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출범 30주년 기념식, 주권재민의 원칙과 헌재의 역할, 데이터 경제 활용, 참여연대와 정의당의 비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8월의 마지막날 문재인 대통령은 두 개의 일정을 소화했다. 오전에는 헌법재판소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고 오후에는 경기도 성남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젊은 창업가들을 만났다.

1988년 9월1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출범했다. 1960년 헌법에 헌재 구성의 근거가 명시됐었지만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사독재 정권이 이어졌기 때문에 28년이나 미뤄졌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가장 왼쪽)과 문재인 대통령 등 귀빈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 헌재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해 “헌재를 태동시킨 힘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다. 국민들은 한 마음으로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국민 스스로 1948년 제헌헌법 이후 40년 동안 법전 속에 잠들어 있던 헌법의 이념과 정신을 삶 속으로 불러냈다. 6월 민주항쟁의 승리는 지금의 헌법을 만들어냈다. 헌재는 87년 민주헌법의 산물”이라며 헌재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간명하게 “민주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국민이 만들어낸 헌법적 장치”라는 설명이다. 문 대통령이 보는 헌재의 30년 역사는 △헌법 해석의 권한으로 국민의 권리 수호 △기본권과 민주주의 성장의 초석 △치열한 토론과 과감한 결정으로 오랜 인습과 폐단 제거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인 여러 악법에 위헌 결정 등 그야말로 민주주의적 가치 신장 그 자체였다.

국가 운영원리를 담고 있는 최고법 헌법 역시 결국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민 주권의 흐름 속에 헌법적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 주권자인 국민이 대리인에게 권한을 위임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본 상식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헌법은 힘이 세다. 국민의 뜻과 의지, 지향하는 가치가 담겼기 때문이다. 국민이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촛불혁명을 통해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삶의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은 국민이다. 국민의 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국민과 헌재가 동행할 때 헌법의 힘이 발휘된다. 기본권과 국민 주권의 강화는 국민이 정부와 헌법기관에 부여한 시대적 사명이다. 헌법에는 권력이란 단어가 딱 한 번 나온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헌법 조항이다. 나를 비롯해 공직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은 모두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선 헌재소장은 기념사를 통해 “헌재는 민주화운동의 결실인 1987년 헌법 체제의 옥동자로 탄생했다. 바로 그 헌법에 적힌 국민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법치주의 원리를 살아서 움직이는 현실로 만들었다”며 화답했다. 

당장 헌재는 새로운 재판관 구성을 앞두고 있다. 유남석 차기 헌재소장과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들은 아직 내정자 신분이고 국회의 인사 청문회와 의결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이 동작 인식 서비스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날 오후 경기도 성남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세 번째 규제혁신 투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오늘은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혁신이다. 데이터를 활용한 사례들을 듣고 데이터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데이터를 활용한 모범적 사례로 제시한 것은 △우버(Uber) △에어비앤비(Air bnb) △심야에 운행되는 서울시의 ‘올빼미 버스’ △독일의 지멘스 △EU의 데이터 경제 육성전략 △2016년 미국의 빅데이터 연구개발 전략 발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고속망 정보 고속도로 정책을 통한 외환 위기 극복 등이 있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이 발표한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우리의 빅데이터 활용능력은 63개국 중 56위다. 신기술에 대한 규제는 44위로 평가했다. 데이터의 적극적인 개방과 공유로 새로운 산업을 도약시켜야 한다. 데이터의 개방과 공유를 확대해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라며 관련 규제혁신의 당위를 설파했다.

물론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세계적인 IT 기업도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등 제대로 관리하지 못 해 커다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원칙을 분명하게 지키고 안전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보화 시대에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보호와 활용의 조화를 위해 개인정보의 개념을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를 크게 개인정보·가명정보·익명정보 3가지로 구분해서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호하고 가명정보는 개인정보화 될 수 없도록 확실한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활용할 수 있도록 해서 익명정보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라며 데이터 관련 규제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특히 “부처별로 이뤄지는 개인정보 관리를 정부가 통합해 강화해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있다. 독립적인 관리감독기관에 대한 논의를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에게는 데이터를 활용한 매출 증대와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기회가 될 것이고, 중소기업에게는 시장개척의 기회가 될 것이고, 개개인의 수요와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도 대폭 늘어날 것”이라며 데이터 경제의 장밋빛 미래를 상정한 뒤 “산업화 시대의 경부 고속도로처럼 데이터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 클라우드는 데이터 고속도로의 기반이다. 공공부문이 민간 클라우드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공공 데이터를 민간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결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핵심 기술 개발 지원, 전문인력 5만명, 데이터 강소기업 100개 육성 등 2019년 데이터 산업에 총 1조원을 투자하겠다”며 마스터 플랜을 공개했다.

(사진=청와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데이터를 활용한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한편, 정의당을 비롯 진보적 시민사회에서는 문 대통령이 연일 신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강조하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이날 논평을 내고 “정보화 시대에 정보 주체의 자기결정권은 국민들의 기본권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국민들은 무분별한 개인정보 규제완화로 자신의 정보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절대 동의한 바 없다”고 비판했고 참여연대도 “데이터 경제 활성화는 전국민의 정보주체로서의 권리를 빼앗아 그 통제권을 데이터 자본에 넘겨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개인정보를 활용하는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개인정보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활용 여부에 대한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은 이상 그것을 안전하게 활용하든 위험하게 활용하든 기본권은 이미 침해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이유로 기업들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축적하고 결합해 유통시킨다면 국민의 정보 기본권은 매우 심각하게 침해될 뿐 아니라 회복불가능하다. 대통령의 발표 이면에는 개인정보 활용을 통해 불로소득을 얻으려는 데이터 자본과 그 자본에 부역하는 관료들이 있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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