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봄샘 기자
최봄샘 기자

 

거지

권정생 (1937~ 2007)

 

거지를 만나

우리는 하얀 눈으로

마주 보았습니다

서로가

나를 불행하다 말하기 싫어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삶이란

처음도 나중도 없는

어울려 날아가는 티끌같이

바람이 된 것뿐입니다

저마다가 그 바람을 안고

북으로 남으로 헤어집니다

어디쯤 날아갔을까?

한참 다음에야

나를 아끼느라 그 거지 생각에

자꾸만 바람빛이

흐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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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망대해를 홀로 둥둥 떠다니는 듯한 고독감을 느껴본 적 있다. 마음의 거지가 되어 어느 인정을 갈망해 본 적도 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벌써 첫눈이 다녀갔고 사람들은 여느 해보다 종종걸음을 치고 아직은 11월이다. 가을의 뒷모습이 다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미리 체감하는 냉기가 유난히 스산한 것은 왜일까? 인간이 세상의 부와 명예 등을 다 소유했다고 해서 부자일까? 반대로 가난하다고 해서 정말 불행한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한 편의 시라기보다 동화 같은 시를 모셔본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가진 자는 영혼의 거지인 것임을 우리는 안다. 옷깃을 올리고 저만치 마지막 잎새들을 애처롭게 내어단 길 위에 서있는 어느 님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다. 쓸쓸한 거리에서 마주친 시린 눈빛이 있어 뒤돌아보았다. 스쳐간 그 역시 뒤돌아본다. 2018 겨울 문턱을 넘으려니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는 그 사람이 있다. 그와 나는 서로를 위로해야 하는 가난한 거지들인지도 모른다. 시린 손 내밀면 따뜻해질 것만 같은데 손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깊은 포켓속의 손을 꺼내어 내밀어야겠다. 우리는 모두 그런 손을 가졌고 그런 손이 그리운 이방인들이므로...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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