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검사와 수사팀의 철저한 준비와 호소, 방탄적이지 않은 임민성 판사의 결단, 임종헌의 방탄적 직권남용 피해가기 주장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남용할 직권이 없다던 ‘직권남용죄’에 대한 혐의가 소명됐다고 판단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27일 새벽 2시 발부됐다. 당초 사법농단 관련 증거물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가 90% 기각률을 보여왔던지라 기각 전망이 높았는데 예상을 깨고 발부됐다.

끝내 구속된 임종헌 전 차장은 이날 법정으로 출입할 때 수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묵묵부답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임민성 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및 역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수사의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므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발부 사유를 밝혔다. 사실 증거인멸 우려는 명약관화했지만(차명폰 사용 및 후임 판사 입막음) 혐의 소명이 관건이었다. 

중앙지법에는 5명(박범석·이언학·허경호·명재권·임민성)의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있는데 임 판사는 10월에 새로 영장 업무에 투입됐던 만큼 그나마 비관적인 전망에 한 줄기 다른 판단의 근거가 되기는 했었다. 임 판사는 행정처나 대법원에서 일한 경력이 없었고 방탄을 자행한 3명(박범석·이언학·허경호)과는 달리 제식구 감싸기 전력이 없어 자유로웠다. 

10시반부터 16시20분까지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한동훈 3차장검사) 검사들은 임 판사에게 파워포인트 발표까지 하면서 구속 필요성을 호소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의중대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연시켰던 임 전 차장의 혐의에 대해 설명할 때는 고령인 피해자들의 처지를 거론하다 울컥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임민성 판사와 한동훈 검사가 이번 구속영장 발부를 합작한 장본인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임 전 차장의 6개 죄명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등이고 총 30개의 개별 혐의가 있다. 검찰은 이를 ①청와대와의 재판거래 ②국회의원 재판 관여 ③법관 사찰 ④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자금 조성 등 4가지로 카테고리화 해서 어필했다.

임 전 차장은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 대부분에 대해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사법 행정권의 일탈 차원이라 징계 또는 탄핵 대상이 되거나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는 있어도 직권남용죄의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는 식으로 항변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임 전 차장은 ①에 대해 청와대의 법조 커넥션이 약해서(청와대가 사법부에 이야기할 연결통로가 부족하다는 차원의 ‘손발이 없음’ 표현) 도와줬고 개입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판사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②은 민원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는 식으로 ④은 기획재정부도 다 알고 예산을 허용했다며 대응했다. 

구체적으로 여러 직권남용 혐의가 많은데 후임에게 의무없는 일을 시킨 것 아니냐는 점에 대해 지시를 받은 판사의 직무 범위에 있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졌다. 

임 전 차장은 2006년 권성 전 헌법재판관이 헌법소원 평결을 통해 직권남용이라는 무기가 정권교체 초기에 오남용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까지 들먹이며 검찰의 무리수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의 여러 팩트 폭력들에 부인하기는 어려웠는지 유죄 가능성이 있어도 불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강조하기도 했다.

16일 서울중앙지검에 재출석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팔을 들어 뿌리치고 있는 임 전 차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동훈 검사는 4개월간 사법농단 수사를 총괄해오면서 최초로 인신구속 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박병대·고영한·차한성 전 대법관 3인방에 대한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양 전 원장을 직접 겨누기 위한 밑그림을 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4인방은 임 전 차장의 영장 청구서에서 공범으로 적시됐다. 수사팀은 임 전 차장의 USB와 더불어 이규진 전 실장(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실장)의 업무수첩 이 두 개의 유력 증거를 기반으로 윗선에 대한 혐의를 규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이 전 실장의 수첩에는 △윗선의 직접 지시 내용 △실무진에게 전달한 지시 내용 △주요 회의 내용 등이 정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남용할 직권 자체를 매우 협소하게 해석해왔던 법원의 방탄적 시각이 이번 임 전 차장의 사례에서 전환된 것이 상당히 고무적이다. 사법농단 혐의자들의 대부분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이 행정처에서 기조실장과 차장으로 재임했을 때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마찬가지로 직권남용을 저지른 의혹을 받고 있다. 명재권 부장판사는 9월30일 고 전 대법관의 자택, 박 전 대법관의 로펌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바 있는 만큼 어느정도 혐의 소명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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