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칼럼니스트(자료사진)
전대열 칼럼니스트

[중앙뉴스=전대열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김형석은 유명한 이름이다. 그는 철학자이면서도 글쓰기에 남다른 재치가 있어서 물 흐르듯 유려한 글 솜씨에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잘 팔리는 책을 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김형석은 수십 년을 두고 꾸준히 팔려오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도, 늙은이도 모두 아는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그의 책은 사색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가 될 만큼 가벼우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점이 크다.

어떤 책은 스테디셀러가 되어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아오지만 또 다른 책은 내기만 하면 무조건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출판사로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저자로 이름이 올라 있다. 책 인세만으로도 퍽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근자에 그가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 바에 의하면 지금 백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연과 원고료로 상당한 수입이 있으며 그동안 여러 군데서 상을 주고 두둑한 상금을 줘 제자들에게 좋은 용처를 찾도록 했다는 훈훈한 얘기도 나왔다. 수입이 있으니 반드시 세금을 내도록 세무사가 정리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가 금년으로 99세다.

이제 달력 두 장만 벗겨내면 문자 그대로 백세인생이 된다. 백세인생이라는 아주 평범한 노래가 대히트를 친 한 해이기도 하지만 김형석의 백년은 개인으로는 영광이요 행운이지만 많은 국민들에게는 부러움이요 희망으로 떠올랐다. 60~65세가 되면 대부분 은퇴한다. 그 전에 그만두는 것을 희망퇴직이라고 하는데 본인의 뜻보다는 직장 분위기가 나가줬으면 하는 기운이 감돌아 스스로 용단을 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백세가 된 사람이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고 신문잡지에 글을 쓰며 간혹 방송에도 출현하고 있으니 만인이 모두 올려다보며 “나도 저렇게 건강하고 잘났으면”하는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나 역시 팔십이 되도록 김형석교수를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일부러 강연장을 찾아다니지 않는 성격 탓도 있지만 책과 글로 충분히 접한 분이기에 구태여 만날 기회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1월7일 4.19포럼(대표 박강수)에서 그를 초청하여 4.19도서관강당에서 ‘4.19정신과 우리의 각오’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넓은 강당을 꽉 채웠다.

배재대학교 전 총장 박강수는 인사말을 통하여 국립 4.19민주묘지를 개칭하여 4.19민주 현충원으로 해야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4.19혁명공로자회장 유인학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한국의 저력은 4.19정신에서 나왔다고 말했으며 4.19선교회장 박해룡은 지역갈등을 없애는 것은 증오와 분노를 삭여야 하며 그것이 곧 4.19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본 강연을 통하여 평소에 해오던 자신의 전매특허인 나이와 일 그리고 나라사랑에 대한 말씀을 별다른 기교 없이 담담하게 풀어 나갔다. 단상에 오를 때에도 부축을 거절했고 의자를 권유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강연은 흔해빠진 웅변스타일이 아니다. 목소리도 전혀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마 대학에서 평생 강의하면서 익혔던 그 솜씨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손짓 몸짓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몸동작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강연인데 김교수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채 40여분 동안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 과연 백세인생을 살아온 기운이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4.19인들을 만났으니 연세대에서 함께 교수생활을 했던 정석해교수 얘기를 꺼냈다. 정석해교수는 이미 고인이 되어 4.19묘지에 잠들어 계신다. 정교수는 4.19혁명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한 4.25교수단데모의 대표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후배인 김형석을 만나 “당신 지금 몇 살이야?”하고 묻기에 몇 살입니다 라고 답변했더니 “좋은 나이요” 하더란다. 먹을 만큼 나이가 찼어도 더 어른이 되어보면 어린애처럼 보인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김교수가 청중을 향하여 “여기 오신 분들이 모두 4.19에 앞장선 분들이니 80은 되셨지요?”하고 묻는다면 “예”하는 답변을 들었을 것이요 그 때 “좋은 나이요”했더라면 아마 강당이 터질 것 같은 폭소가 쏟아졌으리라. 나의 패러디다. 김교수는 강연에서 60이 넘더라도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60전후해서 은퇴하는데 요즘 같은 백세시대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하면 바로 늙어버린다는 지론이다.

세계에 문화의 혜택을 준 나라를 꼽으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이다. 일본 역시 국민의 독서열이 강해서 문화대국의 반열에 든다. 이들 나라들이 한 결 같이 열심히 독서하는 국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독서는 나라와 민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른다. 가정에만 얽매이면 가정에 편집증을 갖게 되고 직장에만 치우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면 후손들을 위해서 사는 삶이 된다.

그것이 애국심이다. 인생이 행복한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살아내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 있다. 고독과 사랑은 행복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평소에 독서로 무장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임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국민의 80%이상이 100년 동안 꾸준히 독서를 하는 나라는 선진국으로 도약했지만 그렇지 못한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지금 3만 달러의 문턱에서 오락가락한다. 이를 벗어나는 길이 4.19혁명정신을 길이 살려 나라와 민족을 살려내는 일일 것이다.

전 대 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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