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책의 원칙주의가 극우로 가는 법, 당내 민주주의와 소신 정치를 이상한 방향으로 주창.
정두언이 주는 쓰지만 필요한 약, 극우적 집토끼가 아닌 외연확장, 변화할줄 아는 용기, 변화하지 않는 한국당 “종쳤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불을 끄기 위해 소방수로 소환된 전원책 변호사는 예상치 못 한 극우적 관점을 표방하고 있다. 국정농단과 탄핵을 거치고 두 번의 선거에서 참패했을 뿐만 아니라 지지율 10%대를 맴돌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오히려 혁신보다는 뭉치자는 말만 무성하다. 

전 변호사는 10월초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외부위원으로 선임됐다. 일개 위원에 불과하지만 사실상 조강특위의 전권을 넘겨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겨우 올단두대를 실천할 기회를 잡은 전원책 변호사가 예상치 못 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겨우 올단두대를 실천할 기회를 잡은 전원책 변호사가 예상치 못 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15일 조강특위 외부위원 4인(전원책·강성주·이진곤·전주혜)은 입장문을 내고 “전권을 가졌던 2012년 비상대책위원회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주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이념과 동떨어진 새누리당이라는 정체불명의 당명으로 바꾸고 보수를 버려야 한다면서 빨간 색깔로 당색을 바꾸었을 때 한국당은 침몰하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정당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왜 그때 아무도 저항하지 못 했는가. 명망가 정치와 보스 정치에 매몰돼 당내 민주주의와 동떨어진 충성 경쟁을 벌일 때 한국당은 무너졌다. 권력을 재창출한 뒤에는 다들 대통령의 눈치를 보거나 아부하기에 바빴다. 뒤편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탓했다. 마침내 절대 권력이 무너지자 그를 공격하는 세력에 동조하기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전 위원이 한국당의 십고초려 끝에 영입된 이유는 “올 단두대”로 대변되는 그의 강력한 원칙주의자적 면모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당의 혁신을 위해서는 인적 청산이 불가피한데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김용태 사무총장은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전 위원이라고 봤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입장에서 워낙 인적 청산을 단행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전 변호사를 영입했지만 이후 펼쳐진 상황을 보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병준 비대위원장 입장에서 워낙 인적 청산을 단행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전 변호사를 영입했지만 이후 펼쳐진 상황을 보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4가지 키워드가 있다.

①인적 청산
②당내 민주주의
③소신없는 행보
④새로운 가치

전 위원은 선임되자마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사법적 단죄’의 절차적 문제점에 천착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필요했다면서도 졸속으로 탄핵이 이뤄졌고 사법적 방어권이 보장되지 못 했다는 취지다. 이후 던져놓은 메시지가 경제민주화를 택한 한국당의 행보를 패착이라고 규정한 내용이다. 

전 위원은 대중에게 알려진지 15년 동안 지속적으로 “보스(명망가) 정치”, “패거리 정치”, “계파 정치”를 비판했고 “이념과 철학”으로 정당을 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①과 ②에 해당하는 이야기지만 정확히 말하면 전 위원은 공천과 권력을 무기로 ②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올인해왔다.

전 위원은 2012년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②을 깔아뭉개고 경제민주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고 규정했고 그 당시 많은 내부자들이 ③에 따라 보스를 쫓았다가 한국당이 망했다고 보고 있다. 2016년 말 이후 국정농단 정국에서는 자기 생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을 공격한 비박계에 대해 ③ 차원으로 지적하는 것이고 이 맥락에서 탄핵의 절차적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당이 태극기 부대를 주축으로 의존하는 상황을 꼬집은 정두언 전 의원. (캡처사진=MBN)

정두언 전 의원은 22일 방송된 MBN <판도라>에서 “경제민주화가 한국당 폭망의 시작이라고 말한 게 결정적이다. 경제민주화는 헌법에 나와 있는 헌법적 가치다. 그것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됐고 물론 집권 이후에 그걸 실천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한국당과 새누리당이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그렇게 해가지고 많은 지지를 얻고 성공도 했다. 이제와서 그걸(경제민주화적 노선) 짤라버리자. 다시 들어오고 싶은 사람(개혁 보수와 중도세력)을 못 들어오게 막는 꼴이 된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전 위원은 경제민주화 가치를 과감하게 차용한 게 잘못됐고 이를 막지 못 한 점이 ②③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만 내세웠지 집권 이후 실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지만 전 위원은 집권 기간 내내 경제민주화적 잘못된 국정 운영이 있었고 이게 ②③ 때문에 견제되지 못 했다고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정작 한국당의 변화를 위해서는 ①④이 중요하다.

정 전 의원은 “(최근 들어 한국당에) 태극기 부대 입당이 왜 늘고 있느냐. 특정 후보(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특정 종교(개신교)를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인이 거기에 대해 특정 종교를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동원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태극기 부대가 입당한다는 말 자체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당의 주축 세력이 태극기 부대다. 한국당이 10%대 박스권에 묶여있는데 그 이유가 태극기 세력이 주축이기 때문이다. 그 세력이 더 보강되는 것이지 새로운 세력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당이 지지율을 올리려면 떠나간 건전한 보수와 중도를 끌어들이려고 내부를 정리하면서 영입하려고 해야하는데. 태극기 부대가 계속 보강돼가지고 한국당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겠는가”라며 문제점을 짚었다.

전 위원은 ①에 대해 별 고민이 없어 보이고 15일 방송된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박 전 대통령을 비호하고 석방하라고 요구하는 그 시위 세력(태극기 부대)도 있다. 그분들을 흔히 말해 극우라고 하는데 극우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던 그룹들이다. 그분들은 그러면 우리 보수 세력에서 앞으로 제외할 것이냐 그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전 위원은 박 전 대통령의 실정을 가장 많이 비판했다는 걸 인트로로 전제하고 탄핵 절차의 부당함을 지적해왔는데 사실상 저 발언을 통해 친박적 행보를 보였다고 밖에 볼 수 없고 그 배경에는 보수 단일대오라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 ① 보다는 보수 대통합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④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보수의 변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행보를 막지 못 했고 변화해서 망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캡처사진=MBN)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통해 한국당에 각성을 촉구한 정 전 의원. (캡처사진=MBN)

정 전 의원은 2017년 7월27일 방송된 <판도라>에서 “류석춘씨(연세대 교수로 극우적 성향)가 한국당의 혁신위원장이 됨으로써 한국당의 혁신은 종쳤다”고 주장했다. 

류 전 위원장이 7월21일 연합뉴스 TV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분들의 잘잘못을 따지겠다. 당이란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 격려해야 하는데 탄핵 당시 새누리당은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웠다. 이런 건 가만히 놔둘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정 전 의원은 영국의 보수당(Conservative Party/1678년에 창당한 토리당이 뿌리)이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에 3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정 전 의원은 “한나라당이 가장 오래된 당명을 지탱한 정당이다(1997년~2012년). 그럴 정도로 우리나라 정당은 수시로 당명을 바꿨는데. 영국 보수당은 300년 명맥을 유지했다. 원래 보수당은 귀족과 지주계급의 정당이었다”고 운을 뗐다.

184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이 끝나고 영국은 유럽으로 흡수됐고 유럽 각지의 밀이 영국으로 수입됐다. 밀값이 폭락하고 지주계급의 수익이 줄어들자 보수당은 관세를 올렸다. 그러면 중소상공인과 노동자들 입장에서 물가가 오르니까 어려워진다. 그때 보수당의 로버트 필 수상은 과감하게 관세를 철폐했다. 지지층인 지주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필 수상의 결정이 일시적으로는 정치적 손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넒은 확장성을 위해 변화의 첫 발을 뗀 측면이 있다.

(캡처사진=MBN)
20세기 초반 시대적 흐름이 바뀌자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친 영국 보수당의 지도자. (캡처사진=MBN)

이후 20세기 초 프롤레탈리아와 부르주아 즉 노사 갈등이 극에 달했다. 칼 맑스의 사상이 횡행하던 때였는데 이때 보수당의 지도자인 벤자민 디즈레일리와 스탠리 볼드윈은 선제적으로 노동 개혁을 단행한다. 노동법을 개정하고 “우리는 노동자 계급”이라는 슬로건을 내걸 기세로 시대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안정감 있는 보수의 이미지로 영국 보수당은 20세기 내내 장기집권을 하게 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노동당이 장기집권을 했을 때 보수당은 다시 한 번 대변화를 모색한다. 보수당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기후변화 협약 등 환경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입장을 전환한다. 사회 변화에 따른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한 결과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은 2010년 13년 만에 총리직에 올랐다.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보수당의 젊은 지도자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보수당의 젊은 지도자로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 전 의원은 이에 반해 한국의 보수 정당은 “한나라당 시절부터 그 전까지 가진 자의 정당 기득권자의 정당 대기업을 옹호하는 정당. 이렇게 이미지가 박혀있다. 억울한 면도 있는데 실은 또 억울하지도 않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지난 대선(2012년)에 경제민주화 한다고 해서 표를 왕창 얻어서 집권하는데 도움이 됐는데 집권하고 나서 입 딱 씻었다. 그러니까 그런 이미지가 쌓여만 가는 거다. 이럴 때 훨씬 더 전향적으로 복지 수요가 늘어나고 재원이 없으니 증세해야 하는 게 맞다. 고통스럽지만 여야 합의로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얘기만 하면 (세금폭탄이니) 부정적으로 나오고. 초 대기업한테 법인세를 올리자고 하니까 반대하고 뭐 이런 식으로 꼭 가진 자의 편을 드는 입장에 선다. 그렇게 비춰진다. 그래가지고 젊은 층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데) 성공할 수 없다”고 고언했다. 

새로운 인물군에 대해서도 “얼굴이라고 하는 분들 지도자라고 하는 분들 이미지가 강경 우파(홍준표·김무성·황교안 등)의 이런 이미지다. 그런 이미지를 내세워서 어떻게 국민들 시선을 돌릴 수 있겠는가. 영국의 보수당에는 중진이 없겠는가 거기에도 다 계보가 있겠지 왜 없겠는가. 그런데 30대 후반의 윌리엄 헤이그를 당대표로 내세우고(보수당이 1997년 총선 패배 직후 토니 블레어에 맞서기 위해 젊은 당대표 추대) 30대 후반 캐머런을 당수로 내세우고(2005년) 그렇게 해서 전체가 살아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위계질서가 있어가지고 중진 따지고 앉아있고 다 그러고 있어가지고 어느 세월에 젊은 지도자를 키우겠는가”라고 꼬집었다.

한국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되기 전 김성태 원내대표가 이때 출연해서 변화를 약속했지만 현재 한국당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캡처사진=MBN)
한국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되기 전 김성태 원내대표가 이때 출연해서 '이제는 야당이어야 한다'는 소책자를 내보이면서까지 변화를 약속했지만 현재 한국당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캡처사진=MBN)

당시 같이 출연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정 전 의원이 지적한 이 내용은 저희들이 금과옥조로 삼을만한 좋은 얘기를 해줬다. 사회적 취약계층과 노동계층은 이걸 민주당의 전유물처럼 둬서는 안 된다.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거꾸로 민주당이 기업 걱정을 하고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를 걱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당은 아직도 야당이 됐는데도 되려 여당 시절 생각을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 초재선 중심으로 변화의 물결을 만들기 위해 아주 작게 들리지만 (개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한국당의 현실은 김 원내대표의 발언과 달리 거꾸로 가고 있다.   

올 단두대 전 위원의 머릿 속에 들어 있는 보수진영에 대한 밑그림이 어떻게 구현될지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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