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103명 의원들 서명으로 공동 발의, 윤창호군 친구들의 노력, 양당 원내대표의 의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모든 법률이 패키지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은 국회에서 ‘윤창호법’이 시급히 통과될 수 있을까. 특히 쟁점 이슈와 무쟁점 이슈가 뒤섞여 협상의 변수로 작용하는 일종의 패턴이 있는데 그걸 윤창호법이 뚫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1일 14시 음주운전 피해자 윤창호씨(22세)의 친구들이 국회 정론관을 찾아 윤창호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지난 9월25일 부산에서 만취 운전자의 인도 난입으로 윤씨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지금까지 의식을 찾지 못 하고 있다. 친구들은 윤씨 사건에 분노했고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는 활동을 다방면으로 전개했다.
청와대 청원글을 올려 37만9125명의 동의를 이끌어냈고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윤창호법의 발의를 독려했다. 여기에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호응했고 친구들이 직접 만든 법안을 거의 원안 그대로 성안했으며 여야 가리지 않고 102명(더불어민주당 45명·자유한국당 22명·바른미래당 21명·민주평화당 7명·정의당 3명·무소속 4명)의 동의 서명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21일 청와대 답변을 통해서 강력 대응 기조를 설명했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날 친구들은 국회에서 서명해준 102명의 의원들에게 감사 편지를 직접 전달했다.
하 의원은 “국회의원 3분의 1이 공동 발의한 법안마저 채택되지 않으면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며 “올해 안에 윤창호법을 반드시 통과시켜 국회가 살아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창호법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음주운전 가중처벌의 기준 현행 3회 위반을 2회 위반으로/음주수치 기준을 현행 최저 0.05% 이상~최고 0.2% 이상에서 최저 0.03% 이상~최고 0.13% 이상으로/음주수치별 처벌 내용 강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음주운전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면 현행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살인죄처럼 처벌하도록 함)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친구들과 만나 직접 편지를 전달받으면서 “한국당은 더 이상 음주운전자들에게 (베풀어진) 관용과 관대함이 되돌이킬 수 없는 아까운 생명을 앗아가는 것의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여러분들의 처절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 윤창호법이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의원총회에서 이번에 거룩한 뜻을 받들어서 윤창호법이 꼭 처리될 수 있도록 당론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김 원내대표는 현장에서 2개의 법안 서명란에 직접 도장을 찍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윤창호법에 대해 저희들도 반대하지 않는다. 나도 서명했다. 그런 법안들 정말 민생과 관련된 이런 법안들은 여야가 빨리 좀 처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제안하겠다. 내가 발의자 중에 하나인데 빨리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걱정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당장 한국당은 이날 15시반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문제 관련 규탄대회를 열었다. 국정감사 기간임에도 정부여당에 대한 총공세를 위해 지역 당원들까지 규합했다. 물론 여야는 지난 17일 국감 중에도 본회의를 열어 헌법재판관 의결 절차를 마무리한 적이 있어서 윤창호법 등 여러 무쟁점 안건을 신속 처리하는데 합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야 교섭단체 정당들 간의 특별한 의사일정 합의가 있으려면 ①파괴력있는 쟁점 이슈들이 최소화돼야 하고 ②국민 여론의 압박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가능하다.
일단 ②은 충족됐다. 하지만 ①이 문제다. 예컨대 지난 4월부터 정국을 잡아먹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과 같은 최대 쟁점 이슈가 상존해 있으면 되는 합의도 안 되는 것이다. 당시에도 드루킹 이슈가 모든 뉴스를 빨아들이면서 추가경정예산 심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 했고 결국 뒤늦게 졸속으로 하다가 합의 처리 시한을 초과했던 경험이 있다.
이왕 처리한 김에 다른 법률들도 동시에 처리하자는 패키지 관행도 문제다.
예컨대 8월30일 여야는 원래 합의한대로 당일 본회의에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동시에 처리하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 했다. 전자와 관련 민주당 내 완벽한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못 해 후자부터 의결하자는 분위기가 있었고 한국당이 둘 다 같이 해야한다면서 결국 불발됐다. 3주가 지난 9월20일에 가서야 둘 다 통과됐다.
그런만큼 무엇보다 여야의 의지가 중요한데 이런 측면에서 ②이 얼마나 동력을 얻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유치원 비리 못지 않게 윤창호법이 큰 주목을 받고 있지만 당장 여야가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해당 법률만 통과시킬 정도까지는 아닌 게 현실이다.
관련해서 윤씨 친구들의 호소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예지희씨는 “만약 창호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평소에도 법과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 했던 정의로운 사회를 본인이 만들겠다고 하던 내 친구는 분명 우리처럼 마냥 슬퍼하고 있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윤창호법이 많은 사람들을 살릴 그 날 창호도 옆에서 함께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주연씨는 “윤창호법이 너무 엄격하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강화된 처벌이 걱정되는가? 두려워마라. 술을 먹고 운전만 하지 않는다면 해당되는 사람은 없다. 술을 먹고 운전대를 잡은 그 실수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빼앗겨 버렸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겪어야만 했다”며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닌 살인임을 인식해주길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김민진씨는 “해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며 “우리나라는 자기 의지대로 술을 마셨다 할지라도 범죄 의도 없이 결과를 발생시킨 경우 범죄를 예견하고 술을 마신 사람과는 달리 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밝혀 사법적 현실을 꼬집었다.
즉 “음주운전은 분명 자신의 행위로 인해 어떠한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결과의 발생을 인정해 받아들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행위다. 음주운전 치사사고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중범죄로 인식돼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더 나아가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닌 고의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저희는 앞으로 정기적인 세미나와 토론회를 여는 등의 방법으로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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