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최한나

 

그리고 가을입니다

안영희

 

 

신호대기에서

문득 올려다본 하늘색

아아 파아랗습니다

 

오이지 짓눌렀던 그 오래인 맷돌짝

무릎 아래

저리 순하게 흩어놓다니요

 

흔들어, 흐은들어 머리 얼마나 헹구었었는지

잔잔히 추억 쪽으로 흘러가네요

하이얀 새털구름 떼

 

웬일인지 나 목이 메여옵니다

 

-안영희 시집 『어쩌자고 제비꽃』(2017.천년의시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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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끝에서 제법 가을 내음이 맡아지는 오늘이다. 모처럼 맘 편히 읽어본 짧지만 긴 가을의 축사 같은 시다. 고생 많았다며 포근히 안아주는 시의 여운에 잠시 눈 감아보았다.

  폭염의 극치를 맛보게 한 지난여름, 청정수 한 모금, 바람 한 줄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계절이었다. 화자에게도 그런 여름날이었을까 맷돌짝에 눌린 듯 숨 막히던 마음을 순하게 흩어놓는 파란 하늘을 화자의 눈을 통하여 바라본다. 잔잔한 추억 쪽을 응시하는 시인의 심상이 돋보인다. 푸르게 높아진 하늘에서 가을이 내려와 폭염에 찌든 땀을 헹구어주니 새털구름 떼 따라 흘러가는 마음은 파란 하늘빛에 물들 것 같다. 해가 갈수록 오존층이 얇아지고 빙하가 녹아내려 지구의 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여름은 턱턱 숨 막히는 계절로 변해간다. 하지만 계절은 가고 또 오는 것, 어느덧 9월을 건너가고 있다. 피부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가을의 숨결을 느낀다. 푸르게 키가 커진 하늘을 올려다보니 덩달아 목이 메여온다. 저만치 뒷모습 보이는 여름은 이제 한 장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기며... 그리고 가을이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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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州 출생

1990년 시집 등단

시집 / 『내 마음의 습지』 『가끔은 문 밖에서 바라볼 일이다』 『물빛 창』

『그늘을 사는 법』 『멀어지는 것은 아름답다』 『어쩌자고 제비꽃』

2005년 경인미술관에서 도예개인전 / <흙과 불로 빚은 시>

현재 계간 <문예바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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