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원내대표 스스로 목숨 끊어, 진보 정치의 희망에 실망을 안겨드린 죄책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도덕적 결벽증에 가까울만큼 원칙주의자였다. 진보 정당의 원대한 비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 6월 노 원내대표는 20대 국회 3기 정의당 원내지도부의 선장으로 재신임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먼저 2월22일 노 원내대표는 자기 의원실 소속 전직 비서관이 법무부에 채용됐는데 부당한 청탁이 있다면 그 즉시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노 원내대표는 “그 채용과 관련된 부탁이나 청탁을 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 제가 드린 말씀이 1%라도 사실과 다를 경우 저는 의원직을 사퇴하겠습니다. 사법 처리와 무관하게 사퇴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조사에 응하겠습니다. (의혹을 제기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대단히 유감스럽습니다”라며 그런 부조리한 행위를 했다는 의혹제기 자체에 몹시 불쾌해했다.

두 번째는 사상 최초로 교섭단체 원내대표(민주평화당과 정의당 공동 교섭단체)로서 특수활동비 수령을 거부했을 때다.

노 원내대표는 지난 5일 jtbc <썰전>에 고정 패널로 확정된 뒤 첫 출연해서 “우리만 깨끗하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활비를 국회에서 없애고 정부에선 꼭 필요한 용도로 쓰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입니다. 국회는 예산 편성의 칼을 쥐고 있는 부서 아닙니까. 그렇다면 자기 것은 그대로 쓰면서 다른 부처 특활비에 손을 대는 것은 명분이 없습니다”라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회의 대의명분을 강조했다.

노 원내대표는 지난 4월 진보정당 역사상 최초로 원내 교섭단체의 원내대표가 됐고 국회의장 주재 교섭단체 회동에 참석해 벅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전국민에게 노 원내대표의 죽음이 알려진 것은 23일 10시였다. 노 원내대표는 9시39분 서울 중구의 모 아파트 17층에서 투신했다. 이날은 원내 5당 원내대표의 미국 방문 일정이 끝나고 이들이 다시 국회로 돌아와 활동하게 될 첫 날이었다. 

정의당은 주당 법정 근로시간 52시간 단축 시행으로 아침 상무위원회 회의 시간을 9시반으로 조정했었다. 하지만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에 노 원내대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그의 서면 원고만 발표됐다.

오랫동안 투쟁해왔던 두 가지 약자의 싸움이 소중한 결실을 보게 됐다는 기쁜 소식에 대한 논평이었다. 그 내용은 이런 거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에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 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KTX 승무원들 역시 10여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노 원내대표는 이날 상무위원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정미 대표는 이때까지 노 원내대표의 비극적인 선택을 전혀 알지 못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 원내대표는 이날 상무위원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정미 대표는 이때까지 노 원내대표의 비극적인 선택을 전혀 알지 못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 원내대표는 원고를 작성해서 보냈고 당일 아침까지도 고뇌에 차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자신의 처지를 성찰했던 것이다. 

이미 드루킹 특별검사는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로부터 노 원내대표가 돈을 받았다는 여러 정황과 증거를 확보한 상태였다. 노 원내대표는 전면 부인하는 입장을 재차 밝혀놨었고 그렇게 미국으로 떠난 뒤 돌아왔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노 원내대표로부터 입장을 따로 확인했고 제기된 의혹과 관련 “노 원내대표를 믿는다”며 신뢰를 보였다.  

하지만 노 원내대표는 미국 일정 중에도 고심이 컸을 것이다. 돌아와서도 마음고생을 했고 그런만큼 심신이 무척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정의당원, 정의당을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 이정미 대표를 비롯한 평생의 정치적 파트너 심상정 의원의 기대와 달리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평생의 정치적 파트너였던 심상정 의원과 노 원내대표 그리고 새로 선출된 이정미 대표는 정의당을 이끄는 핵심 그룹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공개된 유서를 보면 노 원내대표는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무거운 도덕적·정치적 책임감을 거론했다.

그는 항상 정의롭고자 노력했고 한국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간절히 원했는데 그때 그 순간의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을 질지 고민 또 고민했다.  

노 원내대표는 지난 2월 본회의장에서 비교섭단체 연설을 했고 개헌 투표까지 포함해서 너무 많은 투표를 하면 유권자가 헷갈릴 것이라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미국 투표용지를 크게 판넬로 만들어 보여줬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의당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괄목할만한 성취를 달성했다. 진보정당 역사상 최초로 원내 교섭단체가 됐고, 지지율은 두 자릿수에 다다랐으며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노 원내대표는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고도 전했다. 

그의 무거운 죄책감은 그를 짓눌렀다.
 
노 원내대표는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며 마지막까지 정의당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드러냈다.

6월 노 원내대표는 재신임을 받고 가장 먼저 한국당을 찾았다. 당시 노 원내대표는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에게 '자유한국당의 역할'을 강조하며 조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치권은 커다란 슬픔에 빠졌고 정치적 대척점에 있었던 한국당도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확고한 정치철학과 소신으로 진보정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셨던 故 노회찬 의원의 충격적인 비보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노 의원께서는 진보 정치의 상징으로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의정활동에 모범을 보여주셨고 정치개혁에도 앞장서 오셨습니다. 촌철살인의 말씀으로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노 의원의 사망은 한국 정치의 비극입니다. 현실에서의 고뇌는 모두 내려놓으시고 영면에 드시길 바랍니다. 고인께서 못 다 이루신 정치 발전에 대한 신념은 여야 정당이 그 뜻을 이어 함께 발전시켜 가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정의당 당원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며 논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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