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이 자란다

고은수

 

미세한 틈도 놓치지 않는 것은 누군가의 법칙이다. 심심할 사이도 없이 무언가로 채워진다. 틈은 틈을 보라고 만든 말. 일부러 곁을 주는 것. 누가 와도 좋은 것.

 

왕복 8차로 노란 중앙선 위, 나무 한 그루 자란다.

 

인도코끼리 귀 같은 이파리를 펄럭이며 오동나무가 놀고 있다. 자동차가 쌩, 지나갈 때마다 잠시 어리둥절하지만 곧 싱그럽다. 파란 신호등이 켜지는 방향으로. 목울대가 씩씩하다.

 

                                                                                                                                                            - 고은수 시집 『히아신스를 포기해』(2018. 시산맥)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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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눈은 틈새에 숨어있는 작은 생명력까지도 놓치지 않고 읽어내는데서 빛난다. 세상에 모든 틈이 다 아름답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틈의 미학을 발견해 낼 수 있다는 것은 시인의 힘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세상의 수많은 균열 또는 틈들, 틈이 있다는 것은 사물의 내부 또한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 내부는 언제나 온기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희망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도 크든 작든 그러한 틈은 존재하는 것, 그것들 속에서도 자라나는 생명이 있다. 틈이 키우는 틈이 있다. 누군가 메워주지 않으면 언젠가 스러질 그런 틈 같은 군상들, 우리는 누구나 고독한 방랑자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 자신도 그 틈들 중에 하나일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차피 우주의 먼지요 세상의 틈이라면 아름다운 틈이 되고 싶다. 꽁꽁 잠긴 마음의 빗장을 조금 열어두기로 한다. 이 결핍을 뚫고 목울대가 씩씩한 싹 틔우는 씨앗 하나 품어 보고프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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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수 시인 /

부산 출생

2016년 <시에> 등단

시집 『히아신스를 포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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