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진실로 사람 된 마음은 어떤 것일까? 생각 행동 실천의 한계를 생각해 본다. 이기심과 이타심 분명 둘 중 하나일 텐데 내 자신이 헷갈린다.

내 주변 여러 사람들의 행적, 행위나 행실을 보며 느낀 바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행실들을 보노라면 자기만의 이익을 위하는 이기심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는 이타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리 왔다 조리 갔다 하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에 따라 이리 하고 저리 하고 있다. 그야말로 아침과 저녁이 다른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 사람임으로서 그때그때의 정황에 따라 생각을 달리 할 수도 있단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그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다. 정월 초하룻날 먹은 마음 섣달그믐까지 가진 못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한 순간에 오뉴월 감주 맛 변하듯 해서는 아니 되는 게 사람의 진정한 사람 된 도리가 아닌가.

사안 사물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별해 초지일관(初志一貫)해야 한다. 자기의 삶을 충실히 영위하며 남의 눈치보고 기회를 엿보며 살 일이 없다. 사람의 근본마음은 올곧음이다. 인륜의 가치인 윤리와 도덕 도리기 올곧음에부터 나온다.

진실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에게나 떳떳하면 되고 잘 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전혀 눈치코치 보면서 남의 이목이나 관심을 살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떠벌리며 없는 체면을 내 세울 필요가 없다.

  소소한 얘기이지만 가까운 인척이 돌아가신지 30여년 된 묘소를 개축하는 현장엘 갔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야산 아늑한 솔 숲속에 있는 묘소는 솔바람소리와 소나무에서 풍겨내는 솔향기로 더 이상의 욕심을 낼 필요가 없는 명당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더 좋은 이상적(理想的)인 곳의 묘소는 없으리라 싶게 그윽한 장소이었다. 쾌적하고 멋진 장소였다. 속칭 명당명소라고나 할까? 높지 않은 야산(野山)이지만 산세도 좋고 주변 풍광풍치도 근사한 장소였다.

금상첨화(錦上添花)격으로 그리 멀지 않은 앞으로는 시냇물이 흘러가고 하천변으로 4차로 국도가 개설 돼 있었다. 그런 도로변에 위치한 현장은 교통통행이 용이해 출타한 자손들이 찾기에 최적의 장소이었다.

대대로 이어나갈 조상의 묘지로 선택된 명당명소라 평 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장소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명당명소임에도 불구하고 묘소주변에 있는 아름드리소나무와 잎이 무성한 침엽수림을 마구잡이로 베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과연 조상을 위함일까? 아니면 자신을 위하는 행위일까? 조상을 위하는 마음보다는 자기만을 생각하고 있는 자기중심이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체면치례였다. 사람간의 대인관계도 이와 다를 바가 별로 없다. 매사를 숙고해야 한다.
  
  사람이 죽으면 주검을 화장해서 어디든 뿌려버리고 혹은 나무 밑에 묻어 수목장(樹木葬)을 하는 요즘 시대이다.

사람의 영혼은 죽으면 육체와 분리돼 즉 혼백(魂帛)이 따로따로 영원토록 존재한다는 게 우리네의 믿음이고 신앙이지만 죽어 이미 썩어 문드러진 시신이 뭘 보고 느끼며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겠나.

조상의 묘소 앞에 있는 좋은 나무들을 베어내서 조상을 위한다는 것이다. 나를 위한 내 생각일 뿐이다. 흙이 돼 버린 조상을 생각함이 아니리라. 내 마음으로 내 안목으로 내가 보니 앞이 가로막혀 답답하기에 나무들을 잘라내고 있는 것 아니겠나.

나만의 생각과 양심 행동이다. 진정한 사람의 사람 된 마음은 아니다. 더욱이 자손 된 사람으로써의 사람 된 도리는 아니리라. 사람으로서 진정한 사람 된 도리를 찾아 실천하기가 어렵겠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숙고하여 행해야만 하리라. 매사가 매일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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