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의 ‘망상’ ·· 새로 공개된 국가전복의 ‘증거들’
기무사의 ‘망상’ ·· 새로 공개된 국가전복의 ‘증거들’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8.07.20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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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국방부를 통해 입수, 치밀한 쿠데타 모의 가능성 있어, 언론과 국회 가릴 것 없이 장악 음모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군 기무사령부의 추악한 음모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계엄이 선포된 뒤 그걸 알리는 ‘비상계엄 선포문’과 ‘계엄 포고문’까지 작성됐다. 국가정보원과의 협력은 물론 언론, 국회, 외신까지 어떻게 대응하고 통제해서 계엄을 현실화시킬지 치밀하게 계획이 짜여져 있었다. 

이미 공개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문건이 군의 개념 계획에 따른 희박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등 일부에서 주장했었는데 신빙성이 떨어지게 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오후 전날 국방부를 통해 국가안보실과 민정수석실에 추가 기무사 문건이 제출됐다며 그 내용을 조목조목 브리핑했다.

문건에 대해서 종류를 분류해 발표하고 있는 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제공)

기존에 공개된 문건은 큰 틀에서의 계획이 담겼다면 <대비계획 세부자료>라는 추가 문건은 ‘단계별 대응계획·위수령·계엄선포·계엄시행’의 4가지로 분류된 구체적인 21개의 실행 항목을 담고 있다. 분량도 67쪽에 달한다.

기무사는 “계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보안유지 하에 신속한 계엄선포”를 위해서는 “계엄군의 주요 길목 장악 등 선제적 조치여부가 계엄 성공의 관건”이라며 군사독재 세력의 계엄령 악용을 견제할 헌법 장치들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애초부터 갖고 있었음을 드러냈다. 

법률에 따라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계엄사령관이 돼야 함에도 기무사는 이를 배제하고 육군사관학교 위주의 계엄 직제 편성 그리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앉히려고 계획했었다. 추가 문건에는 이 법률 위반 사항을 우회하기 위한 판단 요소와 검토 결과가 자세히 나와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가정해놓은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시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 통제에 따르도록 지시하고 국정원 2차장은 계엄사령관이 될 장준규 전 육참총장을 보좌하도록 조치하는 등 육군의 국정원 통제 계획을 세워놨다. 계엄사령부를 어디에 배치할지도 자세히 설명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67쪽에 달하는 이번 문건 외에도 추가 문건이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일단 당시 촛불집회 정국에서 계엄을 선포하는 것이 정당한 판단이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기무사가 작성한 두 가지 문건은 합참 계엄과가 2년마다 갱신하는 <계엄실무편람>의 내용과도 아예 달랐다. 즉 북한군의 침입 등 국가 전시 사태에 대비한 정상적인 계엄 매뉴얼과 아예 다른 쿠데타 모의의 가능성이 농후한 위헌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였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었으니 적어도 정상적인 계엄 선포의 절차는 이런 거다.

황 전 대행이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통해 상황 판단 →계엄령 검토 지시 →국방부 →합참 →육군본부 →합참 →국방부 →국무회의 의결 →황 전 대행의 선포

하지만 현재 황 전 대행은 전혀 이 사실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고, 3사관학교 출신인 이순진 전 합참의장도 문건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반응이다. 만약 당시의 군 통수권자와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박 전 대통령을 위시한 문고리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 또는 그 누군가가 비선 루트로 계엄령을 모의했고 이것이 아무 법적 권한이 없는 기무사를 통해 실행 계획으로 이어졌다면 친위 쿠데타로 볼 수 있다. 

이번 추가 문건에는 계엄령 선포를 알리는 담화문의 역사적 사례를 참고한 흔적이 있다. 1979년 10.27 계엄령, 80년 5.17 계엄령, 2017년 3월 버전 이렇게 세 가지 계엄 담화문을 제시해놨다.  

송영무 장관과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현재 추가 문건을 토대로 수사하고 있고 구체적인 결론을 내서 법원에 형법 90조 내란 음모와 예비 혐의로 기소할지 고심하는 중이다. 내란을 준비하는 범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즉 무기징역에 가까운 선고가 내려질 만큼 엄벌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중요한 수사 포인트는 윗선에 대한 보고 문제 그리고 기무사가 예하부대에 그 계획을 지도편달 했는지에 대한 여부다. 

언론 통제 계획을 보면 상당히 치밀하다. 

일단 언론·출판·공연·전시물에 대한 사전검열 ‘공고문’을 발표한 뒤 매체별 계엄사 요원 파견 계획이 있었다. 계엄사 보도검열단은 9개 반으로 운용되고 신문·방송·통신·간행물에 대한 원본을 제출받아 과거 전두환 정부 때처럼 보도지침을 행사하려고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KBS·MBC·SBS와 종합편성채널을 포함 22개 방송,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26개 신문, 연합뉴스·뉴시스 등 8개 통신사 및 인터넷 매체에 통제 요원을 각각 파견시킬 계획을 짜놨다. 인터넷과 SNS 상의 유언비어 유포 통제 계획도 있다.

언론과 더불어 집권 정부를 가장 강력하게 견제할 국회에 대해서 통제하는 것이 기무사로서는 제일 중요했을 듯한데 역시 아주 치밀한 작전이 있다. 

2017년 2월13일 당명을 변경한 자유한국당이 그 당시 20대 국회의 여당이었다. 식물 정부였지만 박근혜 정부가 아직 국가기관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했었다. 기무사는 집권 여당의 권력을 악용해 “한국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 국회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만들었고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라고 표시했다. 그 절차는 이런 거다.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 선포 →위반하면 구속수사와 엄정처리 경고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 검거 후 사법 처리 →의결정족수 미달. 

이런 로드맵으로 헌법 77조 4항과 5항을 무력화시키려고 했다. 계엄 이후의 상황은 모든 것이 위헌적일텐데 그럼에도 그냥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절차에 따른 계엄 해제 무력화를 위한 로드맵을 고안해낸 것으로 보아 계엄 유지를 위한 정당성과 실현가능성을 모색했다고 판단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3월경 먼저 송 장관에게 문건을 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언론과 국회 다음은 화가 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광장’이 제일 위험하다.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보면 도심 광장에 모인 민중의 외침에 대해 독재자들은 부담스러워 했다. 총칼로 유혈 사태를 만들면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두렵고 그렇게 다수의 시민을 다짜고짜 학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소수 광주 시민의 저항을 경험했기 때문에 전두환 정부는 1987년 ‘6월 항쟁’ 때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할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 말기 1979년 부마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차지철 전 경호실장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갈등도 이런 유형이다. 

일단 기무사는 중요시설 494개소와 집회 예상지역인 광화문과 여의도에 기계화사단·기갑여단·특전사를 편성했고 야간에도 장갑차 운용 계엄군을 신속하게 투입할 계획을 수립해놨다.  

기무사는 기타 국가기관에 대한 통제 방안도 꼼꼼히 세워놨고 특히 주한무관단(각국에 파견돼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을 보호하는 병력)과 외신을 대상으로 계엄령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외교활동 강화 내용까지 챙겼다.

한국 현대사에는 군사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헌을 짓밟았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 현대사에는 군사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헌을 짓밟았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1년 5.16 쿠데타 당시의 모습, 두 번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탱크가 시내에 출몰한 모습. 세 번째는 1979년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의 전면 등장의 모습. 네 번째는 1997년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에 등 군사 쿠데타 가담자의 대법원 재판 상황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김 대변인은 문건을 이런 방식으로 공개한 이유에 대해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신속하게 공개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내게 발표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국방부에 기무사 추가 문건을 확보하는 족족 청와대로 제출하라고 지시했던 만큼 실제 그 내용을 보고 매우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판단해서 즉각 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읽혀진다.

다만 현재 송영무 국방부장관을 비롯 청와대가 언제 이 문건의 존재를 알았느냐 그 시점을 두고 부실 대응 아니냐는 책임론이 일고 있는데 김 대변인은 이와 관련 구체적으로 국방부 특수단이 언제 추가 문건을 발견했는지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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