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어떤 입술』 출간한 라윤영 시인
개미가 개미에게
라윤영
톱날에 베인 나무처럼 공장에서 해고당했다
호주머니에 남은 천 원짜리 지폐와 동전 몇 개
공원 빈 의자에서 깡소주를 들이켠다
이유 묻지 않는 낡은 의자가 자리를 내주었다
땅바닥에 개미가 지나간다
나도 가난한 일개미였다
앞만 보고 가는 개미 앞을 딱 막아섰다
멈칫 올려다 본 개미와 눈 마주친다
개미를 보는 개미는 안다
검은 몸뚱이 험한 세상 앞만 바라본 행로를
밟혀도 죽고 강물을 만나 돌아가기도 하고
때로 향기 좋은 꽃밭을 지나기도 했다
푸른 이파리는 허공의 좋은 침대다
나무에 올라가 운수 좋은 날
하늘광장의 흰 구름 휘휘 저어 구름지도를 새겼다
골목길 따라 발자국 도장을 찍고
개미가 개미에게 가고 있다
ㅡ 라윤영 시집 『어떤 입술』 (2018. 도서출판 애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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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지는 시다. 더구나 경제정책 문제로 말 많고 탈 많은 요즘 시기라서인지 씁쓸하고 짠한 여운이 더욱 오래 남는 시다.
졸지에 밥줄을 놓친 가장의 절망과 상실감 그 슬픔은 당해보지 않은 자로서 감히 말하기가 송구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색채인지는 우리는 안다.
줄을 지어 먹이를 지어 나르는 개미들의 행렬은 누구나 한 두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늘 날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이나 버스의 풍경이며 땀 전 서로의 등짝의 땀 내음을 호흡하며 살아야하는 서민들의 발걸음이 아닐까? 어느 날 해고당한 화자가 공원에 앉아 그런 개미들을 보며 망연자실했던 축축한 기억이 시가 되었다. 위무의 시, 동병상련의 시, 눈물을 찍어내며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기도 하는... 개미가 개미에게 가는 시 한 수에 잠시 더위를 달래본다. 나 역시 이 땅의 한 마리 일개미로서 개미가 개미에게 주는 위안에 잠겨보았다.
얼마 전 시집『어떤 입술』을 출간한 시인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가 향하는 길이 더 나은 길이길 바라며 잔잔히 지켜보련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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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윤영 시인 /
경기도 파주 출생
2014년 〈시선〉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집 『어떤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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