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의 우생마사] 관용(寬容)과 포용(包容)이 필요한 사회
[박종민의 우생마사] 관용(寬容)과 포용(包容)이 필요한 사회
  • 박종민
  • 승인 2018.11.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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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관용을 하게 되면 포용을 해야 하고 포용을 하게 되면 관용을 해야 합니다. 뜻이 비슷하나 좀 다릅니다.

관용은 남의 잘못된 점을 크게 나무라질 않고 너그러이 용서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며, 포용은 대상자가 잘못이 있다하더라도 기꺼이 감싸며 받아들여 친화력을 높이면서 화합과 화해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관용은 선후배나 위아래 사람과 관계없이 각기 이뤄질 수 있는 것이며, 포용은 위 사람이나 선배가 아랫사람이나 후배를 덕목으로 다독이며 끌어안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화합해나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 차원 더 높은 아량과 도량이 필요한 것이지요.

선량한 마음에서 혜량하는 기반이 넉넉하고 확고해야 된다고나 할까요? 가깝던 사이가 어쩌다가 깨지고 어긋나게 되면 도량이 넓고 깊은 사람이 먼저 포용을 해야 복원이 됩니다. 그러니 관용하면 포용을 해야 하고 포용하면서 관용을 해야 만이 진정한 화해 화합무드가 조성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러 외국나라를 여행 중 현지에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내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부하며 우쭐했으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은 우릴 보고 국가 지도자간에는 물론 공직사회 전반에 걸쳐 관용과 포용이 없는 나라라는 얘기입니다.

전직대통령이 줄줄이 옥고를 치렀고 현재에도 치루고 있으며 많은 공직자들이 영어(囹圄)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음을 지적하는 얘기였습니다. 그들 말마따나 나도 그런 생각을 좀 해 봤습니다. 왜 우리는 관용과 포용을 못하고 있을까? 하고 반문해보고 유추해보기도 합니다.

나는 정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능력여하불문하고 그 어떤 선출직관료나 공직자가 되기를 원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내가 보는 안목도 해외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우리를 보고 생각하는 관점과 비슷합니다. 유독 우리나라가 좀 지나치단 얘기입니다.

상대방의 적수를 쓰러뜨려야 내가 일어설 수 있다는 대적(對敵)관계 이론이겠지만 암튼 지고 이기고의 싸움이 일단 끝이 난 뒤엔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포용해주고 관용해주는 아량이 더 빛이 나고 아름다우리란 게 그들과 나의 생각입니다.     
        
  우리 민족성과 국민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수 없이 침략당해 민족성 국민성과 인권을 억압당하며 수난을 겪어 온, 아픈 역사가 기인인 듯합니다.

그 프레임에 갖춰 동족동포 간에, 한 국민 한 백성 간에도 서로 경계하고 의심하며 겨루고 치고받고 싸우다가는 아주 영원히 쳐내버려 없애버리고 배반해 버려야만 되는 근성을 만들어 놓은 게 아닐지를 생각해봅니다.

개인 간은 물론 국가와 사회 어느 곳도 관용과 포용이 없는 곳은 비전이 없습니다. 아무런 양보 아량 이해 혜량 없이 오직 대립과 대결뿐인 사회나 단체 개인은 전망이 없고 암울합니다. 지도자, 책임 있는 자는 맘속에 관용과 포용을 품어 실천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관용포용 없이 칼을 갈고 뽑아드니 상대방이 이를 박박 갈며 달려들고 마침내는 죽고 죽이는 싸움판을 만들게 되는 게 아닐까요? 애먼 국민들만 맘 아프고 민생이 고달픕니다.

  황소 뒷발질에 개구리 밟혀죽는다 했습니다. 국민들을 위해 정치는 역량 품격 인격 인성이 충분이 깃든 인물이 해야 하고 그러질 못한 사람들은 정치에 끼어들지 말아야 합니다. 민생이 슬프고 민초가 고생합니다.

공부하고 수양해서 능력과 역량을 키우던지 그럴 능력이 없으면 아예 뭘 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도나도 남이 장엘 간다니 나도 가겠다고 나서서 촐랑대는 격으로 걸이나 개나 아무나 튀어 나갈 그런 자리가 아니란 생각입니다. 숙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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