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시

이해인

 

 

또 한해가 가버리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원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여기며

나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 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 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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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을 관통하는 중이다. 분주해지다가도 차분해지며 기도하는 마음이 되는 요즘이다. 올해도 12월이 어김없이 찾아왔고 우리는 또 한 해를 돌아다본다. 그리고 다소 착잡한 마음이 되기도 하며 남은 이 해를 갈무리한다. 성직자인 화자 역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기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자신을 안타깝게 돌아보는 마음이 역력하다. 새로운 달력을 준비하며 새 다짐을 하는 모습 또한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다. 멀미나는 세상 속을 살아온 또 한 해의 꼭대기에 올라서 이 12월의 기도가 바로 내 기도임을 고백한다. 익히 알려진 詩지만 강퍅한 영성이 촉촉이 젖어들며 몇 번을 반복해서 기도하듯 음미한다. 인생이란 습관이 쌓아가는 하나의 집이다.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의 습관을 갖고 싶다.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 옛날은 가고 새날이 오는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고운 집 한 채 잘 지어나가야겠다. [최한나]

사진 / 최봄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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