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선위의 공시누락 판단, 금감원은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분식회계 인정, 이재용 부회장의 편법 승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스토리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고의로 공시를 누락했기 때문에 담당자를 해임하라고 권고하고 검찰에 고발한다고까지 했는데 뭔가 께름칙하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12일 삼성 바이오로직스(삼바)의 회계 부정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놨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제기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한 것이었다는 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편법 승계 의혹과 관련되는 분식회계 문제에 대해서는 판단을 미뤘다. 

증선위의 결론은 이런 거다. 

삼바가 바이오젠(미국의 유명한 바이오 기업)에게 준 삼성 바이오에피스(에피스)에 대한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로 미래에 그 가격보다 비싸지면 권리를 행사해서 차익을 얻을 수 있음)을 공시하지 않은 것이 고의적이고 명백한 회계기준 위반이지만. 삼바가 에피스의 기업 가치를 뻥튀기하기 위해 자회사였던 상태를 관계사로 변경한 것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했다.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공시 누락 결과 발표를 마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공시 누락 결과 발표를 마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1일 1년2개월의 특별 감리 끝에 삼바가 자회사인 에피스의 가치를 고의로 부풀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상급기관인 증선위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일종의 파기환송을 한 것이다. 당초 삼바의 상장 폐지도 고려됐었는데 증선위가 문제 삼은 공시 누락 파트는 상장의 적격 심사 대상이 아니라 상폐를 피해가게 됐다. 

삼바 측은 이런 증선위의 결정을 두고 납득할 수 없다며 행정소송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삼바는 2011년부터 4년 내내 적자였다. 그러나 2015년 1조9000억원의 흑자를 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삼바는 2015년 자회사였던 에피스를 관계사로 변경했고 에피스의 가치가 2900억원에서 4조8000억원으로 뻥튀기 됐다. 자회사는 회계 장부로서의 가치만 인정되는데 반해 관계사는 시장가격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피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크게 호재가 될만한 일이 전혀 없었고 오직 삼바가 직접 나서서 에피스에 대한 좋은 소문을 퍼트렸다. 즉 나스닥(미국의 장외주식시장) 상장, 복제약 유럽 인가 등 이런 호재가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에피스의 지분 15%를 갖고 있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정보를 퍼트리고 이를 명분으로 삼바는 에피스를 관계사로 변경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건물 전경.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홈피)

그렇게 삼바는 에피스의 가치를 부풀려 엄청난 흑자를 거둔 것처럼 회계 조작을 자행했고 그 위험을 무릅쓴 의도를 두고 논란이 있는 상황이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삼바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세금 덜 내고 경영권 승계’하기 위한 긴 스토리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썼고 2007년 삼성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총수 일가에 대해서 “그들은 숨 쉬는 것 빼고 모두 불법”이라고 말했다. 후술될 편법과 꼼수가 모두 가능했던 것도 규제 당국인 국가기관을 돈으로 관리했던 대관(對官) 업무에 철저했기 때문이라고 삼성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는데 김 변호사도 관련 증언을 한 것이다.  

삼성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책 '삼성을 생각한다'. (책표지=사회평론)
삼성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책 '삼성을 생각한다'. (책 표지=사회평론)

이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물려받으려고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시가총액 500조원대의 거대 기업을 물려받기 위해 그에 걸맞는 상속세를 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거액의 세금이 부담스러우면 아들이라는 이유로 재산을 물려받는 신분 세습을 하지 않으면 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차원에서 한국 재벌 기업의 승계 문화에 비판적이더라도 ‘오뚜기’처럼 세금 잘 내고 법만 잘 지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이 부회장은 1994년 즈음 두 차례 이 회장으로부터 61억4000만원을 증여받았을 때 증여세 16억원을 냈다. 그때 낸 세금으로 61억원만 갖게 된 것이 아니다. 그 돈으로 비상장 삼성 계열사 주식을 온갖 편법으로 취득했고 현재 이 부회장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8조원대에 달한다. 2016년 9월 함태호 명예회장이 작고했을 때 아들인 함영준 회장에게 보유 지분 3600억원을 전부 상속했는데 함 회장은 1500억원의 상속세를 1원도 모자람없이 5년 안에 분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회장에게 주식 가치의 막대한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이다. 지배권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을 나열해보면.

①(1995년)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각각 23억1572만원과 23억7000만원 어치 매입
②(1995년)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상장 이후 주식을 매도(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매입)했고 539억원의 차익을 남김
③(1996년)삼성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헐값(8만5000원짜리를 7700원)으로 125만 4000주(전체의 62.5%)를 발행 
④(1996년)이 부회장은 이중 절반을 48억원에 매입했고 나머지 절반은 3녀(이부진·이서현·故 이윤형)가 매입
⑤(1996년)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했고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의 지분 31.25% 보유
⑥(1998년)에버랜드가 삼성생명(삼성그룹 전체의 지주회사격)의 지분 18%(344만주)를 300억원에 헐값(주당 70만원짜리를 9000원에)으로 매입하고 대주주가 되어 사실상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 기업이 됨
⑦(1999년)비상장사 삼성SDS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230억원어치(230만주) 발행
⑧(1999년)이 부회장이 BW를 70억원에 매입하고 이를 통해 삼성 SDS의 지분 11.25%(209만주) 확보했고 SDS는 삼성 계열사 내부 거래로 급성장 
⑨(2014년)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해서라면

복잡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 따라 제일모직의 대주주라서 끝난 게 아니다. 삼성그룹의 코어는 당연히 삼성전자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좀 더 지분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보유 지분이 0.57%로 턱없이 부족하다. 90년대와 달리 2000년대는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과거처럼 편법을 일삼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5월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졌고 이 부회장의 승계 프로젝트는 좀 더 성급해졌다. 현재 이 부회장이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은 23.2%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7월17일 합병됐는데 여기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맞물려 마지막 이 부회장의 시도가 있었다.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5일 오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이 부회장은 이날 항소심 선고 지난해 2월17일 특검팀에 구속된지 353일 만에 풀려나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2%를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의 지분 19.7%를 보유하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되면 이런 순환출자의 고리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이 11.3%까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 각각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합병에 동의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움직였을까.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최지성·장충기·박상진)을 통해 역사상 최악의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접근해서 핀셋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삼성측이 박근혜 정부의 권한 행사를 위해 최씨에게 뇌물을 준 것으로 의심되는 액수는 총 293억1800만원(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2800만원·승마 관련 72억9000만원·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에 이른다.

그 돈이 먹힌 것일까.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위해 발빠르게 뛰었고 그 결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배임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실형까지 살게 된 배경을 보면 국민연금에 끼친 손해를 방치했다는 성격이 있다. 삼성물산의 지분 11.61%, 제일모직의 지분 5.04%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은 굳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해줄 동기가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삼성물산이 제일모직보다 기업 가치가 더 큰데 둘의 합병 비율을 3주 대 1주로 하면 3161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의 추계). 그런데 합병이 성사됐고 국민연금은 그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조작된 근거를 만들었다. 국민의 노후자금에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그런 짓을 했다.

국민연금은 제일모직의 가치를 극대화해서 바라봐야 했고 그 작업을 위해 첫 번째로 제일모직 소유의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땅값을 뻥튀기했다. 에버랜드 주변의 토지 가격은 평당 154만원인데 국민연금 리서치팀은 에버랜드의 땅값을 30% 높은 평당 200만원으로 평가했다. 개발도 안 된 에버랜드 토지만 비현실적으로 높게 책정했고 리조트 및 골프장과 같은 시설이 있는 40만평의 토지를 중복 계산하는 수법이었다. 

국민연금 합병 관려 보고서에는 제일모직을 고평가하는 내용이 많다. (캡처사진=jtbc)

두 번째가 바로 제일모직이 최대 주주로 있는 삼바의 가치를 뻥튀기하는 작전이다. 실무 평가진은 삼바의 기업 가치를 분식회계가 진행된 뒤 보통의 가격인 4조8000억원으로 산정했지만 리서치팀이 더욱 높게 책정하라고 평가진을 압박했다. 결과적으로 삼바의 기업 가치는 3배 가까이 부풀려진 11조6000억원으로 평가됐다. 궁극적으로 국민연금 합병 보고서에는 삼바 요인이 비현실적으로 좋게 평가된 것이다. 심지어 리서치팀은 3주 대 1주 비율로 합병되면 국민연금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보고서가 제출됐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4시간만에 2조1000억원의 합병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대응용 보고서를 급조했다.

‘삼바’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다시 돌아와보면. 

전자제품과 반도체에 강한 삼성전자는 오래 전부터 미래의 먹거리는 바이오 산업에 있다고 판단해서 2011년 삼바를 설립했다(삼성전자 40%/제일모직 46%/삼성물산 10%). 

삼바는 2012년 바이오젠과 합작해 에피스를 설립했지만 분명 삼바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다(91%에 이르는 지분율). 물론 바이오젠에 콜옵션이 부여됐다. 

정말 의아한 것이 삼바는 “에피스의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해 관계사로 변경했다고 해명했는데. 먼저 바이오젠에 콜옵션을 요청한 것도 에피스의 호재를 떠벌린 것도 모두 삼바라는 점이다. 그 호재는 현실화되지 않았고 콜옵션도 행사되지 않았음에도 이런 무리수가 감행된 배경은 결국 이 부회장의 승계 문제와 직결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금감원은 삼바가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더라도 바이오젠이 콜옵션 행사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직접 문의해서 확인했고 그런만큼 ‘고의적 분식회계’가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더 나아가 금감원은 삼바가 에피스의 지분율을 85%에서 91%로 높였으면서 종속성을 약화시키는 관계사 전환 조치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결정에 비해 증선위의 판단은 반쪽짜리라는 평가가 시민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삼바가 콜옵션 공시를 누락했기 때문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가능했다. 콜옵션 공시를 누락하지 않았다면 삼바의 가치는 절반으로 줄어 제일모직의 가치도 줄어들었을 것”이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3대 1 합병비율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바이젠이 언제든지 콜옵션을 행사해 에피스에 대한 지분이 늘어난다면 그 자체로 삼바의 가치는 저평가될 수밖에 없고(채무로 평가되기 때문) 제일모직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12월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속개된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물론 국민연금이 이미 답정너(답은 정해져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였지만 합병에 찬성하기 더욱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삼바의 분식회계 논란은 이 부회장의 뇌물죄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파괴력이 크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대법원 재판이 남아있는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얼마나 인식했는지 이에 따른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될지 그 여부가 관건이다.   

2월5일 2심 선고 이후 SBS의 탐사 보도(에버랜드 땅값 부풀리기)가 이뤄졌고 MBC, 뉴스타파, 미디어오늘도 ‘삼성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지속적으로 보도했지만 이런 사실관계가 재판에 반영되기는 어렵다. 즉 이 부회장의 3심은 이미 제시된 공소 사실에 대해서만 다시 따져보는 것이지 새로운 문제가 덧붙여지지 않는다.

고로 이 부회장이 가장 곤란해하는 것은 삼바 사태가 검찰로 가는 일이다. 아예 새로운 공소 내용을 가지고 검찰이 강제수사권을 통해 중요한 혐의를 파헤칠 수 있고 이게 다시 기소되는 것만큼 이 부회장에게 피곤한 일은 없다. 

당장 증선위가 돌려보낸 사안에 대해 금감원이 여전히 분식회계라는 결론을 유지해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막강한 로비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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