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의 깊은 스킨십, 평양에서의 첫 정상회담, 노동당 본부청사 공개, 평양 시민에게 연설한 남한의 첫 대통령, 리설주 여사의 정상 외교, 200여명의 방북단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박3일 3차 평양 정상회담이 마무리됐다. 

뉴스가 뉴스를 덮을 만큼 사상 최초는 넘쳤는데. 몇 장면을 상기해볼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지난 4월27일 1차 정상회담에서 그 누구의 배석자도 없이 판문점 도보다리를 걷던 두 정상의 모습이 눈에 익는데 이번 3차 회담 일정은 두 정상의 잦은 소통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2018년 남북미 비핵화 협상은 탑다운 방식이기 때문에 정상 간의 신뢰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탄생한 싱가폴 선언을 보면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북미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북미 신뢰관계가 구축돼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인식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①평양에서의 첫 정상 외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18일 9시49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오는 문 대통령 부부를 기다리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는 반갑게 두 손을 맞잡고 포옹했다. 2000년과 2007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때는 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고 아들인 김 위원장은 처음으로 자국의 수도에서 타국 정상을 맞이한 것이다. 두 정상 부부는 북한 육해공 군대의 의장 사열대를 받았고 레드카펫을 행진하면서 평양 시민의 환호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평양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몇몇과는 직접 손을 맞잡았고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하기도 했다. 공항 환영행사를 마치고 분명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따로 차를 탔다. 하지만 점심 오찬을 위해 백화원까지 이동하는 중간에 두 정상은 같은 차를 타고 카퍼레이드 행진을 했다. 오픈카에 올라선 두 정상은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눈길을 끈 것은 북측의 호위총국 인사가 운전대를 잡고 주영훈 청와대 경호처장이 조수석에 탔다는 점이다. 두 정상의 사상 최초 카퍼레이드 이벤트를 위한 북측의 양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시 만난 두 정상 부부.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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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민들과 악수한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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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원으로 이동하기 전 카퍼레이드를 하는 두 정상. (사진=청와대)

②노동당 본부청사에서의 정상회담
선대 북한의 원수들은 노동당 청사를 철저히 베일에 가려놨다. 외국 외교관리가 방문하면 영빈관에서 회담을 했다. 청사에는 최고 지도자의 집무실과 노동당 핵심 인사들과 국사를 논의하는 회담장도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선대와 달리 청사를 과감하게 외교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김 위원장을 청사에서 만났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18일 15시45분 청사에서 첫 날 정상회담을 했고 이는 역시 사상 최초의 일이다. 북측의 배려로 남측 기자단도 회담장에 출입해 두 정상의 모두발언까지 취재할 수 있었다. 두 정상은 정 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배석하고 중대한 비핵화 중재안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했다. 

(사진=청와대)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최초로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사진=청와대)

③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한 대한민국 대통령
문 대통령은 19일 저녁 능라도 5.1 체육관에서 집단체조(Mass game)을 관람한 뒤 15만명의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했다. 분단 이래 최초의 일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전쟁의 상대국으로만 존재했었는데 평양 시민들은 문 대통령이 7분동안 연설하고 있을 때 12번의 박수를 보냈다. 김 위원장은 “오늘 이 순간 역시 역사는 훌륭한 화폭으로 길이 전할 것이다. 우리 모두 문재인 대통령에게 열광적인 박수와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자”고 소개했고 문 대통령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는 민감한 대목도 평양 시민 앞에서 공언했다. 분단 70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유일한 공감대로서 ‘같은 민족’도 강조됐다. 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은 우수하다. 우리 민족은 강인하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며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고 역설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20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 이상의 비핵화 메시지가 뭐가 더 있을 수 있느냐”라며 “김 위원장이 15만명의 북한 주민이 모인 자리에서 남쪽 대통령이 핵이 없는 한반도 비핵화 이야기를 직접 하도록 했다. 그런 연설을 하게 한 것 자체가 엄청난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진=청와대)
15만명의 평양 시민이 운집한 곳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연설하고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진=청와대)

④두 정상의 백두산 천지 체험기
19일 저녁 두 정상이 다음날 아침 백두산에 가게 됐다는 사실이 타전됐다. 실제 20일 아침 문 대통령 부부는 순안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백두산과 가까운 삼지연 공항에 다다랐고 미리 대기 중인 김 위원장 부부 그리고 북한 군악대와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환영식을 마친 뒤 두 정상 부부는 자동차와 케이블카를 타고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두 정상은 백두산 천지 앞에서 손을 맞잡았다. 날씨도 맑아 역사적 명장면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한창 백두산 붐이 있어서 우리 사람들이 중국 쪽으로 백두산을 많이 갔다. 그때 나는 중국으로 가지 않겠다. 반드시 우리 땅으로 백두산을 오르겠다. 그렇게 다짐을 했었는데 그 소원이 이뤄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백두산 천지 물에다가 붓을 담가서 앞으로 북남 관계에 새로운 역사를 계속 써 나가야 된다”고 말했고 문 대통령은 “이번에 내가 오면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도 하고)”라고 화답했다. 리 여사는 “하늘에서 99명의 선녀가 여기서 물이 너무 맑아서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전설도 있는데 오늘 또 두 분께서 와서 위대한 전설이 생길 것 같다”고 분위기를 띄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최고 존엄임에도 “남측 대표단들도 대통령 모시고 사진 찍는 것이 어떤가? 내가 찍어드리면 어떨까?”라며 제안을 했고 모두가 웃음지었다. 문 대통령과 김 여사는 생수병에 천지 물을 담기도 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김 위원장이 이번에 서울로 답방오면 한라산으로 모시겠다”고 말했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한라산 정상에 헬기 패드를 만들겠다”고 거들었다. 

백두산을 내려온 두 정상 부부는 삼지연 초대소를 찾았다. 남측의 한 참모가 작은 다리를 걷는 것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고 도보다리 명장면을 재현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에 두 정상은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그때를 떠올리며 “(전세계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나눌까. 13가지 새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게 오히려 무슨 있는 그대로 그 장면만 보여주는 게 천하의 명장면이었다”고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많은 시간을 보낸 두 정상은 마지막 삼지연에서의 점심 오찬을 끝으로 연내 서울에서의 재회를 기약하고 헤어졌다. 문 대통령 부부는 삼지연 공항에서 전용기를 타고 서울로 바로 귀국했다.

(사진=청와대)
천지 바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두 정상 부부. 교과서에 나올만한 역사적인 사진이다. (사진=청와대)
(사진=청와대)
천지 물을 떠가는 문 대통령 부부. (사진=청와대)
(사진=청와대)
삼지연 초대소의 작은 다리에서 둘 만의 대화 시간을 가진 두 정상. 제2의 도보다리가 연출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⑤정상국가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
그동안 북한 최고 지도자의 퍼스트 레이디는 철저히 감춰져 있었다. 배우자가 여럿이기도 해 공식석상에 노출시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리 여사는 적극 나섰고 북한의 정상국가화에 1등 역할을 했다. 첫 날 순안공항에서 두 정상 부부가 조우했던 장면은 노동신문 1면을 장식했다. 리 여사는 김 여사의 모든 일정을 동행했다. 리 여사는 김 위원장처럼 자국의 치부를 쉽게 인정했다. 리 여사는 옥류아동병원에서 “우리나라가 좀 보건의료 부분이 좀 많이 뒤떨어졌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이 부분을 좀 치켜세울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영빈관 숙소에서 배웅할 때는 김 여사에게 “날씨 쌀쌀해지는데 감기드실까 조심하십시오”라며 세심히 챙기기도 했다. 옥류관 오찬 때는 “우리나라 찾아오는 외국 손님들이 다 냉면 소리를 하니까. 상품 광고한들 이보다 더하겠나”라고 유머를 구사하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 전세계에 그동안 북한은 테러를 일삼는 악마화된 불량 국가였는데 리 여사의 적극 등장 및 북한의 정상국가 전략이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옥류 아동병원에서 김 여사와 리 여사가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청와대)
옥류 아동병원에서 김 여사와 리 여사가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청와대)

⑥4대 그룹 총수의 동행   
아직 비핵화에 대한 초기 조치가 없는데 4대 그룹 총수가 북한에 동행하는 것에 야당의 비판이 있었다. 일단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 공식수행원(14명)·특별수행원(52명)·일반수행원(91명)·취재진(43명) 등 총 200명 규모의 방북단이 동행했다. 특별수행원은 실향민 3세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을 포괄했는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등 무엇보다 경제 관련 인사들이 많았다. 4대 기업 총수들 중에서 단연 이재용 부회장의 방북이 눈에 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뇌물 사건 3심 재판을 남겨두고 있고 지난 7월 문 대통령과 인도에서 깜짝 만남을 가졌을 때처럼 범죄 피고인에 대한 나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6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재판은 재판대로 엄격하게 진행될 것이고 일은 일”이라며 분리될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인도에서의 문 대통령과 만났을 때 비판적 논평을 냈던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가 동행했기 때문에 어색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교원대학, 양묘장, 학생 소년 궁전, 등 인재와 과학 관련 시설 참관도 하고 산림 관련 견학도 했다. 리용남 부총리와 1시간 가까이 미팅을 하면서 철도 관광 등에 관한 질문도 하고 각자 사업 소개도 했다. 달라진 평양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길에서 보는 시민들도 여유롭고 활기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조성된 거리와 건물들의 규모와 모습에 놀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과 기업인들이 북한 집단체조 공연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재용 부회장과 기업인들이 북한 집단체조 공연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대북 경제협력과 관련 경제 인사들의 방북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경제가 평화다. 평화가 경제라는 말을 쓰는데 반대로 경제가 평화다. 남북 간에 시장이 통합되면 될수록 전쟁의 위협은 줄어들고 평화가 더욱 공고화되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안정화시키는 핵심은 남북 경협이다. 이건 우미 마음대로 안 된다. 미국이 풀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다. 지금은 우리 의지를 좀 보여주는 것이다. 니가 문을 열면 니가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하면 우리가 당신들을 도와줄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 우리 기업들도 만약 저 사람들이 문을 열었을 때 어떻게 할 건지 가서 한 번 봐라. 왜냐면 시장을 한 번 봐야 할 것 아닌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이번에 가서 경협의 상당 부분이 합의돼 보따리를 갖고 온다. 그건 아니다. 거기까진 너무 가는 것이다. 비핵화가 어느정도까지 가지 않으면 경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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