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정책 방향 제시, 예산 편성에 대한 설명, 야당과 협치 강조, 야당의 공격적인 평가, 하태경은 칭찬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포용적 성장시대’를 열겠다면서 5가지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한 야당과의 협치도 강조했다.

이 대표는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한 동안 견뎌내야 할 고통스러운 전환기를 지나야 한다”며 미국의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를 인용해 ‘전환의 계곡(valley of transition)’을 언급했다. 촛불혁명 이후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진통이 불가피하고 여기서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이해찬 대표는 변화를 위한 고통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사진=이해찬 의원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악화 현황에 대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야당의 양해를 구하고 협치를 부탁하는 차원이다.

이 대표는 도약을 위한 5가지 과제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①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 
②소상공인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사회 통합
③적폐청산과 불공정한 사회 질서 바로 잡기
④국토의 균형발전과 자치분권
⑤한반도 분단시대 마감과 평화경제시대 열기

2017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9745달러다. 

이 대표는 “일본은 1992년에 세계에서 네 번째로 3만달러를 돌파했고 이탈리아는 2004년, 스페인은 2007년에 3만달러를 돌파했지만 더 이상의 성장을 해내지 못 하고 정체돼 있다”며 “3만 달러 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이 쉽지 않다. 자칫 불평등이 심화되고 혁신 역량이 부족해지면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진다”고 일종의 선진국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우리 현실에 맞는 독창적인 복지노동 모델과 혁신성장 모델을 함께 창출해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3대 경제 전략을 통해 “포용적 성장 모델을 이루고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특히 그동안 큰 논란을 불러왔던 소득주도성장 외에 포용적 성장의 큰 축인 혁신성장과 관련 이 대표는 2019년부터 ‘인프라 구축’에 착수해야 한다며 △R&D(연구개발) 투자 확대 △초연결 지능화와 스마트시티 등 8대 핵심 선도 분야 집중 투자 △창업화 지원과 모태펀드 확대 등 창업 금융 활성화 △혁신 인재양성 지원 등을 강조했다.

이 대표의 연설에 대한 야당의 반응은 매우 비판적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의 연설에 대한 야당의 반응은 매우 비판적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는 경기 불황의 고통 속 개혁을 위해 “해결 방법은 사회적 대화 뿐”이라며 공약으로 밀었던 ‘민생경제연석회의’의 내용을 설명했다.  

연석회의는 기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경험을 이어받아 민생부문 대표(노동자단체)·당내 인사·전문가 등이 참석해서 개혁의제를 합의하고 이걸 당론화해서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다. 이 대표는 연석회의와 관련 △하위 소상공인 특별위원회 설치 △전국 권역별 연석회의 개최를 통해 지역 특성에 맞는 해결책 모색을 약속했다.

노사를 비롯 사회 모든 주체의 양보와 타협이 중요한데 이 대표는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에서 노동계의 결단 사례로 언급하며 한국의 노사정위원회가 곧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진화해 출범한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여기에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한상공회의소와 경영자총협회 등 기존 노사 단체 뿐만 아니라 청년·여성·비정규직·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이 추가로 결합된다. 

경제사회노동위를 두고 이 대표는 모두가 참여하는 “완전체”로서 기대감을 드러내며 △건물주와 상인의 대립 ‘환산보증금제도’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대표되는 ‘부양가족의무제도’ △고용보험에 한해서만 지급됐던 ‘일자리 안정자금’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긴 연설문을 읽어내려 가느라 목이 탈 수밖에 없어 물을 마시고 있는 이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긴 연설문을 읽어내려 가느라 목이 탈 수밖에 없어 물을 마시고 있는 이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는 기존 문재인 정부가 1년 간 집중한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정당성을 재확인했다. 

이 대표는 “경제를 위해 적폐청산을 적당히 하자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반칙과 특권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왜곡하고 국민들의 의지를 훼손시켜 경제성장과 나라발전을 가로 막는다”며 기무사 계엄령 문건,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등을 거론했다.

더불어 향후 해결해야 할 적폐청산과 개혁 작업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국민권익위원회의 반부패 청렴 업무 강화 △채용비리 근절 △건설사 입찰 비리 근절 △방산비리 근절 △갑질 문화 개선 △민관 유착형 건설적폐 청산 등을 제시했다.

이 대표의 연설을 듣는 국무위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의 연설을 듣는 국무위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균형발전과 자치분권 관련 이 대표는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7대 3으로 개선하고 중장기적으로 6대 4까지 나아가도록 해 지방정부의 역량을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구체적으로 △지방이양일괄법을 제정해 중앙 사무를 지방으로 이양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위해 지방 자치권 확대 △혁신도시 건설과 클러스터 조성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122개를 당정 협의에 따라 지방 이전 △기업과 지방정부의 협력을 통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성공시켜 전국에 확대 △지방자치연구소 등 특별 기구 설치 △지명직 최고위원 1명은 지방자치 전문가 선임 △국회 세종의사당을 세종시에 설치 △실질적인 행정수도 건설 등이 제시됐다.

연설을 마치고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는 이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연설을 마치고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는 이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반도 평화경제와 관련해서 이 대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이를 입증하는 실천 조치가 모든 논의의 성패를 가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남북 경제협력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남북미 협상 국면을 중재하기 위해 ‘동북아평화위원회’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판문점 선언과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에 발표)에서 이미 구체적인 남북 경협의 내용이 제시됐다며 한반도 평화경제모델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성공단 정상화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에 앞장서겠다고 공언했다.

정부가 편성한 2019년도 국가 예산안 총액은 470조5000억원으로 이후 국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서 조정될 예정이다. (자료=기획재정부) 

이 대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관련 야당의 세금 퍼주기라는 비판에 대해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재정을 소극적으로 운용하라는 것은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고 반론했고 재정상황이 나쁘지 않아 확장 정책을 쓰는데 무리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2018년 중앙정부 총 지출이 GDP(국내총생산) 대비 23.5% 수준인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40.6%에 비해 낮다는 점, 2017년 기준 정부 부채가 GDP 대비 43.7% 수준으로 OECD 평균 113.3%에 비해 낮다는 점을 들었다.

무엇보다 “내년에는 정부재정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고 특히 “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 여력이 떨어진 지금 공공부문이 앞장서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국가가 선 투자를 해야 민간과 기업이 안심하고 따라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모든 과업을 이루기 위한 야당의 협치를 강조했지만 야당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는 모든 과업을 이루기 위한 야당의 협치를 강조했지만 야당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대표의 빅 픽쳐는 충분히 설명됐는데 결국 이를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협치와 관련 이 대표는 “5당 대표 회동을 제안했다. 그동안 국회는 당대표 간 협치가 실종된 상태였다. 앞으로 5당 대표 회동이 정례화 되도록 하겠다. 11월에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문 대통령과 5당 원내대표의 합의사항)가 가동된다”고 밝혔다.

다만 협치의 두 가지 축으로 ‘원칙’과 ‘유연함’을 강조했다.

전자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문제는 원칙을 갖겠다. 민생은 동서좌우도 있어선 안 된다. 그 자리에는 오직 국민만 있어야 한다. 여야의 협치도 결국 국민을 위해서”라며 야당의 요구사항을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향후 정기국회 내내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즉 대의명분을 놓고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전망된다.
 
후자에서는 “유연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겠다. 어떤 형식과 주제에도 성실하게 나서겠다.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학자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며 협치의 문을 열어놨다. 

이 대표가 야당의 협조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가 야당의 협조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이 대표의 연설을 두고 야당의 반응은 냉랭하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교섭단체 대표로서의 연설이 아니라 국정연설에 가까워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포용적 성장 모델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는 국정의 장밋빛 청사진을 내밀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비전이다. 국민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거리를 헤매고 중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영업이 안 돼서 문을 닫고 있는 현실이다. GDP 4만 달러는 허무맹랑한 희망고문일 뿐”이라며 “일방적 소통이지 성찰이 없다. 민주당의 집권 이후 계속 문제가 되었던 점은 싫으면 말고 식의 일방적 통보였다. 입만 뻥긋하는 협치”라고 맹비판했다.

신보라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민생과 동떨어지고 희망이 부재한 그저 청와대와 민주당의 국정과제 밀어붙이기 일색”이라며 “곳곳에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이 나타나 민생경제가 파탄 나고 있음에도 현실과 동떨어진 소득주도성장을 역설하고 있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문재인 정부 15개월 동안 모든 문제의 탓을 과거 정부로 돌리는 남탓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현재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노력이 없고 북핵 문제가 답보 상태임에도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언급하는 것은 결코 안 될 일”이라고 이 대표의 연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신 대변인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규제프리존 및 지역특구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상가임대차보호법, 은산분리 완화을 위한 인터넷 은행법 등 민생과 규제혁신 법안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다른 관점에서 “이 대표의 적폐청산과 남북평화 그리고 양극화 해소 정책에 적극 동의하나 선거제도 개혁과 지역격차해소와 관련한 인식에 대해서는 큰 우려를 표한다”며 “이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연설 마지막 선거법을 포함한 정치개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지극히 소극적인 발언을 했을 뿐이다. 심히 유감스럽고 실망스럽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잘 나가는 지역에 유리한 국고보조사업을 줄이고 지방교부세를 인상하고 지방교부세 배분 기준에 지역 격차를 더욱 반영해야 한다. 국세를 줄이고 지방세를 늘리는 것은 서울시 강남구의 독립 주장과 같은 맥락으로 지역 불균형을 고착화시키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기존의 노사정위원회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출범은 긍정적이지만 사회적 대타협에 다수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이 전제조건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함께 여당 대표가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힌 것 또한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상위 집중이 가속화되는 소득 분배구조를 개선할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의당은 이미 최저임금 인상, 임금공시제, 노동이사제, 최고임금제(살찐 고양이법), 이자소득과 배당소득 등에 대한 금융과세, 보유세 등을 제안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여당 대표를 칭찬한 하태경 최고위원. (캡처사진=tbs)

한편,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4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 대표의 행보에 대해 “큰 정치인이고 차기 대권 대열에 충분히 합류할 수 있는 분이다. 정책에 있어서 수요 억제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공급 확대로 확 바꿨다. 굵직한 정치를 한다”며 이례적으로 우호적인 평가를 했다.

이 대표는 교육부장관, 국무총리, 7선 국회의원의 경력으로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에서 힘있는 실세 여당 대표의 위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 위원은 이와 관련 “이 대표가 (뭔가) 하면 그게 바뀐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바뀐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제부터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가면 다 이 대표 덕이다. 이 대표가 상당히 안정감 있고 굵직한 정치를 해서 새로운 민주당 쪽 희망으로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른미래당 입장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며 극찬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