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쓰면 좀 더 세련되고 우아하고 화려하다는 인식 깊어
우상호 의원, "국어책임관들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거리에 널린 외래어 간판이 낯설지 않다 (사진=신현지 기자)
도심의 거리엔 온통  외래어 간판이다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얼마 전 회사원 E씨는 어머니 집을 방문하고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몸의 각질제거용 화장품을 어머니가 얼굴에 바르는 모습 때문이었단다.

그 광경에 화장품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며 어머니께 언성을 높였다가 E씨는 그만 말을 잃었다고 한다. 화장품 용기에 표기된 상품명이며 설명서가 온통 외래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 같이 외래어 표기에 난감한 사례는 비단 E씨만이 아니었다.

K(63세)씨는 거리에 온통 난립하는 외래어 표기 간판에 약속 장소를 찾을 때마다 문맹인이 된 느낌이라고 하소연이었다.

“이거는 대한민국인지 미국인지 온통 영어 간판이라 바로 옆에 놓고도 그 장소를 못 찾아가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또 있어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어도 전부 영어표기라 뭐가 뭔지 알아야 주문을 하든 어쩌든 하죠. 일일이 묻자니 옆에 눈치도 보이고. 또 어떤 커피숍은 커피인지 쥬스인지 도통 알아볼 수게 영어로만 표기기 돼 있어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죠.”

외래어 만용에 이어 10~20대를 중심으로는 일고 있는 신조어 양산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중2년생을 자녀로 둔 A씨는 얼마 전 우연히 아들의 핸드폰을 건네다 보다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상형문자에 한자에 철자는 물론 문맥도 맞지 않은 혼합어로 친구와 톡을 주고받는 녀석의 모습에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였던 거죠. 家능궈 ☆上관 없능궈능 亞능뒈훀 글애듴 ⓡ려듀九 싀풔숴훀 어릨 因仁川女中싁⑨들앜!! ㉯㉯납♡ ⌒⌒*”

즉, 위의 사례들은 소통과 화합을 추구하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외래어 만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제시된 내용들이다.

특히 올해로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제572돌 한글날을 맞아 뜻 있는 단체와 매체에서는 한글의 현주소를 묻는 움직임으로 한글사용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지난 9일 한글날, MBC 방송(우리들의 행복한 소통을 위하여)에서도 특집 다큐멘터리 ‘21세기 대한민국의 외래어, 외국어 사용 실태’를 점검하는 프로그램 방영으로 우리 한글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이날 방송의 ‘우행위’는 방송, 대중음악, 공공 언어 등등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든 외래어 사용 실태에 대한 사례를 통해 언어생활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방영했다.

이에 이날 ‘우행소’가 보여준 사례 중 하나를 설명하자면 5~60대 8명을 대상으로 전철 안에서의 위험 대처 요령에 한글 안내와 외래어 안내 두 방법을 실험하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우리말 안내에서는 4명 모두 자동심장충격기를 찾는 것에 어려움을 겪지 않아 총 1분 47초에 모든 행동요령을 마쳤다.

반면 외래어 안내에는 대부분 참가자들이 우왕좌왕 심장충격기를 찾지 못하거나 중도에서 포기하는 등 매우 당황하는 모습으로 총 2분 38초가 소요되었다.

이날 위험대처 요령의 외래어 안내의 참가자는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안 들어오는 바람에 더 당황하게 되고 행동하기 어려웠다.”는 소감을 털어놓았다. 

이에 프로그램을 함께 한 OO대학 모 교수는 “저분들이 더 심각해지면 패닉상태에 놓이게 된다. 쉬운 우리말 언어 사용이 안전과 생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 실험을 통해 더 쉽게 설명이 된 것 같다.”며 우리 사회의 공공언어에 외래어 사용의 문제점을 짚어냈다.

또한 이날 ‘우행소’는 국내의 제품에도 외국어 상품명이 붙는 것에 과연 소비자가 외국어명을 선호할지 신제품 가격 조사를 가장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동일한 정장 바지를 상표를 달리했을 때 소비자의 예상가는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즉, 소비자들은 영어로 쓴 `light Glen Plaid Slacks'제품은 10만8500원, 같은 제품의 한글로 옮겨 적은 `라이트 글렌체크 슬랙스'제품은 8만6000원, 원단의 모양을 한글로 풀어쓴`밝은 격자무늬 정장 바지'제품은 4만3800원이라고 예상했다. 단지 외래어를 사용한 것만으로도 소비자들은 상품 가치를 2~3배 높게 평가했다.

이 같은 소비자의 평가에 이날 방송에 참가한 의류 전공 교수는 동일한 의복 상표를 붙이더라도 외래어를 쓰면 좀 더 세련되고 우아하고 화려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우행소’는 순수한 우리말 가사로 미국 관중들의 떼창을 이끌어내는 방탄소년단의 모습에 이어 소규모 업체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 상품명 붙이기 등을 통해 우리말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이날의 주제를 간추렸다.

이처럼 한글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일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강상현)도 관심을 집중했다. 방통위는 한글날을 앞두고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예능프로그램 등에서 국적불명의 무분별한 신조어에  한글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 방송언어 관련 심의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중점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그 결과 ‘행사러’(KBS 2TV 해피투게더), ‘드루와’ ‘뷰리full’(MBC 전지적참견시점), ‘띵곡’ ‘열’(SBS 런닝맨), ‘뙇’ ‘뮈안해’(JTBC 아는형님), ‘갓창력’ ‘Aㅏ 그렇구나’ ‘짜롼당’(MBC에브리원 주간아이돌), ‘1도 없는’ ‘씐나씐나’(코미디TV 맛있는녀석들), ‘밥동둥절’ ‘혜무룩’(tvN 놀라운 토요일) 등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채널을 가리지 않고 출처와 뜻도 알 수 없는 한글 자막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이 조사됐다.

이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강상현)는 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 국적불명의 신조어가 무별하게 사용되는 등 우리말 훼손의 심의규정 위반은 그 여부를 따지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단순히 재미를 위해 저속한 조어나 비표준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선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위반 여부를 엄밀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방송매체의 우리글 훼손에 관한 자정의 노력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국어발전과 보전 업무를 총괄하는 국어책임관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우상호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서대문갑)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국어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18년 국어책임관 운용 현황을 통해 국어책임관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밝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우상호 의원이 조사한 ‘2018년 국어책임관 운용 현황’에 따르면 중앙부처와 소속 공공기관에 1,347명, 지방자치단체244명, 교육청 240명의 국어책임관이 있다.

‘국어기본법’ 제 10조에 의하면 국어책임관의 역할은 해당기관이 수행하는 정책을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알기 쉬운 용어의 개발과 보급 및 정확한 문장의 사용 장려, 국어사용 환경 개선 시책의 수립과 추진 등이며 대국민 자료 및 보고자료 국어의 감수이다.

하지만 국어책임관이 각 기관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013년 국립국어원에서 조사한 언어생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행정기관의 용어가 어렵다는 의견이 54.7%로 조사되어, 행정기관 서류의 어려운 한자어와 왜식문구 등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고치는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상호 의원은 “국립국어원에 한 공공기관 누리집의 한글 표기 상태에 대한 감수를 요청한 결과 짧은 문단임에도 불구하고 띄어쓰기 오류와 어순의 오기, 왜식문구의 사용 등 다수의 오기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국민들이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각 기관 누리집의 올바른 국어 사용과 행정 용어 사용을 위해 국어책임관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9일 제572돌 한글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한글날 경축식'이 진행되었다. 세종28년 한글 반포를 기념하기 위한 이날 '한글날 경축식'에서는 방탄소년단이 한류 확산과 함께 전 세계 팬들에게 한글을 알린 공을 인정받아 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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