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바른미래당의 본회의 무산, 채용비리 국조·대통령 사과·조국 해임 요구, 민주당은 일단 받아들일 낌새 없어, 계속 안 받기 어려워, 평화당의 요구도 캐스팅보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본회의가 끝내 무산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5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법안 처리에 필요한 의결정족수가 충족되지 못 한 상황이다. 국민 보기에 부끄럽고 의장으로서 유감스럽다. 시급한 민생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 책무를 어기는 것이고 의장의 임무를 해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대화하고 있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대화하고 있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날 본회의에 상정됐던 90건의 무쟁점 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재적 의원의 과반(150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112석)과 바른미래당(27석)이 조건부 보이콧을 내걸었기 때문에 본회의를 개의(재적 의원의 5분의 1)하더라도 무의미해졌다. 

물론 더불어민주당(129석)·민주평화당(17석)·정의당(5석)을 합치면 151석이라 법안 처리를 위한 의결정족수에 이르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눈코 뜰새없이 바쁜 국회의원들이 모두 출석할 수 있으려면 3당의 지도부 차원에서 미리 지침을 내렸어야 했는데 고작 이틀 전에 두 당의 보이콧 의사가 공식화 됐기 때문에 그럴 겨를이 없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정부여당에 요구하는 것은 ①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해임 ②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③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국정조사 수용 등 3가지다. ①과 ②은 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데 당장 싱가폴에서 일정을 수행 중이기 때문에 바로 관철되기 어렵다. 다만 ③은 민주당이 결심하면 가능하다. 

실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의 홍영표 원내대표가 받을 수 있는 것은 국조다. 권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니까. 대통령의 사과와 조 수석 해임은 대통령의 몫이다. 대통령이 지금 안 계시기 때문에”라고 밝혔다.

민생 법안 통과를 지연시키는 데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 있는데 김관영 원내대표는 “그런 시급성이 있다고 하면 정국을 책임있게 이끌어나가야 할 여당이 국조를 못 받을 이유가 뭐가 있는가. 내가 우선 당장 국조만 수용하고 합의하면 그 시기는 정기국회가 끝나고 할 수도 있다. 지금 11월에는 예산 국회로 바쁘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정쟁을 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국조를 원한다고 그렇게까지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당이) 민생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시급하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저희가 정말 시급한 법안들인지 다 알아봤다. 뭐 윤창호법(음주운전 처벌 강화)이 만약 본회의에 올라가게 되면(소관 상임위 미의결) 그건 불가피하게 본회의에 참석할 것을 고려했는데 그런 시급한 법안은 아직 없다. 그래서 순연하자고 (민주당에) 요청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날 오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3당의 원내대표가 회동했지만 별다른 합의를 보지 못 했다. 김관영 원내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불법 증여 △다운계약서 △위장전입 △정치적 중립 훼손 △거짓 증언 등 흠결이 있는 조명래 환경부 장관에 대해 두 야당이 인사청문 보고서를 미채택했는데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했고 이것이 파행의 불쏘시개였다. 

더구나 지난 5일 초월회(국회의장 주재 5당 당대표 월례 모임)와 여야정 상설협의체(대통령 주재 5당 원내대표 분기 모임)가 있었는데 여기서 여야 협치의 신뢰를 쌓아놓고 바로 임명 강행을 한 것에 대해 두 야당은 화를 내고 있다.  

일단 민주당은 △헌법상 대통령의 인사권은 두 모임의 합의사항과는 별개이고 △예산 정국을 보이콧하면 야당의 입장 반영이 어렵고 △국조는 정부의 전수조사와 감사원 감사가 진행된 뒤에 판단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해법은 없는 걸까. 

일단 조 수석을 해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향후 인사 문제에 대한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협약을 맺는 등 중재 카드가 제안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문 대통령의 직접 사과가 나오기에는 어려워 보이고 청와대나 민주당의 핵심 인물이 유감 표명하는 그림을 예상해볼 수 있다. 국조는 민주당이 수용하지 않을 명분이 분명 있지만 두 야당의 강경 모드에 마냥 뒷짐지고 있을 수는 없어 보인다. 

예산안 의결이나 법안 통과를 위한 본회의 의결정족수는 평화당과 정의당의 적극 협조만 있다면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두 야당의 요구를 무시할 카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회 선진화법 체제에서 교섭단체인 두 당을 계속 무시하고 가기는 어렵다. 

민주당이 어떤 카드를 구사해서 두 야당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주당이 어떤 카드를 구사해서 두 야당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실제 올해 상반기 국회의 상황은 쟁점 이슈 한 가지(김영철 방한·권성동 법사위 파행·방송법·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드루킹 등)로 올스톱되는 현상이 빈번했는데 선진화법 체제에서 한국당이 몽니를 부리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018년 국회의 현실이다. 

권미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생과 경제를 우선한다면서 민생 법안을 처리키로 한 국회 일정을 일방적 통보로 폐기한 두 야당의 결정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속히 민생 국회의 대열에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쟁점 이슈와 무쟁점 이슈를 분리해서 전자로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후자에 대해서는 신속히 처리하자는 게 그동안 국회의 주요 과제였다. 하지만 후자를 볼모로 잡지 않으면 여당이 전자에 대해서 야당의 요구를 깔아뭉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과거의 보이콧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복잡한 요소가 전제돼 있다. 

선거제도 개혁인데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12일 취임 100일 기념 오찬 간담회를 열고 예산안 처리와 민주당의 선거제도 적극 협력을 연동해서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이 선거제도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첨예한 예산안 정국에서 협조하지 않겠다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평화당은 채용비리 국조에 대해 두 당과 스크럼을 짜고 있는 상황이고 여기에 선거제도까지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민주당이 두 당을 무시할 카드를 잡고 있기 위해서라도 평화당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커졌다. 

장병완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두 야당을 모두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장병완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두 야당을 모두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장병완 평화당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회 청문 과정에서 적격하다고 판단하지 못 해서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후보자의 임명 강행을 이 정부 들어서 벌써 8명째 강행하는 부분은 문제”라면서도 “두 보수야당이 국회를 공전시키는 것도 문제”라고 양비론의 입장을 폈다. 

김종대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버티기로 본회의는 무산됐다. 명분 없는 보이콧에 납득할 국민은 없다”고 비판했다. 

복잡한 정치적 협상 함수가 어떻게 작용해서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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