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원하는 신뢰 조치로서의 유해 송환, 남북미의 상호 조치, 종전 선언 가능하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북한이 미국에 전사자 유해를 송환했다. 

1953년 7월27일 6.25 전쟁을 잠시 멈추는 정전 협정이 맺어졌고 65주년인 27일 북한이 참전했던 미군의 유해 55구를 송환했다. 

미군의 유해가 북한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로 송환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군의 수송기가 직접 북한 원산 갈마공항으로 날아가서 인도받았다. 유해 송환은 6.12 싱가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4가지 사항 중 하나다. 넷 중 하나가 이행된 것인데 미국은 사전에 유해를 담아낼 나무 박스를 판문점에 보냈었지만 북미 간의 신경전으로 바로 실현되지 않았었다.  

현재 유해는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에 보관 중이고 8월1일 추모식을 연 뒤 하와이로 옮겨지고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친 뒤 본토의 유족들에게 도달할 예정이다. 

미국은 국가를 위해 전투에 임했던 전사자들의 유해를 꼭 찾아오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이것이 일종의 국가적 자부심이다. 미국의 민주당과 주류 언론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 협상 정책에 회의적인데 이번 조치로 어느정도 여론 환기를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미군 병사의 유해가 미국으로 향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감사하다”고 밝혔고 백악관도 “북한의 약속 이행과 변화에 고무됐다. 북한 내 5300구 유해 발굴 작업의 중대한 첫 걸음”이라고 논평했다. 

뉴욕타임스는 “북미 관계가 진전되면 북한의 비핵화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유해 송환 뿐 아니라 최근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때 약속한 대로 미사일 발사장을 해체했다”며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미군 유해 송환이 북미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도 “(한국 전쟁 실종자 가족연대의 릭 다우니스를 인용해) 유해 송환이 북한의 협상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현재 남북 간에는 다방면의 교류협력이 성황 중이지만 북미는 그동안 딱히 눈에 보이는 상호 조치가 없었다. 비핵화의 시간표를 먼저 확보한 뒤 뭔가 보상 논의를 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이 쉽게 바뀌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 북미 협상의 역사를 보면 꼭 비핵화를 먼저 이뤄낸 뒤 수교를 하는 등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판단해왔는데 전문가들은 그 반대라고 강조한다. 신뢰를 충분히 쌓아야 비핵화가 가능하다. 북미 회담에서 이 점에 공감대를 이뤘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신뢰한다고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싱가폴 회담 이후 삐그덕댄 것도 사실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이 탄도미사일 실험장인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23일(현지시간) 밝혔다. 서해위성발사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곧 파괴하겠다'고 약속한 장소로 꼽힌다. 38노스는 이날 '북한, 서해위성발사장 핵심시설 해체 시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의 서해위성발사장에서 해체작업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럼에도 최근 북한은 동창리 위성 발사장을 해체했고 평양 부근의 탄도미사일 조립 시설을 폐기했다.

더불어 남북 간의 군사적 조치들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남북은 DMZ(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최전방 병력을 후방으로 물리고 있다. 국방부는 DMZ 내의 초소들을 시범적으로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구체적으로 북측과 중화기 무기를 공동 철수하기 위해 협의 중이다. 이는 군사긴장을 완화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DMZ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5년 목함지뢰 사건, 2017년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 북한군 귀순 병사 총격전 등 그동안 1953년 정전 협정 이후 북한은 협정을 42만번 가량 위반했고 3000번의 국지도발을 감행했다. 이러한 우발적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남북은 각각 2km의 공간에 DMZ를 설정했지만 우리측 DMZ 내 GP(Guard Post)는 60개이고 1800명의 병력이 상주하고 있다. 북측은 160개 GP에 1만명의 병력이 있다. 양측은 기관총 등 중화기로 무장까지 했다. 예컨대 우리측 강원도 중동부 전선을 비롯 단계적인 GP 철수가 진행되면 더 이상의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진짜 평화지대가 조성될 수 있다. 

이런 고무적인 환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당장 9월 UN(국제연합) 총회에서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더라도 ‘종전 선언’이 현실화 될 수 있을지 그 여부가 중요하다.

북한은 7월27일을 ‘전승절’이라 부르고 매년 중앙보고대회를 열어 반미 선전을 쏟아내곤 하지만 올해는 대회 개최 소식도 들리지 않고 반미 구호도 잠잠했다. 대신 김 위원장은 이날 평양에서 참전 용사인 노병들의 손을 마주 잡고 그들을 격려했다. 당연히 미국에 종전 선언을 빨리 타결하자는 압박 제스처로 읽힌다. 또한 김 위원장은 중국군 전사자의 묘를 찾아 추모했다. 

조선중앙TV가 27일 방영한 영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국노병대회 참가자 중 항일 빨치산 출신인 황순희(99)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을 만나 손을 잡고 이야기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미국이 선호하던 일괄타결(all in one) 속도전에서 벗어나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일종의 ‘칠면조 요리론’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미국 내 여론이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를 보채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달래면서도 동시에 유해 송환과 발사장 해체에 들어갔기 때문에 북한에 줄 선물을 고민해볼 여지도 커졌다.

그 첫 단계가 바로 종전 선언인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11월 중간 선거에 주목시킬 수 있는 빅 이벤트가 될 수 있고, 김 위원장 입장에서도 9월9일이 정권 수립 70주년이라 시기적으로 안성맞춤이다. 전세계 정상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서 북미가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게 되면 모양새도 좋다. 

한편, 미국이 그동안 종전 선언에 미온적이었던 것은 비핵화 시간표를 확보하려고 했던 차원이기 때문에 만약 종전 선언이 이뤄진다면 시간표와 단계적 제재 완화를 맞교환하는 새로운 합의안이 포함될 수도 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종전 선언 관련 남북미의 물밑 접촉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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