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칼럼니스트
전대열 칼럼니스트

[중앙뉴스=전대열] 신이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군과 나라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샅샅이 보일 것이다. 어떤 곳은 호화찬란하고, 또 다른 곳은 어둑 캄캄할 것이다.

언젠가 인공위성이 잡아낸 한반도의 밤을 보면 남쪽은 전깃불로 훤한 반면 북쪽은 전기사정이 나빠 캄캄했다. 지구 전체를 내려다 볼 게 아니라 한국만을 축소시켜 본다면 지금 핵을 가지고 있는 북한과 핵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남한의 모습이 어떻게 달리 보일까.

미국을 비롯한 유엔은 북핵 없애기에 경제제재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고 있지만 북한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상응조치를 촉구하며 버티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사법부에 대한 검찰의 맹공이 퍼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법부와 검찰은 일란성 쌍둥이면서 이란성으로 갈라져 있다. 나올 때는 한 뱃속인데 나와서는 두 갈레다. 창과 방패다. 그러나 그들끼리는 그동안 서로 도와주고 감싸 안아줬다. 더구나 사법부에 대해서는 삼권분립의 원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기관으로 점 찍혀왔다.

행정 입법 사법3부에 대한 신뢰도는 사법부가 가장 으뜸을 차지한다. 그것은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대원칙을 고수하면서 행정 입법부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중심에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법관 중에서도 간혹 편파적인 부패사슬에 걸려드는 수가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개인비리로 치부되었다. 그러다 터진 게 이번 양승태 사건이다. 양승태는 몇 달 전만해도 사법부 수장으로 임기를 마쳤다.

그가 대법원장으로 재임할 때 상고법원을 만들려고 국회에 로비를 시작하면서 박근혜 정권과도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세운 것이 결국 사법부 비리로 확대된 것이다.

검찰은 양승태에게 법원행정처에 재판거래 및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의 피의자로 적시했으며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한 차한성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 전범기업의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지연하는데 관여한 의혹으로 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또 법원행정처 차장출신 박병대 역시 차한성과 같은 혐의가 적용되었으며 역시 차장출신인 고영한은 지난번 박근혜 탄핵 시 헌법재판관의 비공개 평의에 대한 개별 입장을 보고 받는데 관여하고 부산 건설업자의 뇌물사건에 개입한 의혹으로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된 것이다.

이들이 모두 대법관 출신으로 법조계의 최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이어서 영장발부가 미뤄져 왔으나 늦게나마 발부된 것은 다행이다. 다만 그 틈을 이용하여 증거를 인멸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얼마나 성과를 거둘 것인지는 미지수다. 사법부는 독재정권과의 상부상조 형식으로 지탱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전적 독재를 자행한 이승만 정권 때는 김병로라는 걸출한 대법원장이 꼿꼿하게 앉아 있어 어지간한 문제는 독자적인 판단으로 끝냈다. 이승만은 울화를 이겨내기 힘들었지만 김병로를 내치긴 어려웠다. 국내에 남아 독립 운동가를 변론하면서 서슬 퍼런 기개를 폈던 김병로는 범하기 어려운 사법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에도 조봉암에 대해서는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의 사법부는 정권의 꼭두각시를 면하지 못했다. 내가 겪은 실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 실태를 살펴보자. 긴급조치9호, 국가모독, 계엄포고령위반, 내란음모사건 등이 나에게 적용된 죄목이다. 유신시절의 정보부와 신군부의 안기부가 고문으로 꾸며낸 엄청난 두께의 조서가 작성되어 검찰로 넘어간다.

담당검사는 형식적인 신문을 거쳐 기소하는데 공소장은 정부부에서 작성한 조서와 토씨까지 똑같다. 심지어 오타가 있는 것도 바로 잡지 않는다. 1심재판부 판결문 역시 그대로다. 고등법원에서는 약간이라도 손질을 하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어차피 유죄로 판결이 내려지는 것인데 구태여 머리 써가며 손가락 아프게 새로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마지막 기댈 곳은 대법원뿐이다.

일반 형사사건이라면 대법원 재판에 피고인을 출석시키는 일은 거의 없지만 정치범에 대해서는 형식상 소환하여 인정신문까지 한다. 최후진술도 듣는다. 그리고 기대했던 판결문이 내려오면 정보부에서 작성했던 조서 그대로 획수 하나 고치지 않고 복사판을 보게 된다. 그 당시의 검사와 판사는 몸이 편했을 것이다. 따로 머리와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양승태 대법원은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과의 회동으로 재판거래를 했지만 유신시대와 신군부시대의 대법원은 정보부의 지시와 명령에 고분고분 따르는 노예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야말로 살았다고 큰 소리 칠 수 있을까. 그러고도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공식적인 사과를 한 일이 없다.

긴급조치와 내란음모사건 등에 대해서는 헌재의 위헌판결에 따라 재심 청구자에게 무죄로 판결하고 있지만 형사보상금 외에 손해배상청구는 받아드리지 않고 있는 것도 용혹무괴한 일이다. 헌재에서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도록 길을 열었지만 헌재 판결일부터 새로운 시효가 시작된다는 것도 명시했어야 옳다.

양승태등 압수영장과 관련하여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은 매머드 수사팀을 꾸리면서 “ 이번 수사는 법원을 죽이려는 수사가 아니다. 법원을 살리기 위한 수사다. 법원이 무너지면 검찰도 무너진다.”고 철저한 수사를 강조했다. 사법부가 이 지경까지 이른 배경 설명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권력과 야합한 사법부는 사법부가 아니다. 스스로 자정능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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