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손실은 유죄이고 뇌물은 무죄, 검찰의 뇌물 집중은 힘빠져, 토탈 징역 32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국가 원수이자 행정수반으로서 저지른 18개 혐의에 대해 징역 24년을 선고받은 뒤였다. 연령(67세)을 생각해볼 때 무기징역과 다름없어서 시쳇말로 ‘노답’이라 사법부에서 구인영장을 발부해도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정치 투쟁으로 나아가 정무적 차원의 대통령 사면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국민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성창호 부장판사(형사32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8년을 추가 선고했다.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상납받고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했다는 2가지 혐의에 대해서 각각 6년과 2년의 유죄가 인정된 것이다. 더불어 이날 오전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의 항소심에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18개 국정농단 혐의에 대해 징역 30년과 벌금 1185억원을 구형했다. 

성창호 판사와 좌배석 우배석 판사가 입장해서 좌석에 앉으려고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먼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보면. 

성 판사는 친박 후보 명단을 만들고 인지도를 살펴 그들의 당선을 돕기 위한 작업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당시 비박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당권을 쥐고 있었는데 공식 채널로 당청이 소통하는 게 아닌 친박을 넘어 진박을 심기 위해 정당의 공천에 개입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 공천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불법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으로 승인했다고 인정됐다.

성 판사는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는 우리 헌법의 근본 가치인 대의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정당의 자율성을 무력화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면 재판 보이콧 중이라 작년 이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뇌물죄 대목이 흥미롭다.

사실 결론은 예견됐었다. 지난 6월 박 전 대통령에 특활비를 상납한 혐의로 국정원장 3인방(남재준·이병기·이병호)은 ‘국고손실 유죄·뇌물공여 무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5조 국고손실죄가 적용됐는데 박 전 대통령은 남재준 전 원장 6억원·이병기 전 원장 8억원·이병호 전 원장 22억5000만원을 상납받았다.

성 판사는 “대략 1조원 정도인 국정원 1년 예산 전액이 특활비로 편성돼 있고 그중 국정원장 특별사업비는 연간 40억원이다. 이는 국정원의 직무인 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정보 수집 등 (국정원의 공적 업무)에 한정해 써야 한다. 특별사업비 전달 관련자들 모두 문제되는 행위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점에 비춰 박 전 대통령 역시 위법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국고손실죄는 인정됐는데 뇌물공여는 인정되지 않았다. 

국정원장 3인방은 모두 구속됐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성 판사는 그 돈에 대한 대가성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 근거로 ‘관행’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동안 국정원 특활비가 청와대에 상납되어 왔다는 것이고, 국정원 특활비를 청와대 특활비 차원으로 관리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매달 5000만원~1억원씩 정기적으로 지급됐기 때문에 국정원장 임명이라는 혜택을 받고 대통령에게 공금을 갖다 바친 것이라는 뇌물 공여의 고의와 뇌물 수수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검찰은 기치료 비용·의상비·사저 관리비 등 명백히 박 전 대통령의 사적인 용처에 집중해 어필했지만 성 판사는 대가성으로만 뇌물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이지 사후 용처는 뇌물죄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당초 징역 12년을 구형했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고 즉시 항소 의사를 밝혔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관리 하에 뇌물적 용도로 쓰인 자금이 국정원의 특활비라는 강한 의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형사32부는 다른 재판에서 이병기 전 원장이 조윤선 전 정무수석·안봉근 전 홍보비서관에게 전달한 특활비에 대해 뇌물이라고 판결했는데 검찰은 이 점에 주목해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포괄적 뇌물죄’ 판례 이론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종합적 직무 범위를 상정해 얼마든지 뇌물죄가 성립할 수 있는데 구체적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인은 피해가고 직속 비서관만 처벌을 받아 형평성에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이날엔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화이트리스트' 관련 속행 공판에 출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검찰은 처음부터 일종의 수사 전략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활비 뇌물 카드를 꺼냈다. 검찰은 작년 10월 일망타진 작전으로 박 전 대통령, 국정원장 3인방, 이원종 전 비서실장, 조윤선·현기환·김재원 전 정무수석,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등 13명을 모두 관련 혐의로 기소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고 확신에 차 있었던 걸로 보이는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가 무죄로 판단됐기 때문에 힘이 빠진 측면이 있다.

한편, 자유한국당은 이날 국정농단의 당사자로서 아주 짤막한 논평을 냈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전직 대통령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재판을 받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큰 아픔이다. 한국당은 책임을 통감하고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원인을 찾고 정치 발전과 한국당의 혁신을 이루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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