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소요 안 되는 사업은 국회 비준 필요없다고 해석, 결국 국회 비준 압박하기 위한 차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남북 협력을 위한 국회의 비준 동의안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 절차를 밟았다.  

문 대통령은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통해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를 비준했다. 모든 안건의 최종 절차인 국무회의 의결을 거쳤으니 이제 관보에 게재되는 방식으로 공포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 일정을 마치고 화요일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사진=청와대)

판문점 선언에 대해 국회 비준동의안을 받으려고 노력했던 정부여당이 법제처의 유권해석과 바른미래당의 판단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제처는 평양 선언의 세부 내용을 나눠서 ①중대한 재정부담이 있는 사업(남북관계발전법 21조 3항)은 국회 비준이 필요하지만 ②나머지 사업은 그렇지 않다고 해석했다. 기본적으로 ②은 재정이 소요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철도·도로 연결 등 인프라 사업은 ①에 해당되지만 이산가족 문제나 여러 협력을 위한 준비 작업 그리고 군사 합의도 ②이라고 판단했다. 

바른미래당은 8일 의원 워크숍을 통해 비준을 Ⓐ정부의 발효 Ⓑ국회의 허가(재정소요 사업에 대한 국회의 동의) 두 단계로 나눴다. 판문점 선언에 대해 정치적 지지 의사를 표시하되 아직 재정 추계가 정확히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의 대상이 아니고 Ⓐ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 남북 교류협력은 준비단계에 한해 경제를 비롯 다방면에서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문재인 정부가 굳이 국무회의 비준 발효를 하지 않아도 현 단계의 교류협력은 얼마든지 추진될 수 있지만 결국 국회의 비준동의를 압박하는 메시지 차원으로 풀이된다. 원내 5당 중 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국회 비준 찬성으로 단일 대오를 구성했고 바른미래당은 당내 이견으로 중간자적 입장이다. 자유한국당은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구체적 재정 추계 두 조건을 내세워서 강력한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비준 조치에 대해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더 쉽게 만들어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위기 요인을 없애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동안 불이익을 받아왔던 접경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먼저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키는 길”이라고 밝혔다.

한국당의 반응은 국회를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문재인 정부의 아전인수격 법 해석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국제사회는 남북관계 발전이 북한 비핵화 속도와 간극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고 미국도 군사 합의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문재인 정부가 굴종적인 대북 정책에 경도돼 국회와의 협치마저 포기하고 불통과 독선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을 개탄하고 향후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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