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개특위위원장으로서 기자간담회, 정수 증원에 부정적일 거라는 국민 여론 악용, 밥값하는 국회의원은 원해, 책임있는 정치, 뒷줄에 피해있어, 개헌과 분리해야, 공론화 방식, 정치관계법 발의, 선거제도 개혁의 대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다들 맞바람 피해서 뒷줄에 앉아있는 그런 자세로는 안 된다. 국민들 앞에 칼바람을 함께 맞을 각오가 돼야 함께 맞을 때만이 선거제도 개혁이 가능하다.”

이미 상당한 논의가 진행된 마당이라 현 단계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국회의원 ‘정수 증원’에 대한 모델을 내놓는 것이다. 하지만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은 조용하다.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정의당)은 7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알다시피 정치권의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다들 먼 산 바라보고 딴청피우고 있다. 모두가 맞바람 피해서 서로 등 뒤만 찾고있을 때가 아니다. 국민이 주권을 위임받는 절차가 왜곡돼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과 다름없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의 왜곡된 첫 단추를 다시 바로 잡는 일”이라고 밝혔다. 

정의당은 심상정 위원장이 첫 국회직을 맡은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의당은 심상정 위원장이 첫 국회직을 맡은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뭔가 몸을 사리는 양당의 모양새를 강조한 배경은 뭘까.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원 비중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역구 의원수를 줄이는 방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자기 지역구의 소멸을 바라는 현역 의원들은 없으니까 전체 정수를 늘리자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미 문희상 국회의장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증원론을 설파했다. 이런 거다. 현행 253명(지역구) 대 47명(비례대표)에서 200명 대 100명 수준으로 조정하려면 무려 53개의 지역구가 사라진다. 그래서 253명의 절반인 127명으로 비례대표 정수를 맞추기 위해 현행보다 80명을 늘리는 방안이 제시됐다.  

정의당은 360명을 늘리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대국민 신뢰도 최악의 국회가 자칫하면 밥그릇 사수로 비춰질 위험이 있어서 이러한 제안은 사실 조심스럽다. 그래서 소수정당인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총 예산을 동결한 채로 증원하는 안으로 첫 테이프를 끊었고 이를 양당이 받아주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러지 않아서 우려스러운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5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초월회(5당 대표와 국회의장 월례 회동) 모임에 참석해 “정작 한국당과 민주당에서 의석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책임있는 얘기를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정개특위 안에서도 그 눈치를 계속 보게 될 거라고 본다. 이제는 이 정도까지 왔으면 현실적인 방안을 큰 당에서 떳떳하고 용기있게 얘기해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다”고 강조했다.

심 위원장도 “니들 하는 게 뭐 있는데 또 늘리냐고 한다. 국민들의 반응이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밥값 잘 하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국민들도) 지지한다. 밥값 잘 하는 국회의원을 많이 만드는 개혁을 가로막는 방패막이로 이 논리가 이용되는 것은 안 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민심 왜곡 300석이냐 민심 그대로 360석이냐 국민들께 그걸 잘 설득해나가자”고 제안했다. 

이날 오후 열린 정개특위 회의.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오후 열린 정개특위 회의. (사진=박효영 기자)

하지만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이날 오후 열린 정개특위 3차 회의에서 “의석수 늘리는 게 우리 국민 정서와 맞는가. 전체 예산을 동결하고 정수를 늘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총액을 동결해도 좀 있으면 슬그머니 올라간다. 결국 국회 전체 의석을 늘리기 위해서는 현재 300석을 일정 부분 지역구을 줄이고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느정도 늘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의 논리는 합리적이지만 과연 현역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의 소멸을 용인하면서까지 선거제도 개혁에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인 게 사실이다.  

심 위원장은 “내가 위원장이 된 이후 첫 번째 질문이 되겠어? 이 얘기를 들었다. 국민 불신이 이렇게 큰데 되겠어? 이런 말씀이다. 나는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오히려 이런 국민의 불신을 역이용해서 그걸 선거제도 개혁이나 정치개혁을 하지 않는 방패막으로 역이용하는 분들도 있다. 국민 불신을 기득권 정치 유지의 방패막으로 삼는 그런 태도를 국민들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어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동시 결단을 통해서 선거제도 개혁을 성공시켜 놓겠다. 이 파서블(가능성)은 민주당과 한국당의 동시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3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이미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했다”며 “적절한 시점에 양당의 동시 결단을 요구하는 타협안을 제시할 생각”이라고 공언했다.

정의당은 원내 발군의 협상 실력자인데 예컨대 6.13 지방선거 이전 개헌 정국에서 ‘총리추천제’로 양당을 합의점으로 가깝게 오도록 했고, 국회 특수활동비를 선제적으로 수령 거부해 실제 특활비 폐지의 신호탄으로 작용하도록 했고, 최근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한국당에 강원랜드도 포함시키자고 역제안해서 판을 흔들었었다. 

이처럼 선거제도 정국에서도 심 위원장이 중재 카드를 던져 실제 양당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심 위원장은 타협안을 마련해서 “정개특위 위원장으로서 제시해서 양당의 동시 결단을 촉구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기자간담회에 많은 기자들이 참석했고 50분간 다소 길게 진행됐을 만큼 질문이 많이 나왔다. (사진=박효영 기자)

사실 동상 112몽이라고 의원들 각자 처한 조건에 따라 선거제도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르다. 당 지도부의 입장 못지 않게 의원들 개개인의 바텀업 방식의 논의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동시에 투트랙으로 갈 필요가 있다. 정개특위 위주로 의원들의 여론을 모으면서 각 당 지도부의 대타협을 도모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 위원장은 “물론 정개특위가 결정 권한을 갖는 특위이기는 하지만 정치 협상이 병행돼야 하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하고 구체적인 협상안을 가지고 정개특위와 정치 협상을 병행해갈 수 있도록 그렇게 서두를 생각”이라고 밝혔다. 

선거제도 개혁을 해야하는 당위는 차고 넘친다. 

심 위원장은 “양당의 대결 정치 구조 하에서는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성공적일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양당의 대결 정치는 국민들의 삶이 나아질 수 없고 성공하는 정부를 만들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비전과 정책으로 구성되는 그런 정당들이 연대 정치를 할 수 있는 제도화 된 구조 속에서 의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지 않나 싶다. 이런 방향이 국민 다수의 뜻이라고 믿고 있다. 왜곡된 주권 위임 절차를 바로잡는 일에서부터 다원적인 정당 정치와 연합 정치를 제도화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당위를 헌법적 민주주의 가치로 절대적 승격을 시켜놓은채 각 당의 이해관계는 최대한 아래에 놓고 지양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심 위원장은 “정치개혁은 2인3각 경기와 같다. 여야 누가 이기고 지고 암만 주판알을 튕겨도 그래서 이 선거제도 개혁이 마치 승패 게임처럼 이해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이건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으로 많이 부각시켜줬으면 좋겠다. 2인3각 경기는 한 사람 엎어지면 다 엎어지고 결국 우리 정치가 갈 길을 잃어버린다. 지금은 서로의 발을 단단히 묶어서 국민들의 칼바람 앞에 겸허하게 나서는 그런 시간”이라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개특위 관련 향후 자주 기자간담회를 열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심 위원장 본인부터 그런 의지를 다지는 차원에서 “냉전 당시에 달 착륙을 다룬 영화 <퍼스트맨>을 보면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왜 달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 일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자세로 임하겠다. 12월31일까지가 1차 시한이기 때문에 그 전에 최대한 타협안을 도출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재차 공언했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이 연동돼서 굴러갈 위험성도 상존한다. 합의하기 힘겨운 개헌 협상 결렬에 따라 선거제도 개혁 역시 멀어질까봐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둘의 분리를 요구해왔는데. 

한국당 정개특위 간사를 맡은 정유섭 의원은 이날 3차 회의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대통령제를 도입한 나라는 비례대표제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다. 2015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하고 도입 실패된 독일식 다른 나라 여러 방식이 있는데. 독일식의 방식을 특위에 첨부해서 내놨다. 독일식을 택한 이유가 뭔가. 우리와 여러 여건이 다르다. 거기는 내각 책임제. 연방제다. 지역 특색이 확실하다. 도리어 우리와 비슷한 대통령제를 채택한 중앙 집권적인 그런 나라의 제도가 아니다. 선관위에서 (2015년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그런 이유가 있는가. 내각책임제 국가에서 비례성을 강화하고 연동형을 하는 게 맞지. 대통령제를 유지하자면 연동형과 중대선거구제로 가는 게 맞느냐는 그런 논점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선거구제 개편하려면 개헌 문제와 내각제냐 대통령제냐가 같이 다뤄져야 하는 거다. 그런 문제제기를 해보는 거다.”

집권하고 있는 민주당이 분권형 개헌에 당장 합의해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민주당은 국민 여론을 내세워 현행 대통령제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분권형 개헌을 하자고 야당이 압박하면 결국 선거제도 협상에도 불똥이 튀어 둘 다 날라갈 수 있다.

심 위원장은 “국회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선거제도 보다 더 큰 개헌을 얘기하는 것은 개헌 정치로만 끝날 수도 있다. 그래서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연동하려는 것에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제 싹 정리가 됐다. 개별 의원들은 얘기를 하고 있지만 각 정당의 책임있는 분들이 선거제도에 집중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며 명확히 분리론이 지배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심 위원장은 차분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으로 정개특위의 결과가 성공적이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심 위원장은 차분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으로 정개특위의 결과가 성공적이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심 위원장은 선거제도 외에 여러 정치개혁 사안들과 관련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주요 입법을 감행했다.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 △선거 공영제(후보 기탁금 대폭 인하 등) △선거운동의 자유 확대(말과 전화로 하는 선거운동 상시 허용) △현역 의원·원외 인사·정치 신인 간의 공정한 경쟁 보장(예비 후보 기간을 1년 확대해 원외 인사도 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한편, 이날 국민 여론을 모으는 방식에 대해서도 몇 가지 방안이 발표됐다. 

심 위원장은 “정개특위 산하에 국회 공론화 TF를 구성했다”며 원혜영 의원(민주당)을 위원장으로 위원 구성은 정양석(한국당), 이철희(민주당), 김학용(한국당), 김동철(바른미래당) 등 4명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개특위 산하에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각 방송사에 선거제도와 정치제도 개혁에 대한 토론회 개최를 요구하기로 했다. 

심 위원장은 “여당도 그렇고 야당도 그렇고 지금 2019년도 예산안 문제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어서 정개특위에 아직 시선을 모으지 못 하고 있다”며 “핫한 현안에 밀리지 않도록 기자들의 성원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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