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범 교수(자료사진)
이윤범 교수(자료사진)

[중앙뉴스=이윤범 칼럼니스트]며칠 전 예전에 저장해놨던 사진첩을 정리 하면서 요즘의 베트남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베트남 지엠 정부의 불교탄압을 견디다 못한 스님(틱꽝득)이 소신봉양을 발표하고 수많은 스님과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분신자살을 했던 사진이다.

사진에는 1963년 6월 11일 아침 사이공 도심 한복판에 앉아있는 스님 뒤에서 젊은 스님이 휘발유 통을 머리에 붓고 있었다. 이윽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그는 앞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신체 특성상 몸에 불이 붙으면 배가 먼저 수축하여 앞으로 쓰러지게 되어 있는데, 뒤로 넘어져야 투쟁이 성공할 거라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 후 지엠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여 암살당해 생을 마감하였고, 결국에는 그 정권도 붕괴되었다.

역사적으로 베트남은 전쟁과 저항의 연속이었다. 천년 이상이나 중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주권과 정체성을 지키려고 발버둥 쳤고,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후 봉건왕조시대에도 중국과 전쟁 그리고 저항을 수없이 치러야만 했다. 그 후 프랑스와 독립전쟁, 미국과 통일 전쟁을 감당해야만 했다. 베트남인들은 수많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인해 질 수 밖에 없었고 그만큼 저항의식도 강해졌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지역과 권력을 기반으로 분할 통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하자 원주민 지주들과 결탁하여 길게 뻗은 국토를 삼등분하여 통치하였다. 목적은 국민들의 저항의지를 분산시켜 통치를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호찌민은 스탈린의 1인 권력집중 현상을 보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였다. 그 후 20여 명의 공산당 정치국원들이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하는 체제가 자리 잡았다. 또한 공산당 서기장, 국가주석, 총리가 정치, 경제, 외교, 국방과 지역을 분리하여 분담통치하는 방식으로 현재까지 통치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지난 9월 21일 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서거 2일 전까지 중국 방문단을 접견하는 등 자신의 책무에 헌신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숙연해하기도 했다. 베트남의 국가주석은 국가수반이기 때문에 그의 공백은 국가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다. 지역과 권력을 분할하여 통치하고 있는 베트남의 전통 때문에 당연히 새로운 국가주석을 선출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베트남에서 그 어느 한사람이 2개 이상 직책을 갖는 것은 역사적으로 호찌민 주석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속하게도 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응우엔푸쫑)의 겸직이 발표되었다. 이미 공산당 권력서열 1위인 그는 국가주석의 권한인 외교뿐만 아니라 국방의 핵심인 군통수권과 총리 임명권까지 차지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되었다. 평소 쫑 서기장이 국가권력의 집중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겸직은 더욱 놀라웠다.

베트남 북부 하노이 출신인 쫑 서기장은 베트남 공산당에서 대표적인 사회주의 이론가로 평가 받는다. 그는 하노이 종합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옛 소련 사회과학원에서 유학한 뒤 정치국원과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공산당 고위급의 연령을 크게 고려하는 공산당의 전례에 비춰 이례적으로 2011년 65세의 나이에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2016년에도 특별 후보자 방식으로 예외를 인정받아 71세에 연임에 성공하였다. 1986년 베트남의 개혁이 이루어진 이후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베트남을 연구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겸직을 보면서 중국을 닮아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얼마 전 비슷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연임제한을 철폐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한 동안 고위급들의 임기제를 유지하다가 시주석의 임기무제한 결정을 보고 다시 모택동 시대로 회귀하는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편 베트남 정치의 관례로 보는 측면도 있다. 베트남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국회의원의 결원이 생길 때 재선거나 보궐선거가 없다. 그냥 그 인원으로 5년의 임기를 마친다. 베트남에서는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대사를 결정하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2021년 당 대회를 주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독립과 통일을 위해 국민의 저항의식을 강조하였고, 공산당의 확고한 존립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부흥을 강력히 추진하는 베트남 통치자들의 고민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이윤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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