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세상살이 매사가 나날이 치열하게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모두가 경주이고 경쟁이다. 싸움터다.

밀고 밀리고 앞서고 뒤처지고 엎으러 지고 쓸어 지고 일어서고 치고 박고 머리를 쓰며 지혜와 지략을 짜내고 계산해가면서 상호간에 똑 같이 이해득실을 따진다. 그게 당연한 인생살이이리라. 사람의 마음 속내면 깊숙이 이기심이 자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기심은 자기를 지켜내는 힘일 수도 있다. 반면 이타심도 힘을 받을 수는 있으나 이기심에 밀린다. 사람들은 대략 두부류이다. 하나는 이기심을 가진 쪽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타심을 가진 쪽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기심 쪽에 기울어 있다. 자기의 이익이 우선이니 그럴 수밖엔 없으리란 생각도 든다. 갈수록 사회가 자꾸만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면서 자기이익만을 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기심과 이타심으로 나뉘는 이해득실관계 속의 바람직한 인간상은 뭐라 할까? 정도(正度)와 중도(中途)이다. 정도와 중도로 가되 정직하고 정당한 정의로운 인품과 인성을 가진 화통한 인간상이 진정한 참인간상이다. 

  내겐 이익이 돼야하고 남에겐 손실이 되던 이익이 되던 크게 과여 할 바 없는 사람, 자기위주의 처신과 대인관계를 행사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이기주의자, 에고이스트라 하겠고 그 반대라면 이타심을 가진, 흔히 쓰는 말로 휴머니스트라 하겠다.

에고이스트와 휴머니스트, 사람들은 과연 어느 쪽에 우선할까? 교우 또는 교류관계에 있어서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대하기 좀 불편하고 어렵다. 누구든 마땅히 교우교분관계를 꺼리며 기피하게 될 것이리라.

내 몫은 커야하고 나의 이익은 많아야 하고 내가 아닌 다른 남들은 나보다는 이익이 적어야 되고 손해가 가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인 인간의 심사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무대이며 마당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공존해야 한다. 공존하는 삶속에서 내 떡은 커야만 되고 네 떡은 작아도 된다는 생각과 심사는 공유(共有)공생(共生)하는 마당의 인간상으론 부적절한 것이다. 지나친 이기심은 치졸하다. 다툼의 여지가 생기고 불편함을 야기(惹起)시키는 것이다. 

   제아무리 경쟁 속 사회라고는 하지만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려드는 욕심에도 한계치가 있는 것이다. 적절하고 적당하다면 보편적이며 발전적일 수가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과급불유(過給不有)가 바로 정답이다.

마음속에서 허욕 과욕 욕망 욕정이 치솟아 올라도 심연을 다스려야 한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버리고 빠져버리고 치우치지 않도록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아울러야한다. 즉, 처신과 처세에 정도와 중도를 표방함이다.

과도한 욕심은 금물(禁物)이 돼야하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손가락질을 받는 비인도적 비인간적인 행동행위는 금기(禁忌)사항이 되어야한다. 속담에 ‘족제비가 밥 탐하다 죽는다.’고 이렀다. 모든 게 지나치면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했다.

또한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면 가지지 아니한 것만도 못하다는 얘기와 맥이 상통한다. 아흔아홉 개 가진 자가 일백 개를 채우려는 허욕으로 한 개 가진 자를 탐하게 되면 치욕을 만나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이며 진리이다.

넘겨주고 돌려주고 밀어주고 끌어도 주며 챙겨주고 배려해 줄 수 있는 정도(正度)와 중도(中度)의, 그러나 정정당당한 정겹고 의로운 휴머니즘의 인간상이 참인간상인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