자’라고 공격했다. SBS의 에버랜드 땅값 의혹 보도가 지난 3월에 나갔고 국민연금은 떠밀리듯 내부 감사를 벌여 위와 같은 뻥튀기 평가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에는 직원들에 대한 입단속과 은폐 의혹은 빠져있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이러한 삼성 합병 작전을 총괄했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배임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상태다.

당시 이재영 부장판사(서울고법 형사10부)는 “특정 기업의 합병 성사를 위해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 의결권을 행사해 위법하고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국민 노후자금에 막대한) 손해를 초래했다.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관리 운용에 대한 국민 신뢰가 실추된 점을 참작하면 엄정하게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20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러면 왜 국민연금은 이런 위험한 작업에 발벗고 나섰을까. 

삼성그룹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삼성전자다. 그러나 삼성의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의 손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보유 지분이 0.57%로 턱없이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이 부회장이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 23.2%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2%를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의 지분 19.7%를 보유하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되면 이런 순환출자의 고리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이 11.3%까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으로 인해 국가기관이 움직였다는 상당한 정황이 있고 오너 일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에게 말을 제공하는 등 뇌물을 건넸다고 의심받고 있다.   

삼성이 박근혜 정권의 부당한 권한 행사를 위해 최씨 측에 뇌물을 준 것으로 의심되는 총 액수 293억1800만원(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2800만원·승마 관련 72억9000만원·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은 이 부회장의 막대한 이익을 위한 대가로 판단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재판 중인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돼 5월15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6년 10월24일 jtbc의 태블릿PC 보도 이후 펼쳐진 국정농단과 탄핵 정국에서 삼성에 대한 이런 의혹은 총체적으로 불거졌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대법원 재판이 남아있는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얼마나 인식했는지 이에 따른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될지 그 여부가 관건이다.   
지난 2월5일 내려진 2심 판결문을 통해 정형식 부장판사(서울고법 형사합의13부)는 이 부회장 측이 말 소유권을 최씨 측에게 넘긴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런만큼 말 구매 대금을 뇌물로 보지 않았다.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돈을 해외 계좌로 빼돌리는 재산국외도피 혐의도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선고 이후 SBS의 탐사 보도(에버랜드 땅값 부풀리기)가 이뤄졌고 시기가 맞물려 jtbc의 보도(노동조합 와해) 역시 집중됐다. MBC, 뉴스타파, 미디어오늘도 ‘삼성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그럼에도 삼성은 인터넷 여론에서 한진그룹의 조양호 일가만큼 국민적 지탄과 주목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이 언론의 광고시장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몇몇 주요 매체에서 비판적으로 보도하더라도 2, 3차 보도로 확산되지 않았던 측면이 있는 것인데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삼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제대로 확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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