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직업병 11년 만에 협약식 가져…삼성·반올림 합의
황상기씨, “반도체 외 다른 직업병에도 보상안 마련하길” 

(사진=연합뉴스 제공)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중앙뉴스=박기연 기자] 삼성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백혈병 등 질환 발병에 대한 지원보상 합의 이행에 협약했다.

이로써 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지 11년, 중재가 시작된 지 4년 만에 반도체 직업병 백혈병 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이날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협약식을 열고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의 중재안을 따르겠다는 협약서에 서명했다. 

이들은 지원보상 업무를 법무법인 지평에 맡기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원보상위원회 위원장은 김지형 조정위원장으로 정했다. 삼성전자는 한국산업안전공단에 재발방지와 사회공헌의 뜻에서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을 기탁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가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삼성과 반올림의 반도체 직업병 분쟁은 지난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씨 이후 사회 의제로 떠오르면서 시작됐다. 이날 조정위 중재안을 수용하기에 합의하기까지 총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야 했다.

삼성과 반올림은 그동안 당사자간 합의를 진행하지 못한채 각계 전문가들이 모인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의 중재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도출됐다. 

이날 반올림 대표이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는 인사말에서 “보상 대상을 기존 삼성전자의 기준보다 대폭 넓히고 반올림이 아는 피해자만이 아니라 미처 알리지 못한 분도 포괄하게 돼 다행이다. 다만 협력업체 소속이라서 혹은 보상 대상 질환이 아니라서 포함되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황씨는 삼성이 반도체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의 직업병도 폭넓게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씨는 “직업병 피해는 삼성전자 반도체 LCD 부분에서만 있지 않다. 삼성 디스플레이·전기·SDS·SDI 등 다른 계열사에서 유해물질을 사용하다 병든 노동자들이 있다”며 “모든 직업병 노동자들을 위한 폭넓은 보상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했다. 

황씨는 또 “산재보험 제도와 근로복지공단을 개혁해 산재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면서 “노동자가 무슨 화학물질을 쓰는지 알 수 있게 산업안전보건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오른쪽)가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 및 이행계획 발표를 마치고 반올림 황상기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오른쪽)가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 및 이행계획 발표를 마치고 반올림 황상기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기흥공장에서 일한 뒤 유방암에 걸린 박민숙 씨는 “그동안 변화할 수 있는 계기는 많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니 계속 해보자’며 싸워 왔는데, 정말 11년 만에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2015년 삼성전자가 첫 중재위 권고안을 거부한 뒤 자체 산정한 보상 대상에선 제외됐다.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는 이날 협약식에서 중재안 권고에 따라 공식 사과문을 낭독했다. 삼성전자는 또다른 중재안 내용인 사과문 웹페이지 게시는 반올림과 일정에 합의한 뒤 다음주 쯤 노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도체와 같이 기술발달 속도가 매우 빠른 첨단산업의 경우, 전통적인 방식의 산업안전보건 시스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는 선제적 예방은 물론 조기에 피해자를 발견하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직도 사업주의 화학물질 안전보건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구성 성분조차 점검하지 않는 사업장이 많다"며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현재의 법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하는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지난 4년간 삼성과 반올림의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중재해온 김지형 조정위원장 “우리 국가와 사회가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무엇을 다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정부를 대표해 고용노동부, 국회를 대표해 환경노동위원회가 시즌 2를 이끌어 나가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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