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회 18만4758명에 비해 11.7% 늘어...5년 만에 2배 증가
"부동산 시장 호황, 베이비붐 세대 은퇴, 자영업 위기 등 영향"

오는 27일 공인중개사 시험을 앞두고
오는 27일 공인중개사 시험을 앞두고 강의실마다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100세 시대가 축복만은 아니다. 1955~1963년생 베이비부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지금껏 달려왔던 만큼 또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명퇴, 정년으로 밀려난 이들을 신중년이라 부르며 여전한 효용적 가치를 논하지만 정작 이들을 수용할 사회적 일자리는 태부족이다. 때문에 정년 이후 준비되지 않은 삶은 팍팍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40·50대 실업자는 37만8000명으로 1999년 8월 기록된 42만9000명 이후 19년 만에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50대 실업자 수는 구직기간 4주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9년 이래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또한 취업자 측면에서도 40~50대의 적신호가 켜졌다. 50대의 취업자 수 증가폭이 지난해 전반에 걸쳐 13만1000~21만6000명에 이어 올 2월 3만5000명에 정점을 찍더니 8월에는 5000명인 1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열심히 달려왔건만 여전한 빈 손...재취업 문은 열리지 않아

그러니 취업난 현실에 직접 부딪치는 이들은 난감하다 못해 참담한 실정을 한탄한다.
“아, 정말 지금껏 회사만 알고 열심히 뛰었는데 막상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지금껏 일한 대가가 이런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리 힘들게 살았는지, 생각하면 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다.

노후를 생각할 겨를 없이 대책 없게 살았다. 문득 정신차려보니 정년이라고 그만 짐 챙겨 나가라고...시골에 노모도 계시고 아직 출가하지 않은 아이들도 있고, 다시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다. 그런데 뭘 해먹고 살아야할 지 진짜 돌아버릴 지경이다.”

지난해 모기업의 식품부를 퇴직한 L(60년)씨의 말이다. 그런 L씨의 꿈은 정년 후 아내와 한가로이 세계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는 것이었다고. 그런데 그는 국내여행은커녕 당장 일자리 찾기 급급한 현실에서 이렇게 참담함을 드러낸다.

섬유 관련 모회사를 퇴직한 Y(58년)씨의 상황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고용노동부 실업수당을 신청했다는 그는 “젊은 2~30대 들도 취업이 힘든 현실이라 우리 같은 퇴직자들의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학교 보완관이나 경비 자리일도 경쟁이 치열해 그마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막노동을 하는 것도 나이 들어 쉽지 않다. 막노동도 해본 사람이나 할까. 우리 같은 사람은 사고 나기 십상이라고 잘 안 써준다. 그러니 진작 뭔가 준비를 해놓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라고 했다.

물론 정년에 앞서 이모작을 탄탄히 준비한 이들도 있다. 지난해 명퇴를 자청한 A(63년)씨. 그는 외국인 회사의 기술직 부서에 정년 5년을 앞두고 나와 독서실에서 1년을 투자했다.

전기기사2급에 이어 1급 자격증을 취득을 위한 준비였다. 그 결과 현재 압구정동의 대형백화점에 전기기사로 재취업했다.

“이모작을 하려면 한살이라도 젊어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리 결단을 내렸다. 또 당장 딸아이 결혼 자금도 필요했고, 명퇴금으로 아이 결혼자금에 보태고... 나중에 더 나이 먹어서는 고향에 내려가 사무실에 전기기사자격증 내걸고 사람모아 공사 현장에 전기 관련 일을 할 생각이다.” 

하지만 A씨처럼 정년 후의 이모작을 준비한 것은 아주 적은 수에 불과한 것이라 대부분은 재취업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학력과 나이 불문, 정년 보장의 공인중개사...그러나 이미 포화상태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를 거듭할수록 정년보장이란 메리트를 가진 공인중개사 시험에 퇴직자들이 몰려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 28회 공인중개사 원서접수에 인원이 총32만 1,001명으로 전년도 27만 3,251명보다 17.5% 증가했다. 특히 20~30대가 7만8245명으로 전체 응시자의 38%로 2년 전 1만3928명에서 2만3239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10대 응시자도 같은 기간 143명에서 600명으로 약 4배나 급증했다. 

공인중개사학원에 취업난과 고용불안에 처한 2030세대가 매년 증가 추세다 (사진=신현지 기자)
공인중개사학원에 취업난과 고용불안에 처한 2030세대가 매년 증가 추세다. (사진=신현지 기자)

이 같은 현상에 일각에서는 퇴직자들의 중개시장의 입지가 그리 순탄치 않을 거라는 조심스런 우려를 내놓고 있다. 즉  중개시장에 청년층이 급증하는 것은 자격취득 후 기동력과 순발력 강한 그들과의 치열한 경쟁의 예견이라는 일각의 분석이다.  

더욱이 공인중개사 응시생들이 느는 만큼 개업공인중개사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이를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즉, 부동산시장 파이 나누기 싸움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개업공인중개사 2만 4561명, 파이 나누기 싸움은 갈수록 치열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만 개업 중인 공인중개사 수가 2만4561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신규 개업자만 670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작심하고 칼을 빼든 정부의 부동산시장 규제 정책도 중개시장의 순탄치 못한 어려움의 예견이다.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앱을 이용한 전자계약시스템도 큰 부담일수밖에 없다는 분석이고. 

그런데도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오는 10월 치러지는 제29회 공인중개사 시험에 20만6401명이 접수했다. 지난해 제28회 시험에 접수한 인원 18만4758명에 비해 11.7% 늘어났다. 5년 전인 2013년에 비해선 2배 넘게 늘어난 수치의 기록이다.

한편 지난 2일 방문한 서울의 OO공인중개사학원은 강의실마다 초만원이었다. 오는 27일 29회 중개사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의 표정은 사뭇 긴장감마저 엿보였다. 같은 구역의 ⧍⧍중개사학원도 풍경은 다르지 않았다. 

서울의 개업공인중개사만 2만4561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신현지 기자)
서울의 개업공인중개사만 2만4561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신현지 기자)

이날 ⧍⧍공인중개사의 K상담 실장에 따르면 코앞으로 다가온 시험에 수험생들의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져 있다는 귀띔이었다. 이어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온 수험생은 대부분 합격하게 되는데 작년 ⧍⧍학원생의 합격률이 91%였다.”며 은근한 수강신청을 권유했다.

오는 11월 8일 30회 공인중개사 개강 전까지 등록자에는 10%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는 말과 함께 더불어 그는 수강 상담에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학력과 나이 제한이 없고 정년이 없다는 것에 중년의 고시가 된 지 오래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7~80%였는데 요즘은 퇴직자들이 몰려 남녀가 거의 반반이다.

더욱이 고등학교만 졸업한 친구들까지도 이 시장에 뛰어 들고 있다. 취업이 어렵기도 하지만 내가 하기에 따라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중개시장이 포화상태라고 하지만 다른 직종 역시도 포화상태다.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들이 8~9억 대들이 넘는데 한 달에 두어 개만 중개해도 웬만한 직장인 보다는 낫다. 정부의 부동산시장 규제로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하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걱정하고 문을 닫는 중개사는 없다. 그 이유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장에 나가보면 알게 된다.”라고. 

하지만 정작 개업공인 중개사들은 예전 같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달 합정의 E 공인중개사는 “우리 중개소에 세 명이 같이 일했는데 지금은 나 혼자다. 거래가 뚝 끊겼다. 더구나 한집 건너 하나씩 생겨난 공인중개소라 고객 유치 경쟁이 만만치 않다.”라고 말했다.

9,13대책 이후 하루평균 거래량 7,4건

이를 입증하듯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1만8665건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37.2% 감소로 집계되었다. 더욱이 종부세 강화와 대출 규제, 임대사업자 혜택 축소 등 수요 억제책을 담은 9·13 대책과 9·21 공급대책이 잇따라 발표된 이후로는 하루 평균 7.4건에 불과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9월 1~13일 서울 아파트 계약건수는 1334건으로 하루 평균 102.6건이었으며 14~26일의 경우 89건으로 하루 평균 7.4건으로 집계되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인중개사 시험 지원자가 급증한 것은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부동산 호황과 청년 취업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맞물린 영향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서울의 부동산 시장이 과열양상을 보이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대한 관심이 부척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5060 그래도 갈 곳은 이곳밖에...

이래저래 50~60세대들에게는 인생이모작의 쉽지 않은 고비다. 이날 ⧍⧍공인중개사 학원에서 만난 수험생 H(56년)씨의 표정에서도 이 같은 현실의 고충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는 “올해로 수험생 3년째 그만 폐인이 다 됐다.”며 “그래도 갈 곳은 여기 밖에 없는데 작년 1차 합격에 이어 올해 2차를 준비 중인데 올해는 그만 졸업을 해야겠지요.” 라며 쓰게 웃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