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김희선 기자]정부가 금융경제정책실패를 가져왔던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행을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 한국 사회를 뿌리째 뒤흔든 경제위기가 시작된 그 시기, 실제 상황을 살펴본다.

영화속에 국가부도의날.(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속에 국가부도의날.(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국가부도로 하루아침에 기업이 쓰러지고 실직자가 쏟아지며 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은 점은 사실이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거만해 보이는 미셸 캉드쉬 IMF 총재와 우리나라 경제 수장이 구제금융 합의문에 서명한 1997년 12월 3일은 국치일로 여겨졌다. 혹독한 날들이 이어졌고 밖에선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며 비아냥댔다.

영화는 당시 절박한 분위기를 전달하지만 디테일에선 다소 차이가 있다.

일단 경제 관료들의 직책과 조직 이름은 가상이다. 한국은행에는 영화상의 통화정책팀장(한시현)이라는 직은 없었다. 한은에 여성팀장은 몇 년 후에나 등장한다. 한 팀장의 업무는 당시 외환업무를 담당한 국제부장과 비슷하다고 전해진다.

한 팀장과 맞서는 재정국 차관에는 약 10년 후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당시 강만수 재정경제원 차관이 거론된다.

한은의 수장은 이경식 총재였고, 재경원은 강경식 부총리에서 임창열 부총리로 바뀌었다.

영화에서는 한은 팀장이 일주일 뒤 국가부도가 닥칠 위기상황임을 알린다. 이후 꾸려진 대책반에서 한은은 IMF행이 경제주권을 넘기는 것이라며 반대한다. 대신 일본과 미국 등에서 100억 달러를 빌리고 국가 자산을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재정국(재경원)은 영세 자영업자를 구조조정하는 등 경제체질을 바꿀 기회라며 IMF행을 선택한다.

현실에선 한은은 1997년 3월 26일자 보고서부터 시작해 여러 차례 위험을 경고했다고 주장했다. 한은 경고가 없었더라도 7월 기아사태, 10월 홍콩증시 폭락,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 외자이탈 등이 이어지며 위기감이 고조됐다.

심각성이 구체적으로 부각된 보고서는 IMF행이 결정되기 약 한 달 전인 10월 27일자로 얘기된다. 우리 정부가 IMF에 긴급자금 지원을 정식 요청한 것은 11월 21일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금 벌어지는 일이 위기로 비화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2008년 금융위기를 IMF와 미 연방준비제도 등 대부분 기관이 미리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은에서는 1997년 초부터 불안한 징후를 파악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민간 연구기관이 아닌 국가 경제에 책임을 가진 기관으로서 그것이 외환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선명하게 주장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나 정부나 IMF행을 두고 다투진 않았다. 누구에게나 IMF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이 바닥난 상태에서 선택지가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너무 늦게 결정하는 바람에 불리한 상태에서 협상을 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과거 자료와 대법원 판례를 보면 10월 28일 강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외환관련 대책회의가 열린다. 이어 11월 7일 회의에서 IMF 구제금융 지원 요청방안이 언급됐다. 다만, 보안은 유지키로 했다.

이어 강 부총리는 10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구두로 IMF 구제금융 지원 요청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고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때까지만 해도 IMF행이 유력한 방안의 하나였을 뿐이고 결론이 난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에게 외환위기 실상을 은폐 축소해 보고한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된 강 부총리와 김 수석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해 11월은 1분 1초가 긴박하게 지나갔다. 16일 강 부총리는 극비 방한한 캉드쉬 총재와 면담을 했다. 사흘 뒤인 19일, 난파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호의 선장이 임 부총리로 바뀌었다. 정부는 미국과 일본에 지원을 요청해봤지만 부정적인 반응만 받았고 결국 IMF행을 발표했다.

이 영화가 관객 150만명을 돌파한 배경은 뭘까.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회 곳곳에 남은 후유증을 체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일자리를 잃어 가정이 흔들리고 청년들이 취업을 하지 못한 여파가 기저에 깔려있다. 영화에서 한은 팀장은 IMF행에 반대하며 양극화 현상을 우려했다. 그의 예측은 맞았던 것이다.

영화에서 원/달러 환율이 11월 초 800원 미만에서 12월 3일 1,610원으로 뛴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때까진 1,200원대였다. 그리고 금융권 대출이자 이율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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