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의 극비 방북 허용, 한국 정부엔 앞서가지 마라고 경고, 뒤에선 북한 경제 선점, 한국 보수의 인식 전환 시급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미국의 성동격서 전략이 취해지고 있다. 겉으로는 대북 제재를 외치고 극비로는 미국 기업인들의 방북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남북관계 진전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미국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게 사실 북한 경제의 이권을 선점하기 위한 자본주의적 의도의 발현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9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우리가 그런 정책의 이면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이제 알아야 한다.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에 제동을 거는 속셈이 뭐냐. 저의가 뭐냐 이런 걸 따져봐야 한다”며 “중국보다 먼저 (북한 투자에)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도 있고 남한보다 먼저 들어가서 여기저기 손을 뻗쳐 놔야겠다는 계산이 없으면 미국 기업들이 지금 북한에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는 얘기를 트럼프 대통령이 못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세현 전 장관은 미국의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캡처사진=tbs)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시간으로 10일 아이오와주로 유세 일정을 떠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을 만나 “아직 매우 큰 제재들을 풀지 않았다. 나는 (제재를) 제거하고 싶지만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지금 봉쇄돼 있지만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경제적 성장을 이루려는 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목적이다. 북한이 외국인 투자를 원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말할 수 있다”며 “어느 시점에서 김 위원장이 결심하면 정말 굉장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 전 장관은 “(한국 보수진영에서 한미) 공동보조론을 취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공동보조론자들 나중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격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생각을 바꿔야 된다. 남북관계가 한 발 앞서가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강시 같은 소리하지 말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자전거가 나간다”고 주장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자전거도 양쪽 페달을 똑같이 밟고 있으면 자전거 안 나간다. 왼쪽이든지 오른쪽이든지 먼저 하나 밟아야 한다. 그래야 바퀴가 돌아가고 앞으로 나가고 사람도 왼발이든지 오른발이든지 한 발 떼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대북 한미 공조라는 게 두 발로 동시에 뛰면서 이동하는 강시가 아니라 페달을 밟아 한 발 한 발 나가는 자전거처럼 한 쪽이 앞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제재 유지라는 공식 기조와는 별개로 남북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다.

17일 동아일보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9월 말부터 10월 초 독일 에너지 기업과 미국 곡물 기업 관계자들이 방북했다. 평양 정상회담 일정이 조율되던 때 북한 경제당국이 한국 대기업 인사들의 방북을 원했던 것처럼 이번에 글로벌 기업인들을 ‘경제시찰단’으로 지칭하고 크게 신경써서 대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인데 그들은 “북한 내부에서는 앞으로 제재가 완화되면 외부 투자금이 흘러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함경북도 경성군 온포온실농장 건설 준비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8월18일에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은 풍부한 광물자원(마그네사이트는 60억t·흑연 200만t·철광 50억t·중석 25만t)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 기업이 이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미국 기업은 낙후된 북한의 농업 생태계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투자 의향을 내비쳤다. 

트럼프 정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유엔 차원의 제재 완화 또는 미국의 독자 조치는 부담스러우니 민간 기업의 방북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제재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우회로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방북한 기업인들 외에도 △미국의 발전설비·농기계 분야 기업들 △독일의 기계 기업들 △호주의 에너지 개발 기업 △북측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중국의 기업들 △네덜란드의 투자 컨설팅 업체 ‘GPI 컨설턴시’의 11월 중순 유럽 기자단의 방북 프로그램 구상 등 사실상 대북 제재 완화 이후의 상황을 노리는 움직임은 전세계적이다.

현재 북미 비핵화 협상의 단계는 풍계리 핵 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에 대한 국제 사찰단의 검증을 두고 조율하는 상황이다.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가 나와야 북한이 부분적 핵 리스트를 신고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 상응 조치의 형태를 기업인의 방북 허용으로 추측해봤을 때 결국 민간 투자로 압축된다. 

최근 들어 김 위원장의 의중도 종전 선언 보다는 제재 완화로 읽힌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다. 

현재 남북의 교류협력은 자주 만나서 완벽한 준비 상태를 만드는 것에 머물러 있고 북미의 협상 진전으로 제재 완화가 이뤄지면 바로 실행에 들어갈 태세다.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경고성 메시지는 자주 있어왔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승인(Approval)없이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며 우리의 독자 제재인 5.24 조치에 대해서 명백한 외교적 결례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40일 만에 삼지연군을 다시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월19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위원장이 40일 만에 삼지연군을 다시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월19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결국 ①비핵화 협상에 따른 제재 완화의 결정권과 ②대북 투자효과의 수혜자로서 주도권 둘 다 미국이 틀어쥐어야 한다는 것인데 정 전 장관은 “과거 90년대 초반 북핵 문제가 꼬였을 때 카길(미국 최대 곡물기업)이 방북해서 식량난을 좀 덜어주고 대신 광물자원을 싼 값으로 들고 나와서 국제 사회에서 팔려고 거래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지금 다시 그들이 움직인 것”이라고 관측했다. 

①에 대한 통제권은 미국이 확실히 갖고 있으니 남북 경협이 앞서 가는 상황을 뛰어넘어 ②의 측면에서 과거에도 선례가 있는 방식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하면 아무래도 말이 쉽게 통하고 또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금방 북한 경제와 남한 경제가 한 덩어리로 연결된다. 그런데 미국 기업이 먼저 선점하면 북한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아지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경제공동체 구상이나 한반도 신경제지도 이걸 어렵게 만들어 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미국 마음대로 그런 노림수를 갖는 것을 우리가 말릴 수 없지만 정 전 장관은 한미 공조에 과잉 집착하는 자유한국당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의 광물 매장량. (자료=현대경제연구원)

윤영석 수석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한국당의 관련 입장을 살펴보면 이런 거다.
 
“북한 핵무기, 생화학 무기, 2000여기의 미사일은 그대로인데 국회가 판문점 선언을 비준해 연내 종전 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법적 효력을 부여하면 주한미군 철수를 둘러싼 심각한 한미동맹 균열과 남남갈등은 필연적으로 초래될 수밖에 없다.(10월9일)” 

“한미동맹 균열을 초래할 종전선언도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담보가 있을 때 가능하다.(9월26일)”

“정부가 판문점 선언 비준도 받지 않고 남북공동 연락사무소를 개소하고 방북에 4대그룹 총수를 동행시키는 등 제재를 성급히 풀고 있는 반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철저히 이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남북관계 발전은 비핵화 속도와 맞춰가야 한다. 비핵화 진전은 없는데 대북제재 완화 속도만 빨리하려 한다면 비핵화를 방해하는 상황으로 악화될 수 있다.(9월16일)”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미국의 행보는) 성동격서다.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움직이지마 이래놓고 자기네들은 빨리 빨리 들어가 이런 식 아닌가”라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로 그게 우리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 발이라도 먼저 앞서 나가고 여건을 조성하고 미국이 따라오도록 적극 촉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한국당의 주장은) 미국이 안 가면 가만히 있으라는 건데 그러면 북핵 문제가 전혀 진전을 못 볼 것이다. 그럼 북핵 문제 해결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한미 공동보조론을 주장하는 우리 언론들이랄까 이른바 (보수) 논객들은 북핵 문제 해결을 안 바라는 사람이라고 딱지를 붙여도 할 말 없을 것”이라고 거듭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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