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경제구조 전환을 위해 소득주도성장 지속 의지, 전환의 계곡을 당부하면서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극복, 확장적 예산 4개 항목, 한반도 평화에 국회의 협조 호소, 권력기관 개혁을 위한 국회의 입법 당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35분의 연설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함께”였다. “잘” 사는 것은 어느정도 이뤄냈지만 결국 함께에서 많이 부족했고 그런만큼 대다수 국민들의 삶이 팍팍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거시경제는 좋은데 민생은 고통스럽게 된 현상은 비단 문재인 정부만의 이야기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경제구조에 드리워진 그림자다.

문 대통령은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9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제출>에 대한 시정연설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포용 국가, 즉 함께 잘 사는 국가를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포용 국가, 즉 함께 잘 사는 국가를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연설의 틀은 4가지로 이뤄졌다.

①함께 잘 사는 ‘포용 국가’에 대한 철학
➁확장적 재정정책 
➂권력기관 개혁
➃한반도 평화 정책

먼저 ①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다.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이 거세게 공격하고 있는 대목이고 논란도 많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이룩한 외형적인 성과와 규모에도 불구하고 다수 서민의 삶은 여전히 힘겹기만 한 것이 현실”이라며 “커져가는 양극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 했다. 기존의 성장 방식을 답습한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고 더 공정하고 통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기조를 약화시키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소수 수출 대기업 위주의 고도 성장을 추구하던 방식에서 체질 전환을 이뤄 아래로부터 경제 구조가 뒷받침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 “우리는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2018년 수출 6000억달러 달성 임박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의 국가치고 나쁘지 않은 거시 경제성장률 기록 등 이런 걸 성취해봤자 대다수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영광일 뿐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보는 여야 국회의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구체적 경제정책 기조로 보면 ‘함께’에는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가 있고 ‘잘 사는 것’에는 △혁신성장이 있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표현했다.

“사회안전망과 복지 안에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나라가 돼야 한다. 국민 단 한명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가 돼야 한다. 그것이 함께 잘 사는 포용 국가다. 포용적 사회, 포용적 성장, 포용적 번영, 포용적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배제하지 않는 포용이 우리 사회의 가치와 철학이 될 때 우리는 함께 잘 살게 될 것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1년반 동안 이런 철학을 갖고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체감상 “먹고 살만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 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민생의 고통은 여전했기 때문에 야당의 비판에도 속 시원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해 고착화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수반되는 고통의 시간이라고 항변했다. 지난 9월4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본회의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미국의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가 주창한 ‘전환의 계곡(valley of transition)’을 언급한 바 있다. 고통의 계곡을 넘어야 포용적 국가로 갈 수 있다는 취지인데 문 대통령도 이 점을 역설했다.

“새롭게 경제 기조를 바꿔가는 과정에서 소상공인, 자영업자, 고령층 등 힘겨운 분들도 생겼다. 그러나 함께 잘 살자는 우리의 노력과 정책 기조는 계속돼야 한다. 거시 경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정책 기조 전환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보완적인 노력을 더 강화하겠다. 저성장과 고용없는 성장,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 저출산 고령화, 산업구조의 변화 같은 구조적인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우리 경제 체질과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물은 웅덩이를 채우고 나서야 바다로 흘러가는 법이다. 전환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함께 이겨내겠다.” 

‘경제는 심리’라고 하는데 대다수 서민들이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는 가시적 시그널을 보여주지 않고 마냥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다. 웅덩이를 다 채우고 바다로 나가기 전에 문재인 정부가 바다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작은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그게 복지 ‘효능감’이다.

한국당 의원들과도 반갑게 악수하고 인사하는 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당 의원들과도 반갑게 악수하고 인사하는 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➁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천명했고 이것이 어떻게 국민 체감도로 다가올 수 있을지 풀어냈다. 

이를테면 “2019년도 예산안은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예산이고 포용 국가를 향한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런 국가가 지금 내 삶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실감나지 않을 수 있다. 몇 천억원, 몇 십조원 하는 예산상의 숫자만으로 와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실제 국가가 복지 정책에 쏟은 예산이 개개인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오는지 설명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4인 가족을 예로 들어 아래와 같은 복지 정책을 일일이 설명했다. 

△출산 여성에게 지급될 출산 급여 확대 △산모에게 제공되는 산후조리 서비스 △출산한 아내의 남편이 누리게 될 10일의 유급(250만원 상한액) 출산 휴가 △아동수당 월 10만원 △최저 1.2%의 금리로 30년 분할 상환하는 신혼부부 임대주택과 신혼희망타운 △젊은 부부의 목돈 마련을 위한 청년내일채움공제 △취업을 도울 노동자 내일배움카드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매달 기초연금 25만원 지급 △사회서비스형 어르신 일자리 사업

2019년도 국가 예산 총액은 470조 5000억원으로 2018년 대비 9.7% 증액됐다. 

증액한 배경을 두고 문 대통령은 어려운 대내외 환경을 들었다. 

“2009년도 예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예산안이다. 우리는 2017년에 3% 대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올해 다시 2% 대로 돌아갔다. 여러 해 전부터 시작된 2% 대 저성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외 여건도 좋지 않다. 미중 무역 분쟁, 보호무역주의 확산,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세계 경기가 내리막으로 꺾이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큰 우리 경제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전통 주력산업인 제조업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고 고용의 어려움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라며 “2017년과 올해 2년 연속 초과 세수가 20조원이 넘었는데 적극적인 재정 운용을 통해 경기 둔화의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일자리,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를 가장 최일선에서 비판하고 있는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는 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정부를 가장 최일선에서 비판하고 있는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는 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 대통령은 국채를 발행해 확장적 재정정책에 투입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겠다며 “국가 채무 비율을 높이지 않고 재정이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예산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확장적 재정정책의 각론에 들어가보면 이렇게 분류된다.

Ⓐ일자리 예산을 2018년 보다 22% 증액한 23조5000억원 책정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연구개발 예산 20조4000억원 책정 등 혁신성장 예산 증액
Ⓒ가계소득을 높이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예산 대폭 증액
Ⓓ삶의 질 향상과 안전 관련 예산 증액

문 대통령은 쌀 직불금과 관련해서 “정부는 우선 현행 기준으로 목표 가격안을 제출할 수밖에 없다. 농업인들의 소득 안정을 위해 목표 가격에 물가상승률이 반영되기를 바란다. 이와 함께 공익형으로 직불제를 개편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역시 문재인 정부가 자신있는 분야는 누가 뭐래도 한반도 평화 정책이다. ➃은 문 대통령의 역점 사업이다. 물론 한국당은 매우 비협조적이다. 결국 국회의 협력없이 온전히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이뤄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문 대통령은 이렇게 호소했다.

“전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는 이때 우리 스스로 우리를 더 존중하자는 간곡한 요청 말씀을 드린다.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가 북한과 함께 노력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국회가 꼭 함께 해주길 부탁한다. 우리에게 기적같이 찾아온 이 기회를 반드시 살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기 바란다. 우리가 이 기회를 놓친다면 한반도의 위기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노심초사에 마음을 함께 해달라. 남북국회회담도 성공적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 정부로서도 모든 지원을 다 할 것이다.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에 정부와 국회,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에 강공 드라이브를 펼치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이지만 문 대통령이 입장할 때는 기립해서 맞이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정부에 강공 드라이브를 펼치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이지만 문 대통령이 입장할 때는 기립해서 맞이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동시에 문 대통령은 야당의 안보 불안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튼튼한 안보와 강한 국방으로 평화를 만들어 가겠다. 국방 예산을 올해보다 8.2% 증액했다”고 강조했다.

즉 “한국형 3축(킬체인·KAMD·KMPR) 체계 등 핵심 전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국방 연구개발 예산을 늘려 자주국방 능력을 높여나가고자 한다”는 설명이다.

➂에 대해 문 대통령은 “권력기관 정상화를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정부는 역사상 최초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국회에서 매듭을 지어주기 바란다.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법안도 하루 속히 처리해 주길 바란다. 국정원은 국내 정보를 폐지하는 등 스스로의 노력으로 개혁을 추진해 왔다. 국회가 국정원법 개정을 마무리해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며 국회의 입법적 뒷받침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함께 잘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함께 잘 살 수 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포용 국가를 향한 국민의 희망이 이곳 국회에서부터 피어오르길 바라마지 않는다”며 연설을 마쳤는데 연말 내내 정치권을 강타할 여야 예산안 전쟁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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