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치유재단’ 해산 ·· 박정희 부녀 대통령의 ‘국가주의적’ 조치 
‘화해치유재단’ 해산 ·· 박정희 부녀 대통령의 ‘국가주의적’ 조치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8.11.22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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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해산도 쉽지 않아, 문재인 정부의 투트랙 현실, 일본 정부의 대응방식은 국제 여론전, 박정희 정부의 한일 협정,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국가주의적 조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작업이 공식 발표됐다. 2015년 졸속으로 논란을 빚었던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재단이었던 만큼 이미 해산하라는 비판이 거셌다. 

여성가족부는 21일 오전 재단의 해산을 선언했고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보도자료를 내고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칙 아래 재단에 대한 다양한 의견 수렴 결과 등을 바탕으로 재단의 해산을 추진하게 됐다. 여가부는 앞으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한 정책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2016년 7월28일 열린 화해치유재단 현판식에 참석한 김태현 이사장(오른쪽 세번째),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왼쪽 두번째), 강은희 존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을 비롯한 위원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정부는 대일 스탠스를 투트랙으로 천명해왔다. 

한일 관계는 독도, 위안부, 역사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껄끄러운 일들이 많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던 박근혜 정부의 극단적 상호주의와는 달리 투트랙 분리 전략으로 △역사 문제 해결을 요구하되  △별개로 경제 등 여타 분야에서는 교류협력 증진을 도모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26일 유엔 뉴욕본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갖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 하고 고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는데 역사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재단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일본 총리에게 통보한 의미가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사실상 재단은 1년 동안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멈춰 있었지만 해산되지 못 했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올초 위안부 합의의 내용에 중대한 문제가 많다고 밝히면서도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정무적 판단을 내린 바 있다. 투트랙 기조에 따른 고심이 있었던 것인데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재단 해산이 합의 파기가 아니라는 입장을 일본에 어필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해산 절차가 간단하지 않다. 

여가부는 재단 설립을 취소하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우선 재단 이사장에게 직권 취소를 통보하고 △법원이 재단 청산인을 선임해야 한다. △이후 청산인은 재단의 남은 재산 58억원을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 남은 돈을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재단의 지원금을 이미 지급받은 할머니들도 있지만 강하게 반발하면서 수령을 거부한 분들도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다시 지급하는 건 도리에 맞지 않고 비슷한 취지를 가진 타 재단에 기부하거나 국고 환수도 고려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가 지불한 10억엔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양성 평등기금 103억원을 마련했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일본 정부에 반환하고 싶어도 수령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해산 결정이 알려진 직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있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복동 할머니는 해산 소식을 듣고 “와르르 와르르 재단이 무너져야 안심하지 내일, 모레 계속 미룰까봐 걱정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하는 것 뿐”이라며 이날 열린 수요시위에서 ‘정의기억연대’를 통해 밝혔다. 

정의기억연대는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의 재단 해산 발표는 곧 위안부 합의의 무효 선언이다. 이제 일본 정부는 억지 주장을 즉각 중단하고 성노예 범죄로 인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여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던 범죄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일본 정부의 반발이 시작됐는데 예상보다는 덜 강경하다. 

아베 총리는 “국제적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 간의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고 밝혔고 고노 다로 외무상은 “재단 해체 방침은 일본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비공개로 초치하기도 했는데 강제 징용 1억원 배상 판결 때 강력하게 초치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일본 정부의 전략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쪽이 한국 정부이고 자신은 이행했다는 프레이밍이다. 즉 먼저 합의 파기를 선언하면 바로 10억엔 반환을 수용하게 돼 곤란해지기 때문에 차라리 국제사회의 여론에 한국 정부의 신의성실 위반을 어필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한미일 공조 체제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책이나 대일 외교관계의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결국 이렇게 꼬여버린 역사적 지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전쟁 범죄의 피해자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역사적 왜곡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대법원은 10월30일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억원 배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한민국 수립 이전의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국권을 빼앗겨서(1910년 8월29일) 자국민을 사지로 내몰았는데 이후 해방(1945년 8월15일)이 되어서도 두 전직 부녀 대통령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권 행사를 어렵게 만들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30일 2014년 사망한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소송 제기 후 13년 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사진은 1965년 한일협정 조인식 당일 반대 데모에 나선 대학생들
1965년 한일 협정에 대해 반대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①박정희 정부는 1965년 6월22일 당시 국민의 격렬한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한일 협정을 체결했다. 35년 식민 지배의 대가로 고작 6억달러(무상 3억·정부차관 2억·민간차관 1억)를 받고 한일 국교 정상화에 합의해준 것인데 △식민지 지배 사과 △약탈 문화재 반환 △군 위안부·강제 징용자·원자력 폭탄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 △재일 동포의 법적 지위와 대우 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②2011년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권에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대일 강경론에 치우쳤다가 2015년 12월18일 덜컥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했다. 합의 내용은 아베 신조 총리의 유감 표명과 위로금 명목의 10억엔(100억원)을 재단을 통해 지급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종적·불가역적 합의라는 표현을 명시한 것도 논란거리였다. 생존 할머니(27명)와 정의기억연대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법적 배상 △교과서 명기 △역사관 건립 등 4가지 조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 한 합의에 대해 강력 반발했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 하지만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법원행정처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 서서 한국 법원에 재판권이 없어서 소송 자체가 불성립한다는 내부 시나리오를 짜서 방해했다. 행정처가 소송 제기 이후 2년6개월 동안 한 번도 심리를 열지 않도록 지연시킨 사이 피해 할머니들의 절반 이상이 눈을 감았다.

그나마 2009년 일본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하토야마 전 총리는 기존의 고노(1993년)·무라야마(1995년) 담화의 사죄 기조를 이어받았지만 자민당이 집권한 뒤 아베 내각은 정반대였다. 

아베 내각은 평화 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추진하는 등 극우적 가치를 표방했고 과거 전쟁 범죄의 만행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스탠스에 적극 악용됐던 것이 ①②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개인의) 배상 청구권은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듯이 국가간 정치적 합의는 정치적 결정일 뿐이지 개인들의 법적 피해에 대한 배상권을 무마시킬 수는 없다.

①②의 역사적 불의가 후폭풍을 오랫동안 미치고 있는 것이다. 

21일 수요일에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 시위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근대 국가의 주권재민 이론은 17~18세기에 유럽에서 태동했던 사회계약설에 연원을 두고 있다. 신의 뜻을 받드는 왕이 국가를 운용한다고 모두가 믿었던 게 중세적 질서인데 여기서 수많은 개인들이 안전과 복리를 위해 스스로 계약을 맺어 국가를 형성했다는 학설이 사회계약설이다. 

사회계약설은 개인의 권리를 천명한 개인주의에 기반하고 있는데 국가주의는 그 반대다. 개인들의 천부적 권리를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를 위해 개인이 수단으로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다. 바로 ①②이 국가주의적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유시민 작가는 2017년 2월20일 방송된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주의는 한 마디로 정의하면 시민들을 국가의 부품으로 보는 견해다. 부품 자체는 가치가 없다. 전체로서 하나의 국가가 기능할 때 비로소 부품은 존재 가치를 가지게 된다. 국가주의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서 국가를 우선하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개인은 희생할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국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제한해야 한다. 이렇게 보는 관점이다. 시민들 개개인의 복지나 이익과는 차원이 다른 국가와 전체의 이익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처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시민들의 부분적 이익를 희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태도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찌 연설에서 이제부터 공익은 사익에 우선한다고 우아하게 말했다. 무엇이 공익이고 사익인지는 히틀러가 판단한다.”

국가주의가 아닌 주권재민의 헌법적 가치에 따라 일제의 전쟁 범죄 피해자들이 부족하게나마 배상을 받고 한을 풀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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