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인격과 식견을 갖춘 사람들이 지도적 역할을 한다. 많은 지식을 가졌거나 풍부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어도 그들의 인격과 식견은 다르다. 인격이란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예절과 도덕심을 의미한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가릴 필요 없이 공경해 주는 마음가짐은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가 된다. 더 잘났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대우할 필요도 없고,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얕보지 않는 평상심이 인격이다.

말로는 쉬운 일이로되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 실행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이 곧 인격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점잖고 겸손한 사람은 상당한 인격을 갖췄다고 봐도 틀림없다. 말을 함부로 하거나 남을 무시하기를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인격적으로 존경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하고도 자기의 행동에 대한 반성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만인 앞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정치인이 몸을 함부로 굴리거나 말을 마구잡이로 내뱉는다고 하면 어느 누가 그를 지도자로 받들겠는가.

말은 곧 행동을 수반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인격적으로 존경받지 못할뿐더러 표리부동(表裏不同)의 대명사가 된다. 김대중은 생전에 공식석상에서 “나는 평생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약속을 어겼을 뿐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로 인하여 그는 거짓말과 약속 어기는 것이 뭐가 다른 것이냐 하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말과 위약(違約)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구실을 줬다. 상습적으로 약속을 어기는 것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한 것보다 더 나쁘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처럼 정치인의 처신은 어느 나라에서나 신중하고 의젓해야만 한다. 이것은 개인 간의 문제에서도 당연히 지켜야 할 규범이지만 나라끼리는 더욱 중대하다. 국가와 국가는 외교라는 채널을 통해서 쉴 새 없이 교류한다. 협약과 조약을 맺기도 하고, 문서교환만으로도 중요한 약속은 그대로 여행(勵行)된다. 때로는 공개적인 협상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비밀리에 협약을 맺는 수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벗도 없다”는 것이 국가 간의 우정이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처럼 지내든 국가들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친선이 강화되는 수도 없지 않다. 과거를 따지고 보면 프랑스와 독일은 이런 사례의 대표적 국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치열하게 다퉜던 독일 일본 이태리 등 추축국과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연합국은 대전 종료와 함께 이제는 가장 가까운 나라로 변모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도 협상과 전쟁을 거듭하면서 아직도 으르렁거린다. 주위에 있는 관계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중동 제국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드리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경주한다.

김정일이 지배하고 있는 북한도 온갖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며 일변 안보위협, 일변 식량구걸을 번갈아가며 장난을 친다. 북경에서 열리는 이른바 6자회담은 열렸다, 닫혔다를 거듭하며 몇 년을 끌어도 끝날 날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의장국으로서 미국과 일본 러시아를 가지고 논다. 북한을 두둔하면서 그들의 핵 보유를 지탄하는 척 할 뿐이다. 중국의 자세 변화가 없는 한 6자회담은 10년이 가더라도 성공할 방도가 안 생긴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폭격했다.

천안함은 아예 발뺌을 하지만 연평도는 자기들의 안보를 위한 자위수단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즉각적인 보복공격을 하지 못한 것이 결국 그들의 간을 키웠다. 이후 우리 정부는 줄곧 북한의 사과요구를 끊임없이 되풀이 해왔다. 사과 없이는 어떠한 원조도 없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내면으로는 북경에서 비밀협상을 해온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행위다. 한 편으로는 주먹을 휘두르는 척 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안아주는 제스처를 쓰는 것이 국가 간의 순기능이다.

이명박정부가 청와대 비서관, 통일부 간부, 국정원 국장급을 협상 팀으로 보낸 것은 너무나 옳은 행위를 한 것인데 북한 측이 이를 폭로하는 형식을 취하여 이명박정부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시도하는 것은 참으로 코웃음 감이다. 대체로 정부 간의 협상은 비밀을 최대우선으로 할 때가 많다. 더구나 한국과 북한은 같은 민족, 같은 국가가 갈라져나간 나라다. 민족상잔의 전쟁도 겪었다. 모든 원인 제공은 북한이 했다. 지금도 핵실험을 자행하여 나라를 거덜내개 할 위험분자다.

이들과 협상을 하면서 만천하에 공개하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개인의 인격처럼 국가의 국격(國格)에 속하는 문제다. 이를 뒷골목 깡패나 똘마니 모양으로 방송을 통하여 폭로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다. 그들이 노리는 점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한국의 저력은 그 정도에 놀아나지 않는다. 여야는 물론 모든 시민단체를 가릴 것 없이 북한의 망나니 정치행태를 강력히 규탄해야만 한다. 북한정치의 저열성은 이미 3대 세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당분간 그들과의 비밀협상은 유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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