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선언문에 담지 못 한 구두 합의 공개, 트럼프 대통령에 전달할 김 위원장의 비공개 카드, 탑다운 협상이 과거와 다른 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비행기를 타고 백두산에서 서울로 왔다. 

촘촘했던 2박3일의 평양 일정을 마친 문 대통령은 20일 저녁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보고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여러 차례 만나 긴 시간 많은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었던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밝혔다.

대국민 보고를 위해 메인프레스센터 기자들 앞에 선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이어 “남북관계를 크게 진전시키고 두 정상 간의 신뢰 구축에도 큰 도움이 된 방문”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중요한 비핵화 논의에 대해 “나는 김 위원장과 비핵화 및 북미 협상과 관련 많은 대화를 나눴다. 첫날 회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비핵화를 논의하는데 사용했다. 김 위원장은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약했다.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완전한 비핵화를 끝내고 경제발전에 집중하고 싶어했다”며 “김 위원장은 비핵화 과정의 빠른 진행을 위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리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평양 선언에서 사용한 참관이나 영구적 폐기라는 용어는 결국 검증가능한 불가역적 폐기(CVID 중 VID에는 해당)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지금까지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 외에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이고 우리와 논의하는 것을 거부해 왔지만 북미 대화가 순탄하지만은 않고 또 북미 대화의 진전이 남북관계 발전과 긴밀히 연계된다는 사실에 인식을 같이 하게 됐다. 북한도 우리에게 북미 대화의 중재를 요청하는 한편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을 제의했다”고 설명했다.

기능적으로 한국이 북미 협상의 교착 국면을 돌파한 것은 사실로 보이는데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럴 것”이라며 “북한과 한국에서 아주 좋은 소식이 있다. 그들(남북 정상)은 만났고 우리는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엄청난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며 평양 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나는 김 위원장에게 엄청난 서한을 받았다. 그것은 3일 전에 배달됐다”고 밝혔다.

대북 강경파인 펜스 부통령도 20일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에서 “미국은 핵무기 없는 한반도에 지속적인 평화를 조성하려는 목표를 향해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종 협상을 거쳐야겠지만 김 위원장이 최근 핵 사찰을 허용하고 국제사회의 참관 하에 미사일 실험장과 발사대를 영구히 해체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반응을 보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9일 성명을 발표해 “미국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관한 싱가폴 선언을 재확인한 것을 환영한다. 미북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협상에 즉시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다음주 유엔 총회가 열리는 뉴욕에서 만나자고 요청했다. 또한 북한 관리들에게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이 약속한 대로 2021년 1월(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까지 완료될 북한의 신속한 비핵화 절차를 통해 미북 관계를 변화시키는 한편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북한 양강도 삼지연 공항에서 전용기를 타고 바로 서울로 온 문 대통령 부부.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미국이 이와 같은 북한의 의지와 입장을 역지사지 해가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조기에 재개할 것을 희망한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간의 대화가 재개될 여건이 조성됐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평양 선언문에 담지 못 한 추가 구두합의가 있었다며 “국회회담을 가까운 시일 내에 개최하기로 했고, 지자체의 교류도 활성화하기로 했고,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의 전면 가동을 위해 북측의 몰수조치를 해체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김 위원장도 동의했다. 올해는 고려 건국 1100년이 되는 해인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12월에 개최되는 대고려전에 북측 문화재를 함께 전시할 것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은 협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천안함 사태 직후 한국 정부의 강경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2010년 4월23일 금강산 관광지구 내 부동산 몰수 및 동결 조치를 강행했다. 즉 이산가족면회소, 소방서, 문화회관, 온천장, 면세점 등 한국 정부가 소유한 금강산 부동산을 몰수하고 당시 현대아산의 소수 인원만 남기고 전원 철수를 명령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북한과의 모든 물적 교류와 지원을 금지하는 5.24 조치로 응수했다. 이런 현실을 다시 원상복구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또한 문 대통령은 “평양 선언을 빠르게 실행하기 위해 범정부적 추진체계를 마련할 것이고 남북 고위급회담을 가까운 시일 내에 개최하고 오늘의 성과가 국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문 대통령은 기자들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들은 앞으로 내가 방미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정상회담을 갖게 되면 그때 상세한 내용을 전해줄 그런 계획이다. 미국 측은 우리를 통해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하고 이에 대한 답을 듣기를 원한다. 북한 측도 우리를 통해 미국 측에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북미간 대화를 촉진시켜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평양 선언 5조에 미국의 조건부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가 명시됐는데 문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북한이 취해나가야 할 조치들의 단계적 순서와 미국이 취해야 할 상응 조치 이런 것들은 구체적으로 북미 간에 협의돼야 할 내용들이라 그 부분은 평양 선언에 담을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우리가 구두로 서로 간에 의견을 나눈 바는 있지만 여기서 공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의 상호 조치가 “균형있게 취해져야 한다. 미국은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새로운 북미관계를 만드는 조치를 취해준다면 북한도 더 빠르게 비핵화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청와대)
국내외 20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모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센터 내 메인프레스센터.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오는 25일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여기서 김 위원장의 비공개 카드를 제시하고 설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내용은 아마 핵물질·핵탄두·핵시설에 대한 리스트를 부분적으로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시간표가 마련됐다는 내용일 가능성이 있다. 1단계 차원의 핵 리스트가 제공되고 미국이 종전 선언에 합의하면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가 순차적으로 펼쳐질 로드맵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핵 리스트를 (평양 선언에) 제출하지 않아서 지금 이번 정상회담이 별로 의미없다고 (자유한국당이 주장하고) 그러는데 핵 리스트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한테 직접 제출해야 한다. 북미 정상에서 내놓을 카드다. 그걸 왜 북미 접촉도 지금 대화도 시작 안 됐는데 미리 평양에서 내놓겠는가. 문 대통령과 70분 동안 단독 대좌에서 아마 상당히 구체적인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내용이 국제전화로 일부 미국에 전달됐을 것이고 그걸 듣고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비핵화 관련해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김 위원장을 곧 만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관측했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개념을 혼동해서 전자를 해주면 유엔군 사령부와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 동맹이 약화되는 것이라고 일부 보수진영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문 대통령은 “종전 선언은 이제 전쟁을 끝내고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평화협정은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는 최종단계에서 논의된다. 그때가지 기존의 정전 체제는 유지되고 유엔군 사령부의 지위나 주한미군의 주둔 필요성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일축했다.

즉 1953년 7월27일 유엔·중국·북한이 정전협정을 맺었고 이에 따라 한반도 정전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정전 체제 하에서 유엔군 사령부와 주한미군이 한국에 있는 것인데 종전 선언은 이 체제를 끝내고 곧 평화협정을 맺자는 정치적 약속에 불과하고 평화협정이 최종 완료된 뒤 외국 주둔군 문제가 논의된다는 것이다.  

특히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에 의해서 주둔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과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한미 간의 결정에 달린 것이고 김 위원장도 동의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 “가급적 종전 선언은 조기에 이뤄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북한이 핵을 이미 완성한 뒤 미래에 핵을 더 안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우려하는데 ‘미래 핵 폐기’를 넘어 ‘현재 핵 폐기’를 어떻게 이뤄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을 영구히 폐기한다면 핵물질이나 핵무기의 생산을 비롯한 (현재) 핵 활동을 이제 중단하겠다는 뜻이 될 것 같다. 물론 더 나아가면 영변 외에 여타의 핵시설도 영구히 폐기돼야 하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핵무기나 장거리 미사일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폐기되는 수순으로 가야 완전한 핵폐기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고 이를 위해서는 “거기에 맞춰서 미국 측에서도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체제를 보장해주는 상응조치들이 단계적으로 취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대국민 보고를 마치고 기자들과 악수하는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대국민 보고를 마치고 기자들과 악수하는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2005년 6자 회담에서의 9.19 공동성명과 2018년 남북미 비핵화 협상의 차이점에 대해 문 대통령은 “과거 비핵화 합의는 실무적인 협상을 통한 그런 합의였다. 핵폐기의 매 단계마다 검증하고 다음 단계의 이행을 함께 논의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언제든지 검증이나 사찰 개념 차이로 삐끗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비핵화 합의는 사상 처음으로 남북미 정상 사이에 합의가 이뤄져서 이른바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북미 정상이 국제사회에 한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현되리라 믿는다. 물론 그것을 추진하기 위한 실무협상 단계에서 언제든지 교착·지연될 수 있다. 그렇기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필요하다. 여기서 교착 국면을 타개한다면 이번 비핵화 합의는 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덧붙이기를 “지난 싱가폴 선언에서 북미는 그야말로 원론적인 합의를 이뤘다. 비핵화로 가기 위한 프로세스에 대해서 세부적인 내용은 실무협상을 통해 해야겠지만 크게는 양 정상 간의 (추가적) 합의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고 그 합의에 맞춰 실무협상이 진행되도록 시한을 정한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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