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럽 외교력 집중의 필요성, 유럽 주요국 정상들로부터 견인책 전향적 발언 아쉽게 못 끌어내, 문 대통령의 유럽 일정이 가지는 외교적 목적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실질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격을 갖춘 메이 총리에게는 “적어도 북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비핵화를 진척시키면 대북 인도적 지원이나 제재 완화가 필요하고 그런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가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시간으로 19일 오후 벨기에 브뤼셀 유로파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 도전에 대한 글로벌 동반자>라는 주제의 12회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참석해 “북한이 계속 비핵화 조치를 추진하도록 국제사회가 안보리를 중심으로 견인책에 대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메이 총리를 만나 견인책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메이 총리를 만나 견인책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두 정상에게 “북한은 2017년 11월 이후 핵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나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폐기 약속에 이어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으면 플루토늄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핵물질을 만들 수 있는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용의까지 밝혔다”는 점을 환기했다.

기본적으로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중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스탠스다. 문 대통령이 유럽에 방문한 외교적 목적은 결국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기 위해서라도 견인책 차원의 선제적 제재 완화를 암시하는 주요국 정상의 입장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지 못 했다.

메이 총리와 메르켈 총리는 원론적으로는 견인책에 대해 공감을 표했지만 “북한도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위한 좀 더 확실한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메이 총리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진전시키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대통령의 노력으로 한반도에 이전과 다른 환경과 기회가 조성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지만 문 대통령이 원하는 견인책에 대해서 진전된 표현을 내주지는 않았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위와 같은 정상 회담의 내용을 현지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15일 문 대통령과 만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전제하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 일맥상통한 발언을 반복했다.

문 대통령은 ASEM 일정 중에 짤막하게 정상들을 만났고 거듭 북한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메르켈 총리는 “문 대통령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에 대해 감사하고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진전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독일은 전범국이라 유엔 상임이사국은 아니지만 사실상 유럽의 맹주로 전체 유럽의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다. 메르켈 총리를 만난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독일은 전범국이라 유엔 상임이사국은 아니지만 사실상 유럽의 맹주로 전체 유럽의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다. 메르켈 총리를 만난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두 정상의 일관된 지지에 고마움을 표했지만 전향적인 입장을 내주지 않아 조금 아쉬운 게 사실이다. ASEM이 폐막하면서 발표한 의장성명도 원론적인 지지 입장 외에 우리 정부가 달가워할 만한 내용은 아니다. 

남북미 비핵화 협상은 ①잦은 외교적 교류 ②북한의 비핵화 조치 ③제재 완화 및 종전 선언 등 3가지 큰 파트로 집약될 수 있고 ②과 ③을 두고 상호 힘겨루기 중인데 그 과정에서 ①을 늘려가고 있다. 

유라시아 51개국 정상들이 채택한 의장성명의 골자는 Ⓐ외교를 통한 한반도 핵 문제의 포괄적 해결 지지 Ⓑ남북미가 각각 채택한 공동선언의 신속한 이행 지지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의 완전한 이행 약속 등이다. 

Ⓐ는 ①의 내용이고 Ⓑ와 Ⓒ는 ②이다. 하지만 ③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성명의 문장들은 이런 거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대한민국의 노력과 여타 파트너들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환영한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 및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완전하고 신속한 이행을 지지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모든 핵무기, 여타 대량살상무기, 탄도 미사일 및 관련 프로그램과 시설을 CVID 할 것과 북한이 밝힌 완전한 비핵화 공약을 이행할 것.(Ⓒ)”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및 IAEA(국제원자력기구) 세이프가드의 조속한 복귀와 모니터링 시스템에 협조할 것.(Ⓒ)”

“제재를 포함한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약속했다.(Ⓒ)”

“현재 진행 중인 대북 외교적 노력이 북한의 인권 및 인도적 상황 개선에도 기여해야 할 것(Ⓒ)”

ASEM에 참석한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ASEM에 참석한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① 그 자체는 원론적인 의미로 얼마든지 자주 거론할 수 있지만 바로 ②의 표현들이 넘쳐났고 무엇보다 최근 미국 정부도 견인책 차원의 ③을 환기하는 분위기인데 유행이 진작 지나가 더 이상 미국 관료들도 언급하지 않는 CVID가 의장성명에 거론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임상훈 인문결연구소 소장은 17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마크롱 대통령도 CVID를 또 얘기했다. 미국도 이야기 안 하는데. 그러니까 (유럽은) 뉴스가 뒤처져 있고 이건 (유럽 주요국들이 대북 문제에 대해) 입장 표명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 하고 있어서 좀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분명 북한은 리비아 모델처럼 일괄타결(All in one)되는 방식을 거부할 것이고 미국도 잘게 쪼개지는 단계적 방식 일변도를 원하지 않는다. 둘 다 절충하는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위해 신뢰 구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핵 리스트 신고가 아닌 풍계리와 동창리의 국제 사찰단 파견에 북미가 뜻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유럽 주요국의 인식은 초기 미국의 강경론인 CVID적 리비아 모델에 머물러 있다.

결론적으로 비핵화 협상이 미국을 비롯 동아시아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북미의 진전에 따라 그 트렌드가 해당 범위 내에서는 확산될 수 있지만 유럽에는 미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만큼 한국 정부의 대유럽 외교력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미 공조도 중요하지만 한유럽 공조로 사전 설명만 충분히 이뤄졌다면 영국·프랑스 정상의 전향적 발언을 이끌어낼 수 있고 그것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기조를 전환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방북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낸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할 수도 있다. (사진=청와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방북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낸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할 수도 있다. (사진=청와대)

물론 이번 문 대통령의 유럽 일정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사실상 이끌어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한편, 문 대통령은 ASEM 세션 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시작으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경제공동체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를 이뤄가겠다”며 “아시아와 유럽의 인적·물적 교류 확대가 유라시아 전체의 평화와 공영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세션 주제는 <포용적 성장과 지속가능 연계성 증진을 통한 미래 협력>이었는데 “연계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소개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