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회 마라톤은 회개와 성찰의 시간,14회 헌혈과 시신기증자로

280회 마라톤 완주의 기록을 가진 한택규 (65세)씨 (사진=신현지 기자)
280회 마라톤 완주의 기록을 가진 한택규 (65세)씨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흔히 인간은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이기면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65세의 나이에 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미소를 거두는 이가 있다. 45세에 마라톤을 시작해 올 20년째로 총 280회 마라톤을 완주한 한택규(65세) 씨.
지난 21일, 37도의 폭염 속에서도 한택규 씨는 장장 16시간을 뛰어 울트라마라톤 100KM를 9번이나 완주한 승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마라톤은 나와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지켜냈다는 성취감에 나는 계속해서 뛰게 된다.”

울트라마라톤 9회, 풀코스마라톤 105회, 하프마라톤 108회, 겨울 혹한의 알몸 마라톤 2회, 63빌딩 계단달려오르기 2회, 산악마라톤 8회, 갯벌마라톤 4회, 해외 마라톤 4회 등, 총 280회의 마라톤 완주 경력을 자랑하는 한 씨는 새벽 4시에 출발해 밤 8시에 결승점에 들어온 소감을 그렇게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그는 65세의 나이를 짐작 못하게 단단해 보였다. 마라톤을 시작하고서부터는 단 한 번도 병원신세를 져보지 않은 모습이라고 했다.
 
 만능 스포츠맨...45세 주위의 권유로 마라톤 시작

“난 원래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어릴 때는 집 근처 한강에서 수영을 즐겼고, 청소년기에는 농구, 배구 복싱 등으로 체력을 다졌다. 마라톤은 내 나이 45살에 유산소 운동을 해보라는 주위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척 힘든 운동이라 뛰기가 고통이었는데 마라톤만큼 가장 정직한 운동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점차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니까 마라톤은 하루아침에 완주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해두어야만 완주할 수 있는 운동이고 조금이라도 운동을 게을리 하면 그 여파가 거짓 없이 나타나는 게 마라톤이다.

뿐만 아니라 마라톤은 수많은 사람이 함께 달려도 결국에는 혼자 달리는 외로운 자기와의 싸움이라 자기와의 약속이 없으면 결코 완주가 쉽지 않은 운동이다. 그런 만큼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은 그 어떤 운동보다 최고조에 달한다. 이것이 마라톤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마포의 한택규 씨의 인쇄소에는 280회의 마라톤에 관련한 기록물과 상패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마포의 한택규 씨의 인쇄소에는 280회의 마라톤에 관련한 기록물과 상패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20년 간 1주일에 5일은 15~ 20km의 한강변 뛰어...
 
4대째 서울토박이로 마포에 나서 마포에서 인쇄업을 하고 있는 한 씨는 마라톤을 하기 위해 20년 넘게 1주일에 5일은 뛴다고 한다. 그의 마라톤 연습구간은 서강대에서 난지도를 돌아 나오는 15~ 20km의 한강변. 마라톤 대회를 앞둔 경우에는 약 2달 동안 뛰는 강도를 높인다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상관없이 나는 1주일에 5일은 꼭 뛴다. 대회를 앞둔 경우에는 뛰는 강도를 조금 높이는 것 이외는 따로 준비는 없다. 내가 운동을 일상으로 하니 우리 사위도 한번 뛰어 보겠다고 새벽에 따라 나서더니 며칠 못가 포기하고 말았다. 마라톤 완주의 성취감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라톤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누가 잡아 끌지 않아도 매일 운동에 나서게 된다. 그럼 매일 인삼뿌리 먹는 것보다 건강은 효과적이다. 하지만 워낙 힘든 운동이라 주위 사람들에게 마라톤을 권유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드물다.”

마라톤 인생은 생활의 변화까지...지역봉사상에 헌혈, 시신기증자로
 

이처럼 꾸준한 운동습관으로 전문적인 마라톤 선수도 이뤄내기 힘든 280회의 완주 경력을 가진 그는 스스로를 돌아봐도 대견하고 뿌듯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 없어 그의 일터인 인쇄소에는 그가 이루어낸 승리의 전리품들이 빼곡하게 벽을 장식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지역봉사자에 수여하는 2017년 마포 구민상패에 이어 헌혈 14회 증서, 사후 시신기증서까지 한눈에도 그의 남다른 삶의 자세를 엿볼 수가 있다. 이 모든 게 그가 생활화 하고 있는 마라톤과 관련 있다고 한다.  

 “마라톤은 처음 시작해서 약 3~40km 달리는 동안이 가장 고통스럽다. 흔히 그것을 마의 고비라고 하는데 그 고비를 넘기면 숨통이 터지면서 한결 고통이 덜하다. 그러다 보면 달리는 동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현실에 당면한 크고 작은 집안 문제부터 이웃, 사회까지 .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사회에 아무것도 봉사한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뭔가 사회에 보람된 일을 찾던 중 사후에 내 육신을 의과대 연구용으로 기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내도 흔쾌히 내 의견에 동참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펄쩍 뛰며 반대했는데 워낙 우리 부부의 뜻이 완강하니 아이들도 결국엔 우리의 뜻에 따라와 주었다.”

자수성가로 사는 것에 급급했던 그가 마라톤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그는 마라톤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완주했을 때 주어지는 성취감만큼이나 뛰면서 나를 돌아보는 그 기회가 내 생활에 활력을 준다. 뛰다 보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고 해도 답이 나오고 용기가 생기고. 그러니 마라톤은 건강만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개화시키는 데도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마라톤 하는 사람 중엔 나쁜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자기 관리도 철저해서 담배 피우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나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마라톤을 적극 권유하게 된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제주도 해안가를 뛰는 태풍 속의 마라톤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

280회의 마라톤을 하는 동안 그는 삶의 지혜까지도 배우게 되었단다. “제주도의 100km 해안가를 달리는 경기였다. 태풍에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날씨였는데 난 그 바람에 맞서 달리려니 뒤로 밀려날 뿐 속력을 낼 수 없었다. 그때 참가자 중 일본 여자가 바람에 몸을 맡겨 무릎으로 기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아차, 나도 그 여자처럼 바람의 방향에 맡겨 몸을 움직였더니 한결 수월해져 결국은 완주를 할 수 있었다. 그날 난 마라톤을 통해 그렇게 삶의 지혜를 배웠고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마라톤이 되었다.”  

하지만 그도 65세라는 나이가 가끔은 마라톤이 버거울 때가 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마라톤을 그만둘 생각은 없단다. 70이 넘든 80이 되든 체력이 다할 때까지 뛸 생각이란다. 

 “예전보다 호흡이 차고 완주 시간이 점차 늦어지는 것이 조금 안타깝지만 완주가 늦어지면 어떤가. 앞으로도 체력에 맞춰 계속해서 뛸 생각이다. 나는 늙어도 경로당에 갈 생각은 없다. 내 건강은 내 스스로 지켜 즐겁게 살자는 것이 평소 가진 내 신조다.” 

인생 어려움? 마라톤으로 인내와 자신감을 길러 도전하라!

모든 운동이 힘들고 어려움이 따르지만 특히  마라톤은 인간 한계를 뛰어 넘는 도전이라고 한다. 280회의 인간 한계의 도전을 거듭해 온 그에게 요즘 취업난을 겪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하자 역시 마라톤마니아답게 그에 합당한 답을 내놓는다.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자기를 이기면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즉, 마라톤으로 자신감을 키워보라는 얘기이다. 특히 마라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고통, 우울감을  날려버리기 때문에 현재 어렵고 고통스런 일이 있는 사람이면 꼭 마라톤을 뛰어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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