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학 양천소방서장
김재학 양천소방서장

[중앙뉴스=김재학] 어느덧 스산한 찬바람에 어깨를 움츠리고 옷깃을 여미는 시기가 왔다.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따뜻한 온기를 찾게 된다. 물리적인 따뜻함도 안락한 느낌을 주지만 따뜻한 마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계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온열기나 화기 사용이 많아지는 이 시기, 소방기관에서는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캠페인 등 각종 화재예방 활동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화재를 비롯한 모든 재난은 사전에 철저히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그 다음 차선으로 화재가 발생하면 피해를 최소화 하여 진압하는 것이다.

사실 따져보면 화재가 발생한 다음 아무리 진압활동을 잘하고 생명과 재산피해를 줄였다고 하더라도 애초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만 못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예방보다는 화재가 발생하고 이를 잘 진압해 준 것에 더 감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까닭은 애초에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한 노고는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를 아주 잘 표현해 주는 고사가 있다. 2,000여년 전부터 중국에서 유향(劉向)이 편찬한 《설원(說苑))》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나그네가 어느 집에서 굴뚝을 곧게 세우고 곁에는 땔나무를 잔뜩 쌓아 놓은 것을 보고, 주인에게 충고했다. “굴뚝을 구부리고 쌓여 있는 나뭇단을 옮기시오. 그러지 않으면 불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며칠 뒤에 그 집에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해 불을 겨우 끄긴 했지만 불을 끄다가 여러 사람이 불에 데었다. 집주인은 감사의 표시로 이웃들을 초청하여 소를 잡고 술을 차려 대접했는데, 많이 덴 사람들을 상석에 모시고 나머지는 그 공에 따라 다음 자리에 모셨다. 하지만 굴뚝을 구부리라고 충고한 사람은 초대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때 당신이 그 사람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렇게 소와 술을 쓸 필요도 없었고 불이 날 일도 없었을 것이오. 지금 공을 논하여 손님들을 초대했는데, 굴뚝을 구부리고 땔나무를 옮기라고 말한 사람에게는 은택이 가지 못하고 머리를 그슬리고 이마를 덴 사람이 상객이 되었구려. 그제서야 주인이 비로소 깨닫고 그 사람도 초대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굴뚝을 구부리고 장작더미를 옮겨 화재가 발생할 개연성을 미연에 방지하라는 내용으로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 화재기(11월~2월)에 접어들었다. 벌써 서울지역의 한 고시원에서도 화재가 발생하여 7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화재가 발생한 그 건물에 대하여도 시에서 설치비가 지원되는 “간이스프링클러” 설치를 권고하였으나 건물주가 이를 무시하고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위의 사례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고시원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집은 화재에 안전할까?

최근 5년간 겨울철 화재 사망자의 61%가 주거시설에서 발생했다. 소방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아파트보다 연립주택이나 일반주택이 화재에 취약하고 더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는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 및 유지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2017년 2월 5일부터 모든 주택에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 하나, 안타깝게도 서울시의 경우 설치율이 37.01%에 머물러 있다. 반면에 미국은 이 제도를 40여년 전에 마련해 주택화재 사망자 수를 절반 가까이 줄였다고 한다.

아직 부족하지만 우리나라도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일반주택화재가 전년대비 30.5%나 감소하였다. 예방으로 인한 효과가 이토록 크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 사람들은 봄부터 씨앗을 뿌린다. 모든 재난에 대하여도 이러한 자세로 미리미리 철저하게 대비한다면 큰 피해없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소방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주거시설에서 주택용소방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재난을 미연에 방지하는 “곡돌사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주택용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일반주택에서는 하루 빨리 설치하길 바라며 소방기관에서는 주택용소방시설 설치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 “곡돌사신”의 나그네와 같은 역할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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