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가 부산직할시다. 16개시도 가운데 부산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크다. 과거에는 경상남도에 속해 있었지만 이제는 직할시로 독립되어 모도(母道)였던 경남을 누르고 인구 400만의 대도시로 발돋움했다.
 
부산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첫 번째 상륙지였으며 동래성의 싸움은 치열을 극한 바 있다. 이처럼 역사적 진실을 간직하고 있는 부산은 6.25민족상잔 시에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
 
피난지에 임시수도를 설치한 이승만정부는 부산에서 밀리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처지였다. 수많은 피난민으로 넘쳐났던 부산은 치열한 삶과 눈물의 전쟁터였다. 국민의 가슴을 쥐어짜는 온갖 구슬픈 노래들이 슬픈 멜로디를 내쏟을 때다.
 
부산 서구 부민동은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가 있던 곳이다. 지금으로 친다면 부산 청와대다. 여기서 이승만은 전쟁을 지휘하는 최고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유엔군을 관할하는 맥아더와 더불어 사실상 군과 행정을 통할하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한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데도 거칠 것이 없는 대통령의 특권이었다.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비판과 견제에 여념이 없는 야당을 탄압하는데 온갖 야료를 다 부린다. 비상계엄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헌병과 경찰을 모두 동원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정치파동’을 일으켜 야당의원들을 헌병들로 하여금 집단 연행하는 만행도 저지른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처지였지만 국민들은 이승만의 독재적 권력 강화에 눈살을 찌푸렸다. 동아일보나 경향신문은 철저하게 자유당정권을 비판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장준하는 리어커에 원고를 싣고 다니며 이 다방 저 다방을 전전하면서 ‘사상계’를 창간한다.

함석헌 같은 사상철학가를 발굴하여 부드러우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논문으로 국민을 열광시켰던 곳도 부산이다. 대학생들의 비판 안목을 엄청나게 업그레이드 시킨 언론은 사상계가 최고였다. 이러한 역사적 상징성을 가진 부산에서 시장으로 당선된 허남식은 6월1일 “대한민국 근 현대 도시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부산의 상징성을 부각시키고 새로운 지역 브랜드를 창출하는 차원에서 건국대통령인 이승만대통령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위상과 좌표를 부랜드화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허남식이 부산시장으로서 과연 역사적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니까 부산에서 시장까지 당선했겠지만 이승만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사람이 어째서 이승만의 동상은 사전에 만들어 세웠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산시에서는 임시수도기념관을 확충하여 이승만 박물관을 조성한다면서 도둑이 밤사이에 몰래 들어오듯이 이승만 동상을 미리 세워 놨다. 동상이라는 것이 어디 하루아침에 세울 수 있는가.

동상을 건립하려면 사전에 재정이 확립되어야 하며 우수한 조각가를 선정하여 상당한 기간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번에 부산 부민동에 건립된 이승만 동상은 ‘임시수도기념관’을 만든다고 하면서 시민들의 여론은 아예 물어보지도 않고 부산시장 등 관계자 몇 사람만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4.19민주혁명회부산지부장 김용성은 이 기념관의 자문위원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승만 기념관으로 탈바꿈되어 있고 덧붙여 동상까지 세워져 있었다고 분노를 터뜨린다.
 
그는 이승만의 동상 생김새를 가리켜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으며 따른 손은 하늘을 향하여 뻗대어 있다고 설명하면서 “책을 들고 있는 것은 4.19 때 책을 들고 있는 학생들에게 총질을 했던 장본인으로서 오히려 학생을 조롱하는 느낌이며, 하늘로 손을 뻗친 것은 하이 히틀러를 외치는 독재의 상징처럼 보였다”라고 힐난한다.
 
이에 대하여 4.19혁명 3개 단체는 대표자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이승만 동상의 철거와 이승만 박물관의 재고를 강력히 요구했다. 4.19회원들은 시장실을 방문하여 이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6월3일 부산시장은 4.19회원들의 강력한 요구에 굴복하여 “10일 이내에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만 역시 부산시장 다운 지각 있는 행동이다. 역사인식이 잘못되었을 때 즉각 이를 광정할 수 있는 용기도 남들이 쉽게 흉내 내기 어렵다.
 
허남식은 비록 이승만의 공적과 부산과의 연관성만 따지다가 자칫 큰 실수를 할 뻔 했으나 독재와 부정에 저항했던 4.19인들의 항의를 즉각 수용한 것은 대단히 잘한 일이다. 그의 행정적 결단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다만 부산시가 계획하고 있었던 ‘임시수도기념관’은 이 사태와 관계없이 착실히 진행되기를 바란다.
 
거기에 이승만의 공과를 가릴 수 있는 온갖 자료를 전시하면 된다. 부산에서의 온갖 정치적 문제점 등을 상세하게 적시한다면 시민들도 어째서 4.19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참고로 말한다면 부산지역은 4.19당시 서울 다음으로 많은 희생자를 냈던 민주화의 성지라는 점이다. 이승만의 성지(聖地)는 결코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부마사태를 이겨낸 부산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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