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명령법 ·· ‘동물 국회’와 ‘식물 국회’를 뛰어넘어
국민명령법 ·· ‘동물 국회’와 ‘식물 국회’를 뛰어넘어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8.10.10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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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기 막기 위한 선진화법이 식물 국회 만들어, 패스트 트랙 330일→60일, 중요한 건 적대적 정치 문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최근 국회에서는 몸싸움하고 망치로 문을 부수는 장면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꼭 필요한 법률과 공적 의제가 통과되지 못 하고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5월24일 보도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물 국회를 다시 소환할 이유는 없지만 식물 국회도 정상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국민명령법(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수 의석을 점한 A당이 B·C정당의 의사를 깔아뭉개고 법률을 날치기 통과시키려는 것과 그걸 막으려는 B·C정당의 물리적 행동이 일종의 패턴(동물 국회)으로 반복됐던 게 2012년 이전의 국회 풍경이었다. 

2012년 이전에는 노동법(1996년), 미디어법(2009년), 한미 FTA(2011년) 등 중요한 사안마다 날치기와 몸싸움이 반복됐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제공)
2012년 이전에는 노동법(1996년), 미디어법(2009년), 한미 FTA(2011년) 등 중요한 사안마다 날치기와 몸싸움이 반복됐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제공)

그걸 방지하기 위해 2012년 5월2일 만들어진 것이 국회 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이다. 그랬더니 이제는 식물 국회가 돼 버렸다. 원내 교섭단체 정당이 반대하면 입법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의사일정 자체가 올스톱된다. 실제 올해 상반기 국회의 상황은 쟁점 이슈 한 가지(김영철 방한·방송법·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드루킹 등)로 올스톱되는 현상이 빈번했다. 

최 의원의 국민명령법은 그런 선진화법 체제를 뒤집어 동물 국회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그 둘 사이에서 좀 더 생산적으로 보완하는 의미가 있다. 

선진화법의 핵심은 국회법 85조에 따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제한하는 것과 패스트 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두 가지가 핵심이다. 

이를테면 입법 절차가 <상임위원회 법안소위 →상임위원회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국무회의 →대통령 공포>인데 집권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다수당이라면 여러 절차를 패싱하고 본회의로 직행할 수 있는 게 의장의 직권상정이라는 권한이다. 

선진화법은 그 직권상정의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각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의 합의 3가지로 제한해서 사실상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률 통과를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대신 특정 안건에 대해 재적 의원의 60%(180명)가 동의하면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될 수 있고 여야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330일(상임위 180일+법사위 90일+본회의 부의 60일)이 지나면 무조건 본회의에 상정된다. 문제는 여러 정치적 상황에 따라 패스트 트랙의 정족수인 180명이 하나의 뜻으로 모이기 힘들어 사실상 교섭단체 정당이 반대하면 입법 성과는 제로일 수밖에 없다.  

최 의원의 국민명령법은 ①패스트 트랙 안건 지정에 국민 참여 보장(19세 이상의 국민 50만명 이상 동의 필요) ②330일을 60일(상임위 45일+법사위 15일)로 단축 ③국회 사무총장이 청와대 청원 사이트와 같은 시스템 구축 등 3가지다.

최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안건이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된 경우에도 처리 기한이 길어 실질적인 신속 처리가 이뤄지지 못 하고 있고 국회의원 이외에 국민이 직접 패스트 트랙 안건 지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절차가 없어 민생 안건들이 조속히 처리되지 못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전 의장은 “다수의 폭거나 일방통행은 견제해야 하지만 국회가 제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곤란하지 않나.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여야 합의로 선진화법을 개정해서 21대 국회부터 시행하자고 운영위원회에 소위까지 만들었지만 소위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 했다. 식물 국회를 정상 국회로 만드는 소임을 다하지 못 한 책임을 크게 느낀다”고 언급했는데 실제 여야는 선진화법 관련 공감대를 이룬 적이 있었다.

故 노회찬 전 원내대표는 6월26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여야가 선진화법을 개정하자고 합의했다”며 “다만 지금 선진화법을 개정하면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이 불리하니까 21대 국회부터 적용하는 것을 전제로 합의가 됐다”고 발언했다.  

최재성 의원의 국민명령법은 사실상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최재성 의원실)
최재성 의원의 국민명령법은 사실상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최재성 의원실 제공)

최 의원의 국민행동법이 정치적으로는 반대로 해석될 여지도 물론 있다. 자유한국당이 강성 야당을 표방하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 발목잡기를 하고 있으니 민주당 입장에서 안건 통과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제도를 바꾸려는 정치적 의도의 발현으로 비춰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제도보다 ‘정치 문화’다. 입장과 논리가 달라도 각 정당들이 꾸준히 만나서 토론하고 절충할 수 있는 숙의 민주주의적 품격이 있어야 할텐데 한국 정치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으로 유지되다 보니 어떤 제도가 도입돼도 무용지물일 수 있다. 의제에 대한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해서 당론이 결정되면 절대 타협이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 상대 정당을 못 믿고 제도적 강제성으로 문제를 풀려는 발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불신은 곧 국회 불신인데 최 의원의 국민명령법 발의를 계기로 제도와 문화가 상호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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