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농단의 피해자 고발대회 열려, 긴급조치 당사자·아람회 사건·통합진보당·민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진실을 디가우징했다.” 

사법 농단의 피해자들이 외쳤다. 진실을 은폐하려고 해도 양 전 원장 체제의 사법부에서 재판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 자체가 진실을 뒷받침하고 있고 그런 사례는 넘쳐난다. 

그들이 5일 19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고발대회>를 열고 “양승태를 구속하라! 진상을 규명하여 피해자 원상회복!”이라며 구호를 외치고 피해 사실을 성토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가면을 쓰고 디가우징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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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은 단순히 의혹 수준이 아니라 그 당시 재판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존재한다. (사진=박효영 기자)

종이 문서를 불에 태워버리듯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강한 자기장을 가해 데이터를 영구 삭제하는 것이 디가우징(degaussing)이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업무용 컴퓨터는 디가우징됐다. 애초 PC(개인 컴퓨터)를 사적으로만 활용했다면 수사당국이 들여다 볼 필요가 없는데 양 전 원장과 박 전 처장 스스로 업무용 컴퓨터의 하드를 디가우징해서 다 없애버려야 할 만큼 부끄러운 짓을 했고 그게 데이터로 남아 있었다는 반증이다. 

고위 공직자의 업무용 컴퓨터를 삭제하는 것은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지난 1월 퇴임한 김용덕·박소영 전 대법관의 컴퓨터는 진상조사를 위한 목적이 있다는 취지로 디가우징하지 않았다. 더구나 2017년 10월31일 양 전 원장의 컴퓨터가 디가우징됐는데 나흘 전 10월27일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판사 블랙리스트 파동과 관련 추가 조사를 진행할지 말지 논의하던 시점이었다. 타인의 범죄 증거를 인멸할 때 적용되는 증거인멸죄(형법 155조)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떳떳하지 못 한 행위의 증거를 인멸했다는 도덕적 지탄을 받기에 충분하다.

마침 양 전 원장 체제의 법원행정처가 하창우 전 대한변협(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사찰했다는 문건이 드러났다. 양 전 원장이 추진하는 상고법원 도입을 하 전 회장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실제 법원행정처는 하 전 회장의 부동산 거래내역을 뒷조사해서 활동을 위축시키려고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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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농단 고발대회가 열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사진=박효영 기자)

이런 식으로 양 전 원장의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보수정권이 좋아할만한 재판의 결과를 냈던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들이 있다. 

해당 재판의 사건 속 인물들은 지난날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양민호 동북아평화경제협회 부회장(전 청와대 비서관)은 “긴급조치의 피해를 받은 우리는 대법원의 외면으로 피해배상을 받지 못 했다. 명백히 국가 범죄의 피해를 봤는데 배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도의 통치 행위를 한 것이라고 인정해주는 꼴이고 그렇게 면죄부를 줘버렸다”며 “(박근혜 정부의 집권 이후) 판사는 청와대에서 만나자고 해도 안 가야한다. 그게 사법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부회장은 1978년 9월 서울대에서 유신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 9호 위반에 걸려 영장없이 체포됐고 10개월 간 감옥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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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호 부회장은 긴급조치 피해 당사자로서 발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아이러니하게도 양 전 원장의 대법원은 2013년 4월18일 긴급조치 9호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의 재심을 보는 과정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2015년 3월 “위헌은 맞지만 배상할 필요는 없다”며 상반되는 결정을 했다. 심지어 당시 법원행정처는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인 판사들을 징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종합하면 양 전 원장의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을 목표로 세운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직전의 법리적 판단까지 뒤집었고 개별 판사의 판결까지 주도면밀하게 관리했다고 볼 수 있다.

양 부회장은 “양 전 원장만이 아니라 사법부와 거래를 시도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 국가배상을 안 해주려고 사선 변호사까지 고용한 법무부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해전 공동대표(이명박근혜 정권 대법원 사법농단 청산 피해자연대)는 “과거사 청산을 유린한 박근혜 정권의 대법원 사법농단으로 아람회 사건 피해자들은 반국가단체로 몰려 고문당한 37년 전 5공화국 대공분실 지하실에 갇혀 있는 악몽과도 같은 고통을 받고 있다”며 “아람회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완전한 명예회복과 정의로운 배상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람회 사건은 1981년 5월17일 학생, 교사, 대학강사 등 10명이 대전에서 김난수씨(당시 육군 대위)의 딸 아람이 백일잔치 때 모여 반국가단체를 결성했다며 불법 구금하고 고문했던 전두환 군사정권이 자행한 용공조작 스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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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전 공동대표는 사법농단에 대해 분노를 쏟아냈다. (사진=박효영 기자)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의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상조사를 실시했고 2009년 5월 서울고등법원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박 대표의 비판은 이런 점이다. 비슷한 용공조작 사건인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에 연루된 김지하 시인은 18대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을 지지선언했다는 이유로 양 전 원장 대법원이 국가배상 판결을 확정해줬는데, 아람회 사건 피해자들은 그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서 국가배상의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김지하 시인과 달리 일실수입(사고가 없었다면 피해자가 얻을 이익과 소득) 국가배상을 모두 무효화한 박근혜 정부의 대법원 사법농단은 고문조작 국가범죄를 부정했고 과거사 청산을 짓밟았기 때문에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김재연 전 국회의원(민중당 대변인)은 “양 전 원장의 대법원이 해산당한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 5명이 제기한 행정소송(2015년 11월)을 두고 어떻게 (박근혜 정부와 딜을 해서) 활용해야 할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는 문건이 나왔다”며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에서 통진당이 해산되고 10개월 동안) 그 사이에 청와대와 양승태 간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꼭 알아야겠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문건을 해석해봤을 때 “(양 전 원장의 대법원이 재판을 통해) 우병우 전 수석을 협박해서(박근혜 정부가 좋아하지 않는 판결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 환기) 뭔가 얻어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진실을 알고 싶다. 진실이 밝혀진다면 양승태는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8월28일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통진당 이석기 전 의원을 중심으로 경기도당 인사들이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를 구성해서 회합했고 실제 내란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구속기소 됐고 당시 법무부는 통진당을 대상으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했다. 결국 헌재는 해산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에서 내란음모는 무죄로 판단됐고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최종 유죄로 인정돼 이 의원은 징역 9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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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연 전 의원과 통진당 사람들은 대법원에서 1인 시위를 매일 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김 전 의원은 그동안 통진당 소속으로 겪었던 서러움을 토해냈다.

“대법원 앞에 판을 깔고 때로는 비를 맞으면서 땡볕에 땀을 흘리고 앉아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시민들이 그런 질문을 한다. 양승태 나쁜 것은 아는데 통진당과 이석기 피켓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 사법농단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안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안 되냐는 설득의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현재 통진당 사태로 인해 10명이 감옥에 갔고 2명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 피해자들 앞에서 당신의 이야기는 좀 뒤로 빼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조금 더 기다리라고 말할 수 있나. 양승태를 구속하고 감옥에 있는 이석기 전 의원을 석방해야 한다. 해산된 통진당의 10만 당원의 빼앗긴 명예는 회복돼야 한다. 그동안 종북으로 몰렸던 그 억울한 시간을 되찾고 싶다.”

송상교 사무총장(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민변도 사찰당했다”며 “법원 내부에 판사 개개인은 강직하고 훌륭한 분들도 있지만 법원은 정의롭지 않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을 보면 대법원이 민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상세히 나와있다.

송 총장은 “해방 이후 70년동안 법원은 한 번도 스스로 개혁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조폭 두목도 아니고 대법원장을 CJ(Chief Justice)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민변은 대법원의 관리 대상이라고 말하는 송상교 사무총장. (사진=박효영 기자)
민변은 대법원의 관리 대상이라고 말하는 송상교 사무총장. (사진=박효영 기자)

한편, 하창우 전 회장이 당한 것처럼 양 전 원장의 법원행정처는 모든 실과 국을 다 동원해서 내부 전산망을 뒤져 상고법원을 반대하는 변호사에 조직적으로 대응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예컨대 변호사의 수임 내역을 뽑아 국세청에 알려주거나 변호사의 권한을 변리사에게 양도하는 일도 검토됐다. 사법부가 대놓고 변호사들을 길들이려고 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당분간 사법 농단의 후폭풍은 거셀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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