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편가르기에 얽매이지 않는 소신, 지방자치 전문가, 정무적 판단 경험 전무, 유시민이 조언한 비대위원장의 역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현재의 한국 정치에는 일관되게 사는 사람이 대단히 위험하다. 앙드레 지드가 원래 공산주의자였는데 소련을 다녀와서 공산주의에 회의를 느꼈다. 나에게 누군가가 당신은 진보요 보수요라고 물을 때 답을 할 수 없으나 우리는 무의식 중에 답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다.”

2017년 12월3일 방송된 tvn <유식한 아재들의 독한 인물평 Zone>에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국민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김 내정자는 16일 한국당의 비대위원장으로 낙점됐다. 아직 다음날(17일) 열릴 전국위원회의 추인 절차가 남아 있지만 사실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당을 수술할 선장으로 확정됐다. 

1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혁신위 '신보수주의 국가개혁 심포지엄'에서 강연을 위해 참석한 김병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내정자의 말은 자신의 현재 행보와 일치했다. 정치적 편가르기를 그토록 싫어했고 그런 소신에 따라 진영을 초월해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김 내정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 장관을 지냈고 2016년 말 국정농단 정국이 한창이던 당시 박근혜 정부의 거국내각 총리로 물망에 올랐었다가 끝내 철회됐다. 구원투수로 선택받았던 배경에는 친박으로 알려진 함승희 전 의원이 설립한 <포럼 오늘과 내일>의 정책연구원을 맡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됐는데 김 내정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싱크탱크에서 활동하는 것에 우려를 갖기 보다는 진영을 뛰어넘어 활동하는데 의의를 뒀다.

노무현 정부에서의 관직을 내려놓은 뒤엔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지방자치위원장과 유권자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을 지낼 만큼 지방자치에 뜻을 두고 진보적인 시민사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김 내정자는 미국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까지 국민대에서 명예교수를 지낸 정치학자다. 김 내정자는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시절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을 맺었다. 무엇보다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에 대해서 노 전 대통령과 철학을 같이 했고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캠프에 들어가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

그렇게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간사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입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내정자가 2017년 3월3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토론회에서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단점을 꼽자면 김 내정자 스스로 직접 선거에 나선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학자이자 지명직 최고위 참모를 해봤지만 정무감각이 탁월하다고 볼 요소는 부족한 셈이다. 2006년 7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내정됐지만 ‘제자 논문 표절’과 ‘두 딸의 외국어 고등학교 편법 입학’ 논란이 불거져 취임하자마자 사퇴했다. 

정무적 판단을 해볼 위치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김성태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3주 동안 비대위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회와 의원총회 논의를 바탕으로 김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모시게 됐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철한 현실 인식과 치열한 자기 혁신인데 김 교수가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유시민 작가는 6월28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한국당의 내홍이 점입가경”인 상태에서 비대위원장의 역할과 관련 ‘3가지 권한’과 ‘3가지 작업’을 역설했다.

한국당 비대위원장의 3가지 권한과 3가지 작업을 제시한 유시민 작가. (캡처사진=jtbc)

유 작가는 “한국당의 비대위원장으로 누가 오든 전권을 가져야 한다”며 △새로운 정책 노선을 설정하기 위해 당의 강령을 작성할 권한 △인적 혁신을 위한 당 윤리위원회의 권한 △공천권 3가지를 꼽았다.

유 작가는 “비대위원장이 이 세 가지를 다 가져야만 한국당을 어떻게 할 수가 있다”며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①친박을 18명~19명 출당 조치(20명 넘으면 교섭단체 구성) 
②인재를 영입할 때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전략 공천을 보장
③남북과 북미 대립이 해소된 한반도 평화체제에 맞는 신 보수주의 노선의 강령을 구상

유 작가는 이 세 가지 작업을 진행할 전권이 없으면 “세종대왕을 모셔다 놔도 혁신을 못 한다”며 “사람보다 중요한 건 의원들의 합의인데 우리의 공천 권한을 포함해서 모든 권한을 다 줄테니 우릴 좀 살려주세요. 그 정도는 해야 뭘 했다 싶은 거지. 자기들끼리 백날 싸워봤자 답이 안 나온다”고 일침을 날렸다.

다 죽어가는 박근혜 정부의 거국내각 총리, 모두가 기피했던 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 지방선거 참패 이후 부담 백배인 비대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세 번의 기회 끝에 한국당과 공식 인연을 맺게 된 김 내정자가 한국당을 어떻게 수술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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